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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꿈


토요일 아침,  침대에서  뭉기적거리고 있었다.

잠결에 쌕쌕 대며 자고 있는  강아지가 어디 있는지 더듬거렸다. 실눈으로 지금이 몇 시일까.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글자가 여러 개로 보였다. 창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젖은 햇살을 등지고 빼꼼히 창문을 열었다. 눅눅한  바람은 가고 청명한 냄새가 콧속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주차장 입구로 오르락내리락 차들의 회전 소리가 성가신 아침이었다.


그때 방충망에 붙어 빽빽거리는 매미 한 마리가 보였다. 이른 아침 깨어서 젖 달라고 버둥대던 아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작은 트럼펫 소리가 온 동네를 잠식하듯 시끄러웠다.  무거운 눈은 안 떠지고 몸은 나른한데 매미 울림은 고막을 찢었다.

이 새벽을 왜 깨우느냐고  화를 내볼 참이었다.


7층 아파트 낡은 방충망으로 어떻게 올라온 것일까. 촉촉하고 달콤한 이슬은 한 방울도 없이 먼지만 빼곡했다.

애타게 찾는 친구들은 저 아래 살구나무에  걸터앉아 놀고 있는데 이상했다.

굳이 왜 위험한 곳에 그가 여행 왔는지 궁금했다.

7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세상 밖   2주간의 비행을 이곳으로 온 거라면

마지막 구애작전에 실패한 것일까.


맨발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 작은 곤충과 간극은 아주 가깝지만 멀었다.

방충망 틈새로 눈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눈을 꾸벅였다. 여섯 개의 발엔 살기 위한 온 힘이 걸려 있었다.

소꼴을 베어 들썩대고 걸어오던 아버지의 등껍질 같았다.  고요한 은빛날개는 퍼득퍼득 배울음통은 둥둥둥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였다.


25살 어린 나이 도피처럼 결혼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여기저기 맴돌기만 했던 나의 독립은 결혼이었다. 나의 결혼 조건은 소박했다. 입식부엌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이면 되었다. 아무것도 없이  반지하 방 한 칸으로 신혼집을 마련했다. 둘이 누울 수 있는  접이식 침대 하나, 남편이 쓰던 밥솥과 냉장고를 그대로 사용하고 식기류와 이불만 장만하고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바퀴벌레들은 기생충 가족처럼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우리 집에서 동거를 했다. 종일 볕이 들지 않은 집에는 곰팡이까지 공생하길 원했다.

집 주변에  하늘 끝까지 올라간 아파트 빌딩이 많았다. 올려다보며 저기엔 어떤 사람이 사는 걸까. 혼잣말을 했다. 낮은 다세대빌라나 주택들도 많았다. 담벼락이나 전봇대에 붙어있는 방 2개, 방 3개 입식부엌 가격 얼마라고 써붙여진 광고지가 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 꽂힌 벼룩시장 신문지는 언제나 내 손에 들려있었다.


저기 높은 빌딩 안 어딘가에 내 집이 생기는 날이 있을 거야. 그리고 예쁜 아이 낳아서 멋지게 살아볼 거야.  영동대교로 지나는 출근버스 뒷좌석에 앉아 알록달록 희망의 풍선들을 높이높이 뛰워보냈다.


7층 아파트 담벼락에 날아오른 매미의 소원도  내 마음이었을 테지. 힘차게 노래하고, 연습하면 예쁜 솔메이트를 만날 희망이 있었을 테지. 날개가 조금 찢어져도 이슬 한 모금 쉬어가더라도 좀 높은 곳까지 가보자 했을 테지.


1997년은 대한민국의 외환위기였다. 그러나  내겐 행운의 해였다.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도처에서 일어났고 무주택자라면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반지하에서 4년만 버티면 깨끗하고 방 2칸이 있는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분기마다 납입해야 하는 중도금은

둘의 월급으로는 많이 모자랐다. 시동생 아침저녁을 챙기고  

매일 아침 도시락 두 개를 쌌다. 그 와중에 아이를 두 번 잃는 아픔이 있었다. 그 후 애타게 기다리던 첫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되었는데 반지하에서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미안했다.

얼른 빛이 드는 깨끗한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기저귀도 천으로 바꿨다. 유모차와 옷도 조카들이 쓰던 것으로 물려받았다.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았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으느라 아끼고 또 아꼈다.  서울 하늘 아래 내 이름으로 된 내 지붕이 생길 희망에 쉼 없이 달리며 힘든 줄도 몰랐다.


매미는 가지도 않고  여전히 트럼펫을 불어댔다.

건넌방에 자던 고3 딸이 투정을 부리며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베란다에 있던 빗자루로 매미를 쫓아버리려다 매미 껍질을 발견했다. 허물을 벗고 완전한 탈피를 했다고 자랑하는 건지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도톰하지만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여린 껍데기였다.


땅속에서 웅크리고 기다린  매미는 짝을 만나 살구나무에 집을 지었다. 올봄에 살구나무에 살구꽃이 피고 유난히 살구가 실했었다. 한 두 개씩 떨어진 살구가 하도 크고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봤었다.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살구씨가  탐스러웠다.

여름으로 치닿을수록 잎은 울창해지고 그 밑을 지날 때면 바람은 치마 차락처럼 펄럭였다. 시원하고 옹골찼다.


"그랬었구나,,, 그랬구나,, 그럼 그럼! 참 잘했어"


지난 나의 이야기를 고백하듯.., 매미는 할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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