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

적성에 관한 생각

by Myoungseok Han

의대 졸업 후 병원에서 일 년의 인턴 과정을 마친 의사들이 각자 자신의 전공과를 선택하여 지원하는 시기가 요즘이다. 이때는 선택하는 전공과와 자신의 적성 여부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턴 선생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럴 때는 필자도 가끔 적성이라는 뜻에 맞추어 나를 돌아보기도 하는데, 특히, 문제 있는 환자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때 ‘나는 과연 내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혹은 이 직업과 나의 적성은 맞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내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반백의 세월을 살아왔고 20년 이상 해온 의사생활이지만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가끔 피할 수가 없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의학이라는 큰 범위 안의 작은 과 선택이라는 문제로 적성에 대해 고민하지만, 대학 입학을 앞둔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앞으로 아이들의 직업 선택이라는 보다 큰 인생의 어젠다를 다루어야 할 때는 그 ‘적성’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님을 느낀다. 즉, 내 아이들의 적성이 무엇인지, 그에 맞는 직업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만 저만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인간 사회가 고도 산업화되면서 직업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전문화되어 개인은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여 어느 특정 직업을 가지도록 교육받게 된다. 직업에 귀천 없다고 하지만, 안정되고 수입 좋은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예나 지금이나 높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의사, 변호사, 약사 등 고수입 전문직이나 교사나 공무원 등의 안정적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언제나 높았다. 그러면,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 모두의 개성이 그 직업이 가지는 특성에 맞아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즉, 적성에 맞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직업에 맞추어 자신의 개성을 변화 혹은 적응시켜왔는가? 즉, 적성을 적응시켜왔는가? 나는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본다.


필자의 경우 의대를 선택하게 된 배경이 소위 ‘적성’에 맞추어 선택했다고 보기 어렵다. 친척 중 의사 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 계셨지만 그 직업의 특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분은 없었고, 다만 그 당시 그분들의 생활 수준으로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고수입의 경제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님들은 그런 친척 분들의 생활 수준을 보고 의대를 추천하였고, 그 뜻을 거스르기 싫어 의사가 되었으며, 현재 나의 생활에 대해 만족하며 후회하지는 않지만 태생적 개성과 일치하는 적성에 맞춘 선택이었나 라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다만 긴 세월 동안 환자를 진료하면서 내게 필요한 소양을 하나씩 만들어 왔던 터라 지금은 다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극복해나가는 이른바 ‘후천적 적성’이 몸에 체화(體化) 된 것 같다. 그래서 필자와 같이 본인 적성에 맞춘 선택 과정이 생략된 진로 선택은 아무래도 개성과 자신의 주관적 선택이 중시되는 현시대의 흐름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 우리 아이들에게는 굳이 특정 직업을 가지도록 추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심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왔던 길이니 따라와 주기를 바랐으나, 그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한다. 그들이 가는 길이 자신의 ‘적성’에 맞춘 길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본인들이 택한 스스로의 선택이니 그 자체로 존중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다만,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부모로서 가진다.


세상 직업들은 지위와 소득과 관련된 사회 경제적 의미를 떠나 그 자체가 가지는 가치 속성이 있다. 의사는 환자의 질병과 고통을 덜어주는 가치가 있고, 군인은 나라를 외침으로부터 지켜내는 가치가 있고,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을 전하고 인생을 인도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적성이란 자신이 어떤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그 오롯한 가치를 구현해 내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의사의 경우 밤낮없이 고통받는 환자를 돌보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은 것이지만, 그런 생활로 인해 행복감보다는 불행감을 느낀다면 유감스럽게도 그 직업을 적성에 맞추어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과연 직업이 가지는 가치 구현을 통해, 즉, 적성에 맞는 직업 활동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주변을 보면 그런 분들이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그리 많지도 않은 것 같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감은 자신을 위하는 삶보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살 때 극대화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기적 유전자가 아닌 이타적 유전자가 발현될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이기적이기는 쉬워도 이타적이기는 어렵다. 이타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기 아닌 타인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일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공동체, 환경, 봉사, 헌신 등의 가치는 인간의 이타적 유전자 발현의 표현형이다.


한 인간이 직업을 선택할 때는 그 직업이 가지는 이타적 가치 속성을 의식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 이기적 요소에 매몰되어 숨은 가치를 놓친다면, 그 사람은 직업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기보다는 불행감을 느끼기 쉽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병원에서 전공과를 선택하는 인턴 선생들이나 미래의 직업을 찾고 있는 우리 아이들 모두에게 진정한 적성이란 자신이 선택한 직업 속에 숨어 있는 이타적 가치 속성을 찾아가는 의식적 노력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