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큰 편이 아닌 필자이지만 마흔을 넘어서부터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이 오십대에 접어들면서 이마가 환하게 드러나자 주변 사람들이 가발을 권하곤 하였다. 그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그냥 흘려듣다가 최근 들어 점점 빛에 번쩍이는 이마가 거울을 볼 때마다 의식되기 시작하였고, 오래 전부터 가발 착용을 해온 몇몇 분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어울린다고 느껴서 조금씩 관심가기 시작하였다. 그런 중에, 오랜만에 나간 동기회에서 만난 친구가 가발을 강력 추천하기에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 ‘그리도 보기 흉할까?’라는 생각에 다소 우울한 기분과 함께 그 필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때 마침 가발 관련 상담이나 받아 볼까 해서 시내 가발점에 들르게 되었다. 그 업체는 유명 연예인 사진을 멋지게 걸어 놓고 여기저기에 많은 광고를 하는 곳으로서 가격이 꽤 비싼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비싼 가격 탓에 한참동안 망설이다가 자신에 대한 투자라는 생각과 이삼년 정도만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카드 결제를 하고 말았다.
가발 재료인 모발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못 구하고 미얀마 같은 저개발 국가로 부터 조달한다고 한다. 한 때 우리나라도 육칠십년 대에 변변한 공산품 하나 없던 시절, 모발 수출로 눈물겨운 외화를 벌던 시절이 있었으니, 가발이란 것은 저개발 국가의 경제적 생존이 달린 기간산업인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내 머리 위에 얹힌 가발을 바라보니, 개도국 누군가의 삶과 관련된 사연이 담긴 머리카락이라는 사실과 과거 우리 모습이 함께 겹쳐 떠올라 마음이 짠해진다. 한편으로는, 가발이 세계 자본주의 경제 하에 재생 가능한 인체 부산물의 자유로운 거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생식세포 또한 재생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제공이나 거래를 엄격히 제한하는 우리나라 생명 윤리법이 다소 생뚱맞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물론 모발과 생식세포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으며, 윤리성 측면에서 고려할 부분이 있으나, 재생 가능하며 누군가에 도움을 주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정자나 난자의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현재 산부인과 의사 머리 위에 있는 가발을 통해 잠시 해본다.
가발을 처음 착용하고 병원 출근하는 날 가발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필자는 그것에 적잖은 재미를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발을 단정히 한 것으로 보았고, 무언가 변한 것 같은데 바로 가발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가발이라고 얘기하면 그 때서야 ‘아! 몰랐습니다. 잘 어울리네요’ 라는 말을 하는 걸로 봐서 그런대로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가발 착용 후 느끼게 된 것 중 하나로 헤어스타일이 타인에 주는 인상 효과 정도이다. 우리 몸에 걸치는 옷과 여러 악세사리 등이 착용자의 외모를 보기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지만, 가발은 특히 나이를 젊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큰 것 같다. 내 가발은 두피에 고정하는 고정식이 아닌 탈부착식이라 다소 번거로운 면이 없지 않으나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내가 봐도 10년은 젊어 보일 뿐만 아니라, 외래를 찾는 환자들로부터도 잘 어울리고 훨씬 젊어 보인다는 인사성 말을 들으니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비싼 가격으로 사치라는 생각이 약간은 상쇄되는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보는 사람마다 10년 정도 젊어 보인다고 하니 단숨에 내가 40대 초반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현재 나이인 50대로 보인다고 해서 싫은 것은 아니나 가끔 10년 전 사진을 보면서 부지불식간에 나이 들어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적도 있어서 잠시 가짜 머리를 하고 세월을 십년 정도 되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십년 젊어 보인다고 해서 신체 기능도 그 만큼 젊어지는 것은 아니니 가발이란 것이 결국 자기만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외모를 관리하는 기본적인 것들에 옷, 구두 등과 더불어 가발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지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비용적인 부분에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필수적으로 걸쳐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겠다. 주변으로부터 좋은 반응들을 경험하고, 스스로 주변에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생각은 자신의 일상적 태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또한 영구적인 모습은 아니고 자연적인 모발 상태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일이니, 가발을 쓴 모습에 너무 도취되어서도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아무리 잘 가꾼 외모라 할지라도 세월의 변화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고, 보기 좋은 몸매도 생명이 있는 그 순간뿐이니 내면의 모습을 잘 가꿔 타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발을 통해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