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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하 Sep 20. 2024

사소한 것들

    

 밤이 깊었는데 여전히 속이 화끈화끈하다. 온종일 찬물을 마셨지만 심장은 두근대고 목울대의 뜨거움이 가시질 않는다. 오전에 학생에게 왈칵 고함을 내지른 탓이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포효, 득음의 경지. 아직도 내게 결기가 남아 있었다니! 평소에 교양으로 위장하면 뭐 하나. 무너지는 건 한순간인 것을. 오늘 밤 편안한 잠자리는 물 건너갔다. 학생과 주고받은 말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부르르 떨다 잠들겠지.     


 어느 직종인들 고단한 구석이 없을까. 당연히 교사에게도 힘든 순간이 있다. 수업 준비와 행정 업무, 문제 출제, 무엇 하나 만만한 건 없지만 내게 가장 고난도인 업무는 생활 지도이다. 

이를 교육의 정의적 영역이라고 했던가. 학생의 정서, 태도, 도덕성과 가치관을 형성할 바람직한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는데, 얼핏 보면 뜬구름 잡는 일 같다. 그러다 보니, 해도 바로 티가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안 하면? 학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다.      


 생활 지도는 작은 부분에서 시작된다.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티끌만 한 부분에도 섬세한 질서가 필요하니까. 너무 사소해서, 학교 밖 사람들이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여기는 부분도 있을 테다. 그러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에 따르지만, 어떤 학생들은 ‘왜요?’로 시작하는 다양한 변주의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보자.

“교복 단정히 입고 다니자.”라는 말에 “왜요? 그럼 선생님도 교복 입고 다니세요.”라거나

“바닥에 버린 쓰레기 좀 줍자.”라는 말에 “왜요? 어차피 청소 당번이 청소하는데요.”라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면 안 돼.”라는 말에 “왜요? 국가에서 발급해 준 자격증을 왜 학교가 막아요?”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 그 밖의 하드코어적인 예시와 답변은 생략한다.   

   

 예상을 뒤엎는 학생과의 핑퐁 대화가 오가다 보면 기운이 달리기 시작한다. 애초에 서로의 논리는 출발점이 달랐다. 품위를 갖추고 친절하게 대답을 거듭하면서도 정신은 혼미해지고 가슴은 요동친다.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내 앞에 있는 나보다 한참 어린 저 아이는 누구인가? 저 아이에게는 인생에서 찰나로 마주친 내가 거듭하는 이런 말이 의미는 있을까? 저 아이의 생각과 행동에 과연 변화가 있기는 할까? 그나저나, 이게 이렇게 한참을 이야기할 일인가? 이토록 진지할 일인가?’     


 자괴감과 당혹감이 앞다투어 올라올 무렵 학생이 훅을 날린다. “제가 반성할 수 있게 설득 좀 해 보시죠.” 그 순간 나는 붕괴된다. “야!!!” 교사의 껍질을 벗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고성을 지른다. 이것이야말로 요즘 흔히들 말하는 ‘흑화’의 적확한 사례라고나 할까. 흑. 흑. 흑.     


 어떻게 보면 참 별 것도 아니다 싶은 일이 극으로 치달았다. 그런데 정말 별 게 아니었을까? 사소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질서와 도덕적 가치는 사소한가 사소하지 않은가. 학생들을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마냥 두지 않는 나는, 정해진 공간과 시간에 가둔 채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나의 행동은 사소한가 사소하지 않은가.


 학창 시절에 가출하여 방황을 거듭하다 교도소에서 스무 살을 맞은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인생에서 자신을 야단친 사람은 학교 선생님과 형사뿐이었다고 했다. ‘더 많은 이들이 나를 붙들어줬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라고도 했다. 그가 만난 교사와 형사는,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했을 것이다. 사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할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다시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오늘 내가 학생에게 한 행동이 길에서 마주한 누군가를 향한 것이었다면? 오지랖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학교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을까. 학생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다듬어주는, 올바른 성장을 간절히 바라는 역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을 믿어보고자 한다. 내 말과 행동이 하나의 물방울이기를, 지금은 아무 영향이 없어 보여도 언젠가 하나의 큰 힘으로 작용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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