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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하 Apr 29. 2024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영어로 ‘identity’, 사전적 정의로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 꽤 심오한 단어다. 당신의 정체성은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으며 그중 무엇으로 대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정체성이 온전히 흔들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적당히 복작복작한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노련해진 듯하면서도 조금은 단호함과 자신감이 사라지기 시작한 20년 차 교사 생활에 접어든 나는 그날도 점심 식사 후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느슨한 마음으로 걸어가던 내 시야에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펼쳐졌다. 여자 친구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듯하던 한 남학생이 뜬금없이 복도 바닥에 ‘퉤엣!’ 하고 침을 뱉은 것이다! 오전에 청소 여사님이 반들거리도록 닦고 지나가신 자리에 후두두 떨어진 그 잔해물이라니!     


 선택의 기로에 섰다. 날도 좋고 배도 부르니 방금 본 저 장면은 흐린 눈으로 못 본 척 지나갈 것인가, 아니면 저 학생이 다시는 반복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줄 것인가. 짧은 순간 MBTI 유형 ENFP(대표적인 특징으로 ‘풍부한 상상과 통찰을 발휘한다’와 ‘싸움을 하려면 심장부터 뛴다’가 있다) 교사의 머릿속은 - 내가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1년 후 젊은이들의 성지인 홍대 길바닥이 흥건한 침으로 바다를 이룰 것인지, 아니면 선진 국민임을 보여주는 뽀송뽀송한 땅으로 거듭날 것인지가 달려있었으므로 – 복잡해졌다. 그렇다! 나는 침 파도가 넘실대는 홍대에서 헤엄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청결한 곳을 거닐 자격이 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뿐!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결연히 그 학생에게 다가갔다.      


 “땡땡아, 샘 다 봤어. 니가 뱉은 침 닦아.”

... 어라? 땡땡이는 대답도 없이 얼굴을 찌그린다. 내 목소리가 작았나? 아니다. 땡땡이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여자 친구 앞에서 소위 ‘가오’가 서지 않게 만든 내게 불만이다. 아니 그럼  나는? ‘내’ 가오는? “땡땡아, 교실에 가서 걸레 갖고 와서 닦아.” 그제야 땡땡이는 천천히 교실로 향했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들고 나온 손걸레를 바닥에 툭! 던져 발로 설렁설렁 문대니, 바싹 마른 걸레가 침을 스친 바닥엔 여전히 잔상이 남았다. 아, 여기서 멈춰야 하나. 제발, 아니야, 마무리는 지어야지. “땡땡아, 물을 묻혀서 제대로 닦아야지. 가서 걸레 적셔 와.” 땡땡이의 분노 게이지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태연한 척 따라갔고, 마침내 수돗가에 도착한 땡땡이는 물을 틀며 크게 읊조렸다. “아이고오~~아줌마!!”

‘왓....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비현실적인 상황에 나는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아줌마라고요 아줌마아~, 내가 샘 아들이에요? 왜 아들 부리듯 시켜요? 내가 침을 뱉었는지 물을 뱉었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렇다. 나는 아줌마가 맞다. 연령상 아줌마이고, 학교에서는 교사이며, 가정에서는 아내이고 엄마인 다양한 나. 그럼에도 그날이 교직 생활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은 이유는, 그 학생이 교사라는 정체성으로 서고자 했던, 그러니까 ‘교사와 학생’이라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난 교사로서의 나를 온전히 부정하고, ‘아줌마’라는 용어를 내게 다분히 의도적인 멸칭으로,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혹은 스쳐 갔어도 상관없었을 대상으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핏 보면 블랙코미디 같기도 했던 이 아줌마 호칭 사건은 학교에서도 꽤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서 결국 교권보호위원회로 이어졌고, 해당 학생에게 출석 정지 7일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지며 마무리되었다.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자리였다. (참석한 학부모 위원과 교원 위원들에게 ‘그 학생이 저를 아줌마라고 했어요!’라며 구구절절 진술하는 내 쭈글한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수치, 자학, 후회의 삼단 콤보로 만들어진 피폐함이란 감정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인해 이전부터 여러 교사들에게 아슬아슬 선을 넘던 일부 학생들의 언행이 재정비되었으니,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 내 노력이 마냥 헛되지만은 않았다.      


 우리가 타인의 정체성을 존중할 때, 서로 간의 경계는 안전하다. 제발 그 경계가 온전히 지켜지기를, 그래서 우리 모두 품위를 갖출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희망한다.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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