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모든 교사에게 일년 중 가장 공포스러운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모두 새 학년이 시작되는 개학 전날이라고 답할 것이다. (바로 오늘이다. 아악!) 특히 개학 전 일주일은 몸과 마음 뿐만 아니라 주위를 재정비하는 기간으로, 내 주변의 많은 교사들은 갑자기 집안 곳곳을 째려보다 온갖 물건을 다 내다 버리거나, 수십 년 간 헐벗고 다녔던 사람인 양 비장하게 출근복을 구입하거나, 냉장고를 반조리 음식으로 꽉꽉 채우거나, 다시는 TV를 못볼 것처럼 드라마를 밤새도록 정주행하는 등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처럼 형형한 눈빛으로 분주히 움직여댄다.
나는 왜 교사가 되기 전엔 학교라는 곳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곳임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을까? 덕분에 나는 8살 이후로 지금까지 파블로프의 개처럼 수업 종이 울리면 마음속 깊이 돌덩이가 내려앉았다가, 쉬는 시간 종소리에 침만 안 흘릴 뿐 있는 힘껏 날뛰고 싶은 기분을 무려 40년 가까이 느끼며 살고 있다. 그래서 이맘때면 많은 교사들은 여지없이 자학, 자책, 분노, 얼마간의 희망이 섞인, 희로애락이 짬뽕되어 우주로 날아갈 것 같은 글을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다. 분명 한 달 전만 해도 ‘원 없이 늦잠을 잤어요’, ‘저도 평일 브런치를 먹었어요’, 혹은 ‘쇼핑몰을 천천히 거닐었어요’, ‘세상에나 제가 요리를 했어요!’ 류의 글이 올라왔었는데 말이다. 기억도 안 나는 그 시절은. 그야말로 화양연화였던가.
왜 개학 전날이면 이처럼 미칠 듯한 감정이 밀려드는 걸까. 특히 몇 년 만의 근무교 이동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교사들의 압박감은 최고조인데, 조금 전 읽은 한 게시글은 이를 생생히 보여준다. ‘새 학교 가시는 선생님들 마음 어떠세요? 저는 몸 속 장기들이 다 분리된 느낌이에요. 저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아요.’
새 근무지든 아니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새학년 시작 전 교사가 받는 극도의 긴장감의 원인은 깨나 비슷하다. 우선, 매년 많은 것이 바뀐다. 학교마다 시스템은 조금씩 제각각인데, 맡은 업무와 학년에 따라 교무실과 교실을 옮긴다. 동학년 동교과 교사 뿐만 아니라 관리자가 바뀌기도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바뀐다. 간혹 전년도에 맡았던 학생들을 다시 만나기도 하지만 학급 편성에 따라 반 분위기는 달라지며, 여러 색채를 띤 학생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냐에 따라 그해 펼쳐지는 모습은 변화무쌍하다. 게다가 학생들과 더불어 만나는 학부모들 또한 예측할 수 없으니 이들 모두와 별 탈 없는 원만한 한 해를 보낼 생각에 수업은 차치하고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몇년 새 교권 추락을 뚜렷이 체감하고 있기도 한데, 작년 여름 신규 선생님을 안타깝게 떠나보낸 아픔과, 이전부터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겪은 비슷한 아픈 경험이 더해져 한 해의 시작이 더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걱정이 타래를 물고있던 중 어떤 선생님의 놀라운 글을 읽었다. 내일 개학이 감당할 수 없이 힘들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교직에 들어온 후 수십년 간 경험한 안 좋은 일을 한꺼번에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교직 생활 중 안 좋은 경험도 했지만 행복했던 경험도 분명 했다고. 그러니, 그 모든 안 좋은 경험을 떠올리는 어마어마한 1년을 상상하며 미리 압도되기보다는 당장 내일 하루를 경쾌하게 살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출근해서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시자고. 처음 만난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급식을 맛있게 먹고, 퇴근하면 고단했던 하루를 보상하며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깨끗이 샤워를 하자고. 한 해를 짊어지려하지 말고, 하루를 짊어지자고.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이토록 놀라운 위로가 있을까. 내가 느낀 공포가, 며칠 전부터 땅이 꺼질 듯 내려쉬었던 한숨이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거창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내일 하루를 산뜻하게 살아내면 된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그리고 한숨 돌리고, 다음날을 살면 된다.
나는 여덟 시간 후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것이고, 고등학교 신입생 생활을 시작할 그 아이들이 느낄 긴장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똑같은 말을 해 주고 싶다. 좌절이 반복될지도 모를 어마어마한 3년을 상상하며 미리 압도되기보다는 당장 오늘을 경쾌하게 살자고. 고등학교 3년을 짊어지려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짊어지자고.
(202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