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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하 Apr 29. 2024

글을 쓴다는 것, 작가가 된다는 것

  내가 처음 자발적으로 ‘내돈 내산’ 글쓰기 강의를 들은 건 20년 전이다. 당시 나의 꿈은 장르도 뭣도 모르면서 아무튼 작가였지만, 아무도 내 글을 읽어주는 이가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공포스러워서 차마 부모님께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못한 채 교사가 되었다. 아, 하지만 교사는 쉬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도 다른 첫 직장 생활에 시들시들해지며 틈만 나면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소설책을 읽던 어느 날, 그럼 역시 작가인가, 하여 소설 쓰기 강좌를 찾아 등록하게 되었다.      


  강의 장소는 신촌이었다. 근무지인 이천에서 퇴근 시간 교통 정체를 뚫으며 두 시간을 내달려야 도착할 만큼 먼 곳이었지만, 순전히 자발적으로 신청한 강의라 그런지 신기하게도 가는 길이 버겁지 않았다. 게다가 강사분은 소설 쓰는 법을 다양한 작품 속 문장으로 제시하며 촘촘하고 흥미로운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강의를 듣고 나면 내 안에서 무언가 빰빰빰빰 차오르면서 후르륵 써질 것 같았던 소설이 도무지 써지지를 않는 거다. 소설 창작이 그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등장 인물을 설정하자니 그야말로 내 속의 내가 너무도 많아지는데,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다중 인격인가 싶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과제를 제출하는 수강생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강사님의 목소리는 점차 애절해졌다. ‘숙제 내실 분 안 계신가요?...글은 꼭 써보셔야 느는데요...’ 결국 나는 단 한 번도 과제를 제출하지 못했고, 의욕만 앞섰으나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하여 ‘역시 꿈은 꿈일 뿐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이번 겨울 방학 동안 글쓰기 수업을 함께 듣지 않겠냐고 친한 선생님이 연락을 해왔다. 그동안 내가 써온 글은 고작해야 SNS에 간간이 올린, 그마저도 소심하게 친구에게만 공개한 일상 글, 학생 생활지도를 위한 교사의견서나 생활기록부 글이 다였는데 글쓰기 수업이라니? 20년 전 기억이 떠올라 처음엔 망설였다. 이번엔 쓸 수 있을까? 마침 강사분이 내가 즐겁게 읽은 에세이의 작가란다. (그의 저서 ‘베를린 일기’ 중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 후 ‘아무 것도 하기 싫다.’라고 적힌 에피소드에 웃음이 터진 기억이 있다.) 심지어 ‘글쓰기의 본격적인 잔기술’이라니! 거창하고 진지한 것을 받아들이기엔 기력이 쇠해가는 내게 부담없는 강의 제목이었다. 그래, 도전한다! 담대해진 나는 수강신청을 클릭했다.      


  수업 첫 날, 성별, 나이, 학력 등의 어떤 제한도 없이 오직 글쓰기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수강생들을 보자 마음이 환해졌다. 수업을 테트리스처럼 교환하고 바쁘게 날아온 교사들이 분노가 장착된 채 모여 듣는 의무 연수 때와는 달리 글쓰기 강의 수강생들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기 때문이었다. 수업은 또 어떤가, 별다른 기술이 없을 거라 생각한 에세이도 정교한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써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놀라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이번 강사님은 수강생 모두 과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히셨으니, 도무지 안 쓸 수가 없었다. 역시 나 같은 사람에게 숙제는 강제성이 있어야 하는 거였다!      


  자유 주제로 글을 써 나갔다. 시원하게 달리는 듯하다가도 손가락이 멈추는 순간이 즐거웠다. 쓴 글을 반복해서 읽어보고 자판으로 도르르 지웠다가 다시 쓰는 그 신선한 느낌이란! 내 글을 꼭꼭 씹어서 맛보는 기분과 더불어 작가님께 피드백까지 받으니 신이 났다. 생각해 보니 지금껏 살면서 내가 쓴 글에 대한 구체적인 감상평을 들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글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구나. 하지만 동시에 괴로운 마음도 찾아왔다. 글을 쓸 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며, 생각보다 쓰는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수업과 업무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퇴근 후 녹초가 되는 학기 중에 과연 제대로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이러다가 내 평생 쓴 에세이는 강의 중에 제출한 과제 네 편으로 끝나는 건 아닌지.     


  장강명 작가는 ‘기자 일을 그만둔 후 겁에 질린 채로 글을 썼다’고 했다. 나는 겁에 질릴 용기도 없으므로 분명히 그와는 달리 일과 글쓰기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아니 사실 그보다도  인생의 낭비인 스마트폰 사용을 줄여야 할 것이다. 그 시간에 글쓰기를 하자고, 일단 다짐한다. 지금의 결심을 단지 새해라서 하는 것이 아니면 좋겠는데, 제발, 올해는 새해 다짐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언젠가 오늘을 돌이켜보며 ‘글을 쓴다는 것, 작가가 된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글을 남길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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