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즐기는 방법

by 이지하

2025년 추석 연휴는 장장 열흘 가까이 될 것이라 예상한 글을 인터넷으로 접한 건 대략 5년 전이다. 누군가의 설레발과 부지런함으로 만들어진, 한 달 중 절반가량의 날이 빨간 숫자로 가득한 미래의 달력을 보며 과연 그날이 오기는 할까 아득했던 기억이 난다.


긴 연휴 동안 무엇을 할까 막연히 생각만 하다 아무런 일정을 잡지 못했다. 몇 주 전에야 혹시나 하며 항공권과 숙소를 검색했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매진이거나 아니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높은 가격대에 슬며시 화면을 닫을 수밖에.


민족 대이동의 시기에 나까지 움직일 필요가 있을까. 서울 도심도 케데헌의 여파로 북적인다던데,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곳에 가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그렇게 여우의 신포도 같기도 한 마음으로 연휴를 맞았다. 어디든 나가볼까 싶다가도 아침부터 내리는 비에 집에 머물기를 반복했더니 휴일이 다 지나버렸다. 그래서 허무한가 묻는다면 웬걸, 지극히 만족스럽다.


먼저, 명절 전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연휴 동안 원 없이 읽었다. 비교적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장편소설부터 가볍게 머리를 식히기 위한 추리소설, 아무 부분이나 펼쳐 읽어도 좋은 단편 소설집과 에세이까지, 소파에 앉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고 다시 일어나면 읽기를 반복했다.


식사 준비는 어떠한가. 퇴근 후 헉헉대며 차린 밥상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급히 준비한 것이었다면, 이번 식탁엔 몇 달 전 당근마켓에서 사둔 인스턴트팟을 이용한 메뉴가 등장했다. 이렇게 쉽게 요리를 해주는 도구가 있었다니! 내내 감탄하며 각종 메뉴를 시도하는 나를 보며 남편과 딸아이가 물개박수를 쳤다.

다음으로 TV 시청. 주중에도 휴일에도 TV를 본다는 것은 내게 큰 결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다른 일을 집약적으로 마치거나 잠을 줄여야 했으니까. 그러던 내가 연휴 동안 ‘은중과 상연’을 보며 분노하다가 슬퍼했고, ‘비서진’의 이서진과 김광규를 보며 모처럼 깔깔 웃었다. 잡념이 들어올 새가 없이 화면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이 얼마 만이었는지.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데 만족도는 배가된 이유는 뭘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다른 일을 하며 지낸 것도 아니었다. 다만 평상시 주말에 하던 일을 쫓기는 마음 없이 느긋하게 했다는 점만 달랐다. 평소 주말이면 한 주간 미뤄온 집안일을 집중적으로 끝내고 하던 독서, TV 보기, 낮잠, 가벼운 외출 등을 이번 연휴엔 아주 느리게 반복했을 뿐이었다.


휴일 마지막 날 참석한 저녁 미사에서 펼친 주보글 중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평범함 안에 숨은 특별함 발견하기’라고 시작한 그 글은 마치 이번 연휴를 보낸 내게 건네는 말 같았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도 유명 맛집을 찾지도 않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천천히 살아내며 내가 한 일은 사실 모두 특별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충분한 휴식이 끝나고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주어진 일을 숙제하듯 버겁게 해내던 일상이 조금만 숨을 고르며 한다면 즐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어쩌면 앞으로 보낼 시간은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아, 사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나를 느긋하게 만들어 줄 ‘시간’이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연휴가 필요한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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