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어느새 새벽이다. 비몽사몽 중에 살며시 입안을 혀로 더듬는다. 까끌까끌. 어제와 다른 촉감이 영 낯설다. 비틀대며 일어나 물을 찾아 마시자 잇몸 전체에 우릿한 통증이 번진다. 오소소 돋는 소름. 그나마 이 정도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오랜 시간 앞니 안쪽을 가지런히 잡아주던 철사가 미묘하게 뒤틀린 느낌은 나만 알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새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날 내 모습을 지켜본 이들이 그렇게 말했다. 창공을 가르며 전속력으로 비행하는 새 같았다고. 나도 자유로웠다. 비정한 인간이 만든 건물의 유리 벽에 머리를 꽝 부딪치고 생을 마감하는 도심 속 새들처럼, 급식실 투명 유리문에 온 힘을 다해 돌진하여 얼굴을 들이받기 전까지는.
중학생 시절의 잘못으로 고등학교 입학 직후 소년원에 들어갔던 학생이 여덟 달 만에 학교로 돌아온 날이었다. 교무실을 찾아온 아이는 달라져 있었다. 살이 올라 교복은 작아졌고 가방 속 교과서는 보이지 않았다. 음지에 있던 아이를 최대한 신속하게 양지로 옮길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서둘러 아이를 반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인사시킨 뒤, 교복과 교과서 구입 안내문을 건네며 다짐시켰다.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오늘 하루 잘 지내보자. 아이도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네.라고 답했다.
아이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 후였다. 수업 중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나간 아이는 쉬는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교내를 샅샅이 살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제야 찾아본 CCTV 화면에서 아이는 망설임 없이 건물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화면에 잡힌 건 달려오는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차도를 내달리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얼마 후 급식실로 내려와 문득 밖을 내다보니 아이가 교문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화면 속 아이가 실물로 나타나자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이를 놓칠세라 시선을 고정시킨 채 전속력으로 달리던 나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급식실 문을 들이받고 주저앉았다. 식사 중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수십 명 교사의 비명 소리는 그보다 더 컸다. 나는 부끄러움과 아픔이 뒤섞인 채 달려 나가 아이를 붙잡았다. 문득 입안을 굴려보니 이물감이 느껴졌다. 내 앞니는 부서졌다.
아이 지도는 온데간데없이 급하게 조퇴하여 치과에 간 나는 간신히 앞니를 복구했다. 모양은 되살렸으나 기능을 잃은 앞니를 거울에 비춰 보며 끝없이 자책했다. 내 아까운 앞니... 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내달렸던가. 급식실 유리문은 왜 그리 투명했던가. 그건 그렇고, 애초에 나는 진심으로 학생을 지도할 생각이 있었던가? 그저 순간적으로 솟구친 도파민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던가?
이튿날 출근하여 그 학생이 학교를 훌쩍 나갔다 온 이유를 전해 들었다. 아이가 지난 8개월간 머물렀던 보호시설은 대전에 있었다. 그곳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했던 아이가 마침내 자유를 얻던 날, 아버지는 성심당 빵을 한 아름 사서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다음 날 등교한 아이는 급식 시간이 12시 40분부터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지냈던 곳보다 무려 40분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갑자기 뱃속이 허전해졌다. 문득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성심당 빵 한 무더기가 떠올랐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대로 학교를 벗어난 아이는 집에서 원 없이 빵을 먹고 돌아왔다. 너무 배가 불러서 급식은 먹을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사연을 전해 들은 나는 어질어질한 상태로 급식실을 찾았다. 하루 사이에 급식 메뉴는 다르게 보였는데 그것은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양쪽 이로 음식을 살살 굴려 먹던 나는 용기 내어 석박지를 살짝 깨물었다가 찌릿한 통증에 내려놓았다. 조심스레 다시 집어 든 석박지를 살짝 핥으며 성심당 빵을 떠올렸다. 등교한 아이마저 집으로 불러들인 그 빵은 도대체, 얼마나 맛있었던 걸까.
겨울방학이 될 즈음이면 앞니의 통증도 사라지겠지. 그렇게 되면 이번 겨울에는 꼭 대전을 가 봐야겠다. 그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그 아이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내 나름의 적극적인 방식이다. 성심당에 도착하면, 그곳의 빵을 잔뜩 사서 하나하나 천천히 맛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르겠다.
“이 빵은 과연, 내 이와 바꿀 만한 맛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