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붙잡히는 삶

by 이지하

정신 차려.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돼.


거북목을 한 채 휴대폰을 만지작대다 문득 현실을 자각한다. 휴일의 대부분을 소파에 앉아 휴대폰과 함께 보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영상과 다글다글한 글자에 시선을 빼앗긴 채 오늘 또 하루를 날려버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꽤 심각한 스마트폰 중독 상태다.


스마트폰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건 대략 15년 전, 아이를 낳고 100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남편이 출근하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홀로 아이를 돌봤다. 아이는 등이 바닥에 닿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울다가 아기띠에 업히면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정적만이 살 길이라 여기고 TV도 틀지 못하던 내게 어느 날 남편이 스마트폰을 사다 주었다.


아기띠로 아이를 업고 두 손이 자유로워진 나는 핸드폰을 쥔 채 거실을 서성였다. 별다른 앱이 없었던 초기 스마트폰 사용 시절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북(e-book)이었는데, 그중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기에 제격이었다. 어느 순간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해 아기띠를 찾았다. 그저 이북을 읽기 위해 울지도 않는 아이를 업었다. 고단한 육아를 견디게 해 준 스마트폰은 분명 고마운 존재였다.


위안은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결국 중독이 되었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내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잘 때 머리맡에 둔 폰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집어든다. 뉴스를 읽다 즐겨 찾는 커뮤니티의 글을 훑고, SNS를 열어 스크롤을 내린다. 번쩍번쩍 화면이 바뀌는 숏츠를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무언가를 검색한다. 갑자기 사고 싶어진 것을 찾아 결제하고, 공동구매 채팅방에 실시간 올라오는 물품의 주문 댓글을 단다.

새로운 자극과 정보가 머릿속에서 팝콘처럼 터진다. 몸은 소파에 붙어 있으나 내면은 잠잠해질 틈이 없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가벼운 글과 강렬한 영상이 내 안에서 함께 뒤엉키다 잔잔한 조바심으로 남아 나를 휘감는다.


설 연휴, 모처럼 가족과 모인 자리에서 TV를 보았다. 여행 프로그램에서 스코틀랜드의 한 시골마을을 보여주고 있었다. 폐쇄 직전의 기차역사를 사들여 수년 동안 고쳐 숙소를 만든 한 남자가 나왔다. 하루에 두어 차례만 기차가 정차하는 그곳을 소박하게 가꾼 남자는 해 질 녘 역 앞 의자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셨다. 지는 해를 감상하던 그가 말했다. '이게 인생이죠.'


한참 동안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화면 속 세상만을 하루 종일 더듬고 있는 나의 일상과 명확히 대비되는 그의 삶은, 단순하면서도 오히려 꽉 차 보였기 때문이었다. 해야 할 일이 넘쳐 분주한 일상을 사는 내가 그의 삶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삶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어도, 시선의 방향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극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잠시 숨 돌릴 순간을 허락하는 일. 작은 화면 속 세상이 아닌 내 눈앞의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는 일.

스마트폰을 완전히 내려놓는 생활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덜 붙잡히는 삶을 살고 싶다. 느린 삶을 살지는 못하겠지만, 느린 마음만큼은 지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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