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는 생각이 며칠째 둥둥 떠다닌다. 커피를 마신 것도 아닌데 온종일 가슴이 두근거린다. 머릿속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넘나 드느라 쉴 새가 없다. 그간 내렸던 결정과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 그에 따른 후회가 무한 재생된다. 앞으로의 일을 상상한다. 이렇게 될 거야. 아니야, 저렇게도 되겠지. 됐고, 일단 잠을 자고 내일 다시 생각해 보자.
아이가 고등학교 배정을 받은 지 이틀이 지났다. 몇 달 전 고입 원서에 진학 희망교를 작성할 때만 해도 상상해 본 적 없던 학교였다. 발표 당일, 배정된 학교를 알리는 문자를 받고도 스팸 메시지가 아닐까 의심했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50명도 넘었던 같은 반 친구들 중 나 혼자 다른 학교로 배정된 통지표를 받아 들던 순간 막막했던 마음. 30여 년 만에 아이를 통해 되살아난 감정이었다.
심란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폭탄처럼 쏟아졌다. 쿠팡을 탈퇴하면 뭐 하나. 내 정보는 이미 학원가에 넘어간 지 오래인 것을. '귀 자녀의 고등학교 배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출발선에 함께 하겠습니다!'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문장과 더불어 배정받은 학교를 입력하라는 링크가 앞다투어 날아들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학교 이름을 입력하자, 곧이어 학교별 내신 강좌를 알리는 문자가 수신함을 가득 채웠다.
고등학교 교사인 내가 학교 배정 소식과 학원 문자에 마음이 휘청이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했던가. 그동안 익숙해 보였던 모든 광경이 내 아이의 상황이 되자 돌연 낯설게 변했다.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초저녁부터 집 앞 호프집을 찾았다. 홧홧한 속을 달래려 차가운 맥주를 꿀떡 삼키던 중 동네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저녁 7시에 있을 학원 설명회를 가잔다. 오늘 발표가 났는데 오늘 설명회를 한다고? 침침한 눈으로 휴대폰 수신함을 뒤적였다. 너무 많아서 오전에 잠시 읽다 포기한 문자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비장하게 시작을 알리는 설명회 안내로 빼곡했다. 에라 모르겠다. 친구의 제안에 대답하지 않고 남은 맥주를 비웠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타조가 위험에 처하면 모래 속에 머리를 콕 박는 것처럼.
이튿날 교복을 맞추러 길을 나선 아이는 엄마의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들떠 있었다. 교복을 입어보는 아이들로 복작거리는 가게 안에서도 반짝이는 눈으로 연신 옷을 만지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 입어보는 교복 치마 차림으로 거울을 보고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이번에도 나는 빛나는 순간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눈앞에 햇빛이 쏟아지듯 아이가 웃고 서 있는데, 과연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앞으로도 걱정할 일은 많겠지만, 부모로서 내가 할 일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이라는 걸. 케세라 세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니 오늘의 설렘부터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