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서

by 이지하

1년 전 이맘때쯤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건강한 습관을 내세운 모임이면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다가도 금세 시들해지기 일쑤였던 나는, 가입 순간에도 언젠가 탈퇴(당)할 날을 상상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 그곳에 있다. 한 달에 읽은 책 중 세 권의 감상평을 올리면 되는 너그러운 규칙 덕분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게으른 내가 무언가를 꼬박 읽고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매년 1월 각자 읽고 싶은 책 50권 목록을 작성하는데 그 또한 즐거운 과정이다. 버킷리스트를 써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목록의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수시로 쏟아지는 신간에 마음을 빼앗겨 작년 목록의 절반도 읽지 못했다. 이번 달도 계획과 다르게 읽은 책들이 있는데 그중 세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두 도시 이야기(찰스 디킨스)

“2025년에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았다”며 친구가 추천해서 읽은 책이다. 내 독서 생활에서 고전은 늘 현대소설의 뒷전으로 밀리곤 했는데, 올해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읽어보고자 마음먹었다.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내가 읽은 프랑스혁명 배경의 작품은 초등학생 때 읽은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가 유일하다. 분석은 차치하고 직관적인 감상평을 하자면, <두 도시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혁명 전후 참혹한 상황에서 프랑스 국민이 어떻게 살았는지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활자를 통해 상상으로 구현하는 세계는 영상으로 접하는 세계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는다는 것을.


2. 테이블 포 투(에이모 토울스)

무인도에 가져갈 수 있는 현대 외국 작가의 소설을 단 한 사람의 작품으로 제한한다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가혹한 질문이지만, 나는 단연코 에이모 토울스를 고를 것이다. <모스크바의 신사>, <우아한 연인>, <링컨 하이웨이>에 이어 네 번째로 만난 그의 작품 <테이블 포 투>를 작년 여름에 사고도 반년이 지나서야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먼저 읽다 보니 순서가 밀린 탓도 있지만, 그의 책만큼은 학기 중에 급하게 읽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가 쓴 문장을 꼭꼭 씹어 음미하다 보면 내 안에도 품위가 슬며시 자리 잡는 느낌이 든다. 이번 책에 수록된 '할리우드의 이브'에는 이전 작품인 <우아한 연인>의 이브가 등장하여 반가움을 더한다. 1930년대 미국을 흠뻑 경험하고 싶은 사람, 간간이 나오는 독백과도 같은 작가의 유머를 음미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3.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이슬아)

이슬아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 책은 자기 계발서 같은 제목이 큰 장벽이었다. 나는 나와 동시대를 사는 누군가가 “이렇게 살아라”라고 확언하는 글에 유독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다행히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었다. 이슬아 작가는 일면식 없던 이들, 이를테면 드라마 작가 노희경에게, 가수 장기하에게, 그리고 평소 존경했던 편집자 김진형에게 정성 어린 마음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고 결국 그들을 만나게 된다. 노희경도 장기하도 김진형도 아닌 제삼자인 나마저도 그 이메일 속 문장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으니... 제발 읽어보시라! 인생을 바꾸는 것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태도임을 보여주는 책이다.


읽고 싶은 책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나는 설렐 것이며 내 독서 경험은 이곳저곳을 넘나들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기대해 본다. 올 1월 1780년대 프랑스 혁명기의 말발굽 소리와 날 선 기요틴을 마주하고, 1930년대 대공황의 그늘 아래서도 환상을 만들어내던 할리우드 세트장을 지나, 2020년대를 살아가는 부지런한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잡은 것처럼. 그렇게 올 한 해, 한 권 한 권 읽고 난 뒤 내 안에 새로운 세계가 조용히 덧칠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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