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 서둘러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이다. 기말고사를 한 주 앞두고 밀린 진도를 따라잡으려면 평소처럼 여유롭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민첩함은 기본이다. 무엇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뻔뻔함이다.
유독 진도가 늦은 반이 있었다. 다른 반보다 무려 세 차시가 뒤처져 있었다. 이유를 이제 와서 따져 봐야 소용없었다. 중요한 건 이 시간을 어떻게 따라잡느냐였다. 평소보다 1.5배 속도로 진행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수업을 조금 일찍 시작한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니까, 쉬는 시간을 조금 쓴다면!
문제는 그 수업이 7교시라는 점이었다. 의욕은 바닥나고 집중력은 사라졌을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은 산소와도 같았다. 그 순간을 침범하는 건 분명 선을 넘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나도 물러설 수 없었다.
수업 시작 5분 전, 노트북과 학습지를 챙겨 잰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복도를 서성이던 학생들에게 함께 교실로 가자고 채근했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오던 아이들이 교실 앞문에 다다른 나를 보더니 어, 하며 멈춰 섰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 아직 쉬는 시간 5분 남았는데요?’
‘어, 알아. 근데 내가 지금 마음이 아주 급해. 지금 수업 시작하면 딱이야. 완벽해.’
‘아~ 안 돼요 샘!! 이건 아니죠! (주변 친구들을 보며) 야! 샘 막아 막아 막아!!’
앞문이 막혔다. 열일곱 살 아이들의 기세는 태풍급이라 그에 맞서려면 기민하게 움직여야 했다. 잽싸게 몸을 틀어 자리를 벗어나 복도를 내달려 뒷문을 열었다. 진입 성공. 승리감에 도취된 나는 교실 앞으로 걸어가 교탁 위에 노트북을 펼쳤다. 이제 비밀번호를 누를 차례였다. 그 순간...
자판 위로 손가락 한 무더기가 덤볐다. ‘야, 눌러! 눌러! 아무거나 눌러!’
뒤늦게 나를 따라 들어온 녀석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손가락 수십 개가 동시에 만들어 낸 비밀번호로 노트북은 일시 잠금 상태가 되었다!
이대로 질 수는 없다. 잠금화면을 멍하니 볼 시간도 아깝다. 일단 노트북이라도 TV에 연결하고자 HDMI 선을 꽂고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어라? TV가 켜지지 않는다. 꾹꾹 눌러보다 리모컨 뒷면을 열어보니 건전지가 사라져 있었다!
당황한 나를 보며 아이들이 왁자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수업이 아니라 전쟁이다! ‘건전지 내놔! 어디 숨겼어!’ 꽥꽥대던 나는 질세라 교무실로 달려갔다. 서둘러 리모컨에 새 건전지를 찾아 넣고 교실에 돌아와 총을 쏘듯 전원 버튼을 눌렀다. 드디어 TV가 켜졌다. 그런데 TV 화면만 깜빡일 뿐, 노트북과의 연결 신호가 뜨지 않는다. 아아, 이럴 수가.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노트북에 꽂힌 HDMI 선을 따라 TV 뒤편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고개를 젖히고 천장에 매달린 TV의 뒷면을 올려다보았다. 맙소사. 꽂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덩그러니 빠진 채 힘없이 매달린 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입이 절로 벌어지고 말문이 턱 막혔다. 허탈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잠시 후, 수업 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을 지켜낸 아이들의 함성이 교실을 꽉 채웠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아니 내가 계엄군이라도 돼? 그렇게까지 막을 일이야?’
‘선생님이 선을 넘으셨잖아요. 저희는 쉬는 시간은 절대 포기 못해요!’
결국 평소보다 늦게 시작한 수업으로 진도는 더 늦춰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도 들뜬 표정이었다. 마치 어려운 시험이라도 통과한 듯, 이 정도의 일사불란함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겠다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나른한 오후 단 5분 동안 교실을 가득 채웠던 강렬한 에너지를 떠올리며 나는 아이들과 내내 웃었다.
문득, 학교생활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이런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이들과 소동을 벌이다 끝내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하루는 교과서 내용보다도 어쩌면 더 오래 마음에 머물 기억일지도 몰랐다. 시간이 흘러 이날을 다시 떠올리면 나는 아마도 빙긋 웃을 것이다. 오늘의 소란이 아이들에게도 훗날 은은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