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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르 Sep 28. 2021

교사 자녀는 공부 못하면 안 되나요?  3

중 3이어도 엄마를 춤추게 하는아들이야기

예민한 딸아이를 키우다가 순딩순딩한 아들을 하나 낳았다.


이 아이는 존재 자체가 귀한 손으로 여겨지는 아이였지만, (나는 시누이만 여섯 있는 막내아들에게 시집갔다. 나보다 더한 강적이 있는가.) 나는 그렇게 귀하게만 키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인간은 자고로 고생하고(?) 성찰해야(?) 겸손해지지 않는가.


그렇다고 내가 어린아이에게 가혹하게 대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정말 순했고, 둘째라서 그런지 마냥 귀엽고 이쁘기만 했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고백하자면, 저 때의 귀여움이 아직도 나의 안경에는 묻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귀여움을 아직도 엄마에게 어필하는 그 아이는 '마의 영역' 중 3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울타리 안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그 학교를 모두 졸업한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같이 출퇴근하는 것에 익숙했다.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내내 학교 운동장에서 살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퇴근할 때까지 운동장에 누워도 있다가 뛰었다가 축구했다가 농구했다가 몸으로 하는 건 다하는 것 같았다.


이 아이를 공부하는 학원에 보낸 적이 없다. 물론 보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좀 이상한 신념이지만, 에너지를 저렇게 발산하는 초등학생을 앉혀놓고 공부를 시킨다는 것이 어쩐지 나는 부자연스럽게만 느껴졌다.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팽개치고 운동장에서 365일 땀에 쩔어 살던 아이가 우리 아들이다. 한 겨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 00이는 학원 안 가는데 나만 가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하던 친구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고, 나도 가끔 원망 섞인 소리를 엄마들에게 들었다.


공부는 그냥저냥 하다가 고학년으로 갈수록 못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뛰어노느라 공부할 시간이 있어야 말이지.


그런데 이런 아이가 6학년 때 대형사고를 쳤다.

갑자기 전교회장에 나가고 싶다고 선언하더니 덜컥 당선이 된 것이다.

(물론 엄마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혼자된 것은 아니다. 나의 결정적인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전교회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런이런 나를 그 유명한 사립학교 전교회장 엄마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 아이 덕분에 나는 팔자에 있었는지 모를 전교회장 엄마 역할을 하느라 나름 바쁘게 보낸 기억이 있다.


중학교에 올라갔다. 역시 성적은 좋아하는 과목 한두 개만 빼면 하위권이다. 중학교에 와서도 지버릇 어디 갈까.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다 이 아이가 이번에는 학교에서 핵인싸급으로 인기 있는 방송반엘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워낙 경쟁이 치열했기에 큰 기대를 안 했지만 40:1의 경쟁률(내 느낌상의 수치임)을 뚫고 방송반까지 입성했다.


얘 뭐지???? 자고로 방송반은 공부 잘하는 엘리트들의 전당 아닌가.

솔직히 이 아이가 기계를 잘 다룰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아주 잘하고 있다.

아이는 경쟁을 즐기고 있었다.

(갤럽 강점검사 결과로 승부가 13위이고 그 안에 자기확신이 있다. 하지만 승부보다 미래지향(4위)테마가 더 작용한 듯하다. 미래의 내 좋은 모습을 그리기 좋아하는 타입임. TMI로 아들의 갤럽 강점 검사 결과의 1위는 '행동'이다. 무조건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이다.) 


나는 경쟁을 좋아하지 않기에 날 닮은 것 같지는 않다.


공부에 대한 잔소리가 많지 않아서였는지, 운동장에서 한평생을 보낸 경험이 많아서인지 무엇때문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 아이가 중학생임에도 아직도 사랑스럽기만 한 이유를.


아들은 인생 경력이 짧아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지만, 중요한 건 아직도 우리는 만나면 부둥켜안고 뽀뽀도 하고 난리도 아니라는 거다.


본인도 자기 같은 아들은 우주에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며 본인의 공이 높은 듯 이야기하지만, 이건 순전히 나의 공이다. ^^ (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중 3 돼서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학원을 보내달란다.

지금은 학원 다니며 열심히 공부한다. 결과는 뭐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아이가 스스로 무언갈 한다는 거, 나는 그것만 본다. 그것만 생각하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공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와 정말 행복한 사춘기를 보낼 수 있다.

아이들은 믿어주면, 닦달하지 않으면 신기하게 언젠간 한다.


중학생 아들을 이렇게까지 자랑하는 건 글 쓰는 내내 나도 불편하다.

읽을 분들도 불편하실 수 있으니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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