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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드북> - 막이 내리면 시작되는 이야기

by 지온

마지막 문장과 함께 끝나는 책이 있는 반면 마침표와 함께 시작되는 책이 있다. 콘텐츠끼리 누가 먼저 휘발되는지 겨루는 듯한 요즘, 아주 오랜만에 끝남과 동시에 시작되는 이야기를 만났다. 뮤지컬 <레드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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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고 했던가. <레드북>은 어디든 가는 여자의 이야기다. 19세기 영국, 여성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유일한 덕목은 조신함과 내조뿐인 빅토리아 시대.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폭력을 일삼아도 꾹 참아야 하는 시대에,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스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괴짜 같은 여자가 바로 주인공 안나다.


안나는 약혼자에게 첫 경험을 고백했다가 파혼 당한 여성이다. 남자보다는 돈이 필요하다며 직접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고 그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하면 맞서 싸우다가 감옥에 가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안나는 사랑에 설레기도, 상처받아 슬퍼하기도 하는 아주 입체적인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이 안나를 묘사하는 말이 전부 다른 것처럼 이 인물은 어느 한 형용사에 가둘 수 없다. 안나는 드센 여자도, 이상한 여자도, 착한 여자도 나쁜 여자도 아닌 그냥 … 안나다. 이를 증명하듯 첫 등장부터 “난 뭐지? 나는 나야 나는 안나”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레드북이 전하는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다. ‘나’로 서 있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기. 누가 뭐라든 간에. 안나는 우연히 여성문학회 ‘로렐라이 언덕’에 들어가 안나처럼 글을 쓰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여성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때, 본인의 신체와 성에 대해 가감 없이 써내려간 ‘야한 소설’을 문학회의 잡지 ‘레드북’에 싣는다. 이는 곧장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그러면서 생기는 위기와 극복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끝에 안나가 깨달은 사실은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라면, 내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오답이 되겠노라고,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기겠노라 다짐한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충분해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中



안나는 다른 이들에게 나처럼 살라고 설득하거나 이해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누구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으며 나로서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스스로 꼿꼿하게 서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귀감이 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안나를 보며 다른 인물들도 서서히 바뀌어 간다. 안나의 글을 읽은 런던 시민들은 물론이고 안나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였던 원칙주의 변호사 ‘브라운’도 안나에게 스며든다. 브라운의 변화는 법정의 판검사들의 변화까지 이끌어낸다. 딱딱하기만 하던 판검사들의 변화가 또 무엇을 얼마나 더 바꿨을지 상상해 보면 웃음이 난다.


그렇게 안나는 피할 수 없는 향기처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킨다. 시대를 통째로 바꿔버린 안나가 문학회의 회장이 된다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결말이 아닌 여전히 명랑하게 안나 그 자체의 삶을 살아가며 끝나는 것도 좋았다. 그 모든 일이 있고 난 후에도, 안나는 여전히 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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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을 보는 동안 내 옆에는 또 다른 안나가 앉아 있었다. 그 안나의 이름은 엄마. 뮤지컬을 보면서 처음으로 엄마의 글을 본 날이 떠올랐다. 살아오면서 엄마가 쓴 글을 볼 기회도, 보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쉰이 넘은 엄마는 돌연 대학에 입학했다. 과제를 제출하기 전에 먼저 봐줄 수 있냐고 물어와 그때 처음 엄마의 글을 읽게 됐다.


종이에는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처음보는 엄마의 마음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지난 날의 상처와 지금의 흉터. 어떻게 극복했는지와 혹은 극복하지 못했는지. 읽는 나는 눈시울을 붉혔지만 쓴 엄마의 표정은 천진했다. 엄마는 글을 쓰면서 많이 후련해졌다고 했다. 내 마음을 마주하게 되던 시간이었다며 쓰기 전보다 쓰고 난 후에 더 가벼워졌다며 좋아했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엄마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뮤지컬을 보고 나온 엄마는 가장 좋았던 부분으로 글쓰기를 ‘우리는 우리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거예요’라고 설명하는 대사를 꼽았다. 엄마도 글을 쓰며 자신을 위로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겠지.


안나, 우린 이상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거예요.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할 지 모를 때

어딘가 털어놓고 싶은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를 이 종이 위에 담아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中


내가 엄마를 떠올린 것처럼 안나의 얼굴에는 참 많은 이들이 스친다. 나, 엄마, 친구, 어떤 작가, 이제는 볼 수 없는 어느 젊은 가수, 이름도 모르고 연대했던 수많은 여성들. 국가도 시대도 달라도 한참 다른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 <레드북>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2시간 동안 안나의, 안나에 대한, 안나에 의한 이야기를 펼치던 극은 안나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로렐라이 언덕의 신입회원 환영회. 로렐라이와 도로시는 신입 회원들에게 “제2의 안나가 되려고 하지 말고 제1의 당신이 되세요”라고 말한다.


화룡점정으로 마지막 넘버에는 관객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당신의 얘기를 들려줘요”라고 외친다. ‘지금까지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사는 안나의 이야기였습니다! 모두 안녕히 돌아가세요!’로 끝나는 게 아니라, 관객의 눈을 맞추며 노래한다. “거기 그 자리에서, 지금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이건 안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모두의 이야기였다고. 이제 당신이 쓸 차례라고. 그렇게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종이와 펜을 건네주며 막이 내린다. <레드북>이 건네준 종이를 들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새로운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2의 안나가 아닌, ‘제1의 당신’의 이야기가.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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