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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축제가 좋아요 - 서울숲재즈페스티벌 2025

by 지온

바야흐로 페스티벌의 시대. 쏟아지는 페스티벌 중 어느 곳을 갈지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보통 라인업에 따라 결정하는 편이지만 예외도 존재한다.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축제가 다정하다고 느껴지면 속으로 평생 관람객을 약속한다. 페스티벌 자체에 반해 내년에 어느 가수가 나오든 재방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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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가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이다. 작년 가을 처음 왔을 때 곳곳에 흐르는 다정에 반해 올해 또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다정한 페스티벌의 후기를 전한다.



관대한 축제 – 티켓이 없어도 볼 수 있는 페스티벌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 반한 결정적인 이유는 ‘관대’하다는 점이다. 이 축제는 모두에게 너그럽다. 심지어 관객이 아닌 이들에게도!


우선 페스티벌 무대가 세 개인데 그중 하나인 ‘가든 스테이지’는 입장 게이트 바깥에 있다. 표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서울숲에 방문한 모두가 재즈 무대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래서 이 무대가 가장 재즈 페스티벌과 잘 어울린다. 손 뻗으면 닿을 듯한 무대, 관객 뒤로 우거진 나무, 잔디와 돌의자에 앉아 작은 무대를 둘러싼 사람들,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홀린 듯 발을 돌려 들어오는 이들과 배경음악 삼아 갈 길 가는 이들까지. 자유롭게 흘러가는 모든 순간이 이곳을 한층 더 재즈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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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부터 시작하는 다정은 안에서도 적용된다.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는 무료입장이고 반려동물도 입장 가능하다. 그래서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서는 어린 관객과 강아지 관객(?)이 자주 보였다. 돌도 안 지난 듯한 갓난아기가 많아 인상적이었는데 혼잡하거나 위험하지 않아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에도 부담이 적은 듯 했다. 노래에 맞춰 작은 손과 발을 움직이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관객도 하나같이 여유롭다. 서서 공연을 보는 록 페스티벌과 달리 모두가 돗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재즈를 즐긴다. 아예 누워서 눈을 감고 공연을 즐기는가 하면 공연을 배경음악 삼아 독서하는 이들도 많다. 눈 깜짝하면 사라져 버리는 가을의 시작이 이토록 여유롭다니.

관대한 축제가 엄격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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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한 축제에도 너그럽지 않은 순간이 있다. 바로 일회용품 사용 금지.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서는 외부 음식을 포장해 오거나 배달을 시킬 때 다회용기를 사용해야 한다. 이를 북돋기 위해 페스티벌 내 큰 부스에서 다회용기를 대여해주고 배달의 민족 다회용기 쿠폰을 증정한다. 푸드트럭에서도 다회용기만을 사용하고 편히 반납할 수 있도록 곳곳에 반납통을 설치했다. 페스티벌을 즐기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같은 다회용기를 사용하니 어쩐지 다른 관객과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 번거로울 수는 있어도 마음만은 가득 찬다. 페스티벌의 슬로건인 ‘Nature, Music & Love’의 의미가 진해지는 순간이다.


어노잉박스와 스카재즈유닛

나는 보통 발을 구르게 만드는 재즈에 마음을 뺏긴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재즈. 사람으로 치면 못 말리는 개구쟁이 같은 재즈 말이다. 이번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서 내 발을 구르게 한 아티스트는 어노잉 박스와 스카재즈유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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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는 ‘퍼레이드’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 이때는 모든 무대를 중단하고 페스티벌 공간 전부를 사용한다. 게이트 밖에서 시작해 부스존을 지나 관객석까지 곳곳을 누비며 공연을 펼친다. 올해 퍼레이드는 빅밴드 어노잉박스가 맡았는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어노잉박스가 경쾌한 재즈 사운드를 뿜어내며 행진하면 사람들이 그 뒤를 졸졸 따라간다. 그리고 중간에 멈춰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이어 나간다. 규칙도 형태도 없이 말이다. 운이 좋게 퍼레이드를 맨 앞에서 볼 수 있었는데 갑자기 내 옆에 있던 한 외국인이 쑥 불려 나가 즉흥적으로 멜로디언을 불기 시작했다. 본래 연주자인 듯 하나 예정에 없던 순간임은 확실했다. 눈으로 어노잉박스 멤버들과 교감하며 합주를 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웃음도 재즈페스티벌의 섬네일처럼 마음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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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 마음속 1위 무대는 스카재즈유닛이다. 이들은 자메이카의 스카 음악과 재즈를 결합한 흥겨운 음악을 선보인다. 색소폰과 트럼펫, 피아노, 일렉, 베이스, 드럼, 퍼커션이 내는 유쾌한 리듬을 듣다 보면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무엇보다도 연주자들이 신나 보인다. 솔로 연주를 하는 멤버를 보고 못 말린다는 듯이 웃거나 춤을 추는 모습에 관객도 더욱 즐기게 된다. “지금은 앉아 계시지만 이따가는 춤추게 되실 거예요”라는 리더 임채선의 말이 예언이 되어 마지막 곡 때는 모두가 무대 앞으로 뛰쳐나가 함께 춤을 췄다. 급기야 처음 보는 관객끼리 손을 잡고 방방 뛰기도 했다. 모르는 어른과 얼결에 손잡고 춤춘 한 어린이의 어색한 미소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돗자리를 팽개치고 뛰쳐나오게 만드는 음악. 발을 구르는 걸 넘어 함께 몸을 구르게 하는 음악. 그걸 해내는 스카재즈유닛의 무대가 자주 보고 싶다.


다시 찾은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은 여전히 다정하고 유쾌했다. 게이트를 나서며 내년을 약속한 것은 당연한 마무리였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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