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성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2025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 후기
지난 9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이 열렸다. 홍대 음악의 성지라 불리는 ‘롤링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였다.
롤링홀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외 다양한 뮤지션들이 거쳐 간 공연장이다. 여러 장르 아티스트와 관객이 호흡하며 홍대 음악 문화를 이끌어온 라이브 클럽이다. 30년 동안 음악과 무대를 만들어온 이들의 페스티벌은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기대를 안고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에 방문했다.
1) 똑같은 행성은 없다, 다양한 라인업과 무대
직접 느낀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이하 사운드 플래닛)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라인업이 화려했다. 김천성 롤링홀 대표는 “사운드 플래닛은 롤링홀과 그간 함께 해온, 함께 할, 함께 하고 싶은 아티스트들로 라인업을 구성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사운드 플래닛에 오른 아티스트들은 장르부터 연차, 성별, 나이대까지 다양했다. 한국 인디의 역사를 이끌어온 ‘YB’, ‘체리필터’, ‘넬’, ‘어반자카파’, ‘크라잉넛’, ‘브로콜리너마저’부터 현재 가장 주목받는 ‘한로로’, ‘이승윤’, ‘우즈’, ‘송소희’까지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인디밴드를 이끄는 ‘극동아시아타이거즈’나 ‘해서웨이’, ‘아사달’ 등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무대는 총 5개로 구성해 실내외에서 골고루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실내 무대가 3개나 되어 비나 무더위를 피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호텔 내 클럽인 ‘크로마’는 들어갈 때마다 “페스티벌에서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세련된 공간이었다. 무대마다 연출이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야외무대에서는 슬램이나 서클핏을 만들어 뛰어놀기 좋았고 실내무대는 무대뿐만 아니라 관객석에까지 반짝이는 조명을 비춰 우주 속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양한 라인업과 무대에 숨은 핵심 가치는 ‘화합’이었다. 첫째 날은 YB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가, 둘째 날에는 체리필터와 우즈가 합동 무대를 꾸몄다.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무대였다. 화합은 가수와 관객 사이에서도 이루어졌다. 크로마 스테이지에 오른 중식이밴드는 “이렇게 어린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말했는데, 이에 화답하듯 관객의 열기는 뜨거웠다. 모르는 아티스트의 무대에 반해 곧장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는 순간 또한 페스티벌의 묘미인데, 다양한 장르와 가수를 큐레이션한 사운드 플래닛에서는 이러한 화합이 조금 더 자주 일어나는 듯했다.
2) 음악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사운드 플래닛의 진면모는 의외의 공간에서 드러났다.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열리는 타 페스티벌을 생각해보면 무대는 보통 네 개다. 야외무대 두 개와 실내 무대 두 개. 그런데 사운드 플래닛의 무대는 다섯 개였다. 또 무대를 설치할 공간이 있었던가? 타임테이블이 공개됐을 때부터 궁금했던 다섯 번째 무대 공간의 정체는 ‘버스킹 스테이지’였다. 장소는 파라다이스 시티 건물 내부 로비. 인디 신예 밴드들이 주로 무대에 올랐는데, 공연장이 아닌 호텔 로비 한복판에서 연주가 펼쳐진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이 공간은 레스토랑이나 카페, 쇼핑몰 등이 모여 있어 페스티벌 관객이 아니더라도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특히 유모차를 끌고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이 많았는데 일상 사이로 음악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음악이 배경이 되는 순간과 음표 위를 자연스레 걸어 다니는 사람들. 신기하게도 일상의 소음까지 전부 하나의 음악처럼 들렸다.
이 무대에 오른 이들이 대부분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예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몇 년 후에는 이들을 메인 스테이지에서 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많은 뮤지션이 거쳐 간 ‘롤링홀’이 그런 역할을 해왔던 것처럼 말이다.
3) 음악에 대한 찬사
오랜 시간 한국의 음악 신을 지켜온 롤링홀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답게 곳곳에서 음악에 대한 찬사가 느껴졌다.
대표적인 공간은 ‘뮤직존 부스’. 특히 국내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이 처음으로 페스티벌 부스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인터뷰 및 기사 발췌 내용과 음악 서적, 에디터 소장 CD와 바이닐 등이 전시됐고, 음악평론가이자 이즘 설립가인 임진모 평론가의 팬 사인회도 열려 뜨거운 반응을 모았다. 20년 넘게 다양한 음악가들을 조명해 온 웹진의 참여는 페스티벌의 진정성을 더했다. 이 외에도 국내 최대 페스티벌 커뮤니티인 페스티벌라이프(FSTVL LIFE), 키트 앨범 제작사인 키트베러(KiTbetter) 등 음악과 관련한 부스를 운영했다.
무대는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관객의 편의를 고민한 흔적도 보였다. 가장 인기였던 건 ‘깃발 리페어 부스’다. 사운드 캠프 스테이지 입구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깃발을 보관하거나 수리할 수 있고 심지어 나만의 미니 깃발을 만들 수 있다.
최근 페스티벌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깃발 아니던가. 단순히 가수를 응원하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념, 가치관, 유행어를 적어 공감을 얻고 음악에 맞춰 흔드는 깃발은 이제 현 대한민국 페스티벌 문화의 상징이 됐다. 그래서인지 깃발 부스는 늘 북적였고 직접 만든 작은 깃발을 흔들며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페스티벌을 완성했다.
페스티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축제의 이름이 사운드 플래닛인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우리 삶의 배경이 되기도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음악. 그런 음악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사람들. 공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이면 때로는 음계 없이도 음악이 된다. 그렇게 우리의 행성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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