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감하게 모험하고 씩씩하게 틀렸다.
‘불 꺼진 학교에 갇히기’나 ‘경복궁 야간 개장 후 숨어있기’ 같은 극적인 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드라마나 책에서만 접해왔다. 당연히 있어서도 안 될 일이거니와, 어딘가에 숨기에는 내가 너무 쫄보였고, 어딘가에 갇히기에는 한국의 보안 시스템이 너무나 잘 되어 있었다. 그랬던 나는 프랑스에서, 242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베르사유 정원에 갇히게 된다.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그 베르사유 말이다. 이것은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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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촌락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기하학적으로 깎여 병정처럼 놓인 베르사유 정원의 나무들과는 달리 이곳의 나무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뻗어있었다. 숲인지 정원인지 구분할 수 없게 무성했다. 영화에서 보던 마을 속 집들은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공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했다. 화려함보다 잔잔함을 더 좋아하는 나와 카샤는 정신이 팔려 마을을 돌아다녔다. 천연하게 자라 있는 나무 아래서 시간을 보내고, 염소들에게 나뭇잎을 먹여주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머물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주변에 꽤 많던 사람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그때까지도 염소와 놀고 있던 우리는 출구인 베르사유 궁전까지 꽤 걸어야 하니 슬슬 출발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의 마감 시간을 모르고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본 마감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카샤, 여기 6시에 문 닫는대.”
“지금 몇시인데?”
“6시… 10분 전.”
당황한 우리는 서둘러 미로 같은 정원을 헤치며 출구로 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건물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도 잠시, 가까이 가보니 출구가 잠겨 있었다. 문 너머로 왕비의 촌락을 빠져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작게 보였지만 우리는 나갈 방법이 없었다. 직원도 경비원도 없었으므로 방법을 물을 사람도 없었다. 당황한 것은 사실이나 그때까지 현실 감각이 없던 우리는 걱정이 없었다. 아름답고 조금은 무섭게 지는 노을도 구경하고, 여기서 자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실없는 농담도 했다. 이제는 다시 출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그때, 카샤가 건물의 정중앙으로 걸어가더니 말했다.
“지은! 잠깐 이리로 와봐. 우리 지금 당장 춤을 춰야 해.”
“어떻게 추는지 알아?”
“당연히 모르지!”
이런 멋진 궁전에 우리밖에 없는데 사교계 댄스 한 번 춰줘야 하지 않겠냐는 카샤의 말을 따라 서로의 손과 허리를 맞잡고 엉망진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수백 년 전 만들어진 프랑스 왕궁에서 길을 잃은 외국인 둘은 아무도 모르게 춤을 췄다. 그 순간만큼은 온 베르사유가 우리 거였다. 훔친 것 하나 없이 순간을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방법을 아는 카샤와 함께 오길 잘했다고 조용히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초면인 길을 헤집고 다니던 우리는 결국 맨 처음 들어왔던 출입구를 찾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끼익 열고 나가니 주차된 차들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을 보고 안심한 우리는 “자유다!”, “탈출이다!”를 외치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탈출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그때, 우리를 안심시킨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은 첫마디는 인생에서 들은 어떤 말보다 청천벽력이었다.
“너희 혹시 출구가 어딘지 아니?”
그 순간만큼은 벗어날 수 없는 무한 루프에 갇힌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출구(라고 생각한 것)를 나오자마자 들은 첫 마디로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나온 곳은 베르사유의 가장 안쪽에 있는 쁘띠 트리아농이었고, 결국 베르사유를 나갈 최종 출구를 찾아야 했다. 왕비의 촌락만 벗어나면 친절한 직원이 출구를 알려줄 거라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여기는 프랑스. 칼퇴의 나라. 우리도 모른다는 말을 전하고 다시 길을 찾아 나섰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왕비의 촌락까지 온 길은 기억하지만 시간은 이미 6시가 훌쩍 지나 폐장 시간이 지났기에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도 문이 닫혀있을 것이 분명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왕비의 촌락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정원에서 길을 찾는 것은 더 막막했다. 베르사유 정원에 갇히다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안내방송 하나 없이, 체크 한번 안 하고 문을 닫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다고 우릴 구하러 올 사람은 없었다. 퇴장도 자유, 갇히는 것도 자유, 대신 출구를 찾는 것도 자유. 참 파리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새로운 문을 찾아 나섰다.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가로등은 하나 없어 급기야 플래시를 켜고 걸어야 했다. 낮에는 나무뿐이라 아름다웠던 이곳이, 밤에는 나무뿐이라 무서웠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뒤집힌 세계’가 있다면 딱 이럴 것 같았다. 이따금 저 멀리 보이는 형체들이 귀신일지 사람일지 추리를 하며 우리는 걸었다. ‘오후 6시 이후 열려있는 출구’ 따위가 표시될 리 없는 지도는 무용지물이었고, 그저 운에 맡기며 호텔 불빛으로 보이는 빛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카샤와 나는 7시가 다 되어서야 베르사유를 벗어날 수 있었다. 차가 드나드는 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들에게 여기가 출구 맞냐고 몇 번은 되물었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그들은 손뼉을 치며 축하해 줬다.
“Yes, You guys are free!” (응, 너희 이제 자유야!)
한 시간 만에 얻은 자유였다. 긴장과 함께 풀려버린 다리 덕분에 우리는 더이상 걷지 못하고 버스에 실려 베르사유역으로 갔다. 벌개진 얼굴로 근처 맥도날드에 누워있다시피 하다가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도 놓쳤다. 눈앞에서 기차를 놓쳤을 때는 정말 끝까지 이러기냐고 허공에 주먹질도 해댔지만, 사실 우리는 그런 설상가상의 상황을 즐겼다. 후식 먹을 시간이 생겼다며 다시 맥도날드로 돌아가 아이스크림을 시켜 먹었으니까. 우리는 끝까지 천연덕스러웠다.
*
가끔 카샤가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파리로 먼저 돌아갔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만약 왕비의 촌락을 나 혼자 갔다면? 그래서 나 혼자 길을 잃었다면? 나 혼자 그 커다란 베르사유에 갇혔다면? 아마 이런 모양의 기억은 아니게 되었을 거다.
누군가와 함께 길을 잃는 건 더 이상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깜깜한 베르사유를 걸으며 우리는 단 한 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걱정 대신 노래를 불렀고, 으스스한 분위기에서는 되려 무서운 이야기를 했으며, 용감하게 길을 찾았다. 용감하게 모험하고 씩씩하게 틀렸던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지구에 나뿐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몇 번이고 또 길을 잃을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