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앞에 에펠탑이 바로 보이는 파리의 한 공원에 앉아있었다. 말없이 맥주만 홀짝이던 남편이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부터는 혼자 다닐게요” 여행 일정을 단 3일 남겨두고 마침내 터지고야 말았다. 이건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낭만이 가득한 파리의 밤이 지옥의 밤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신박한 유럽 여행 메이트>
영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힘들게 공부했던 만큼 졸업식은 무리해서라도 꼭 참석하고 싶었다. 신랑과 함께 방문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친정엄마도 가고 싶다고 했다. 더 나이 들면 못 간다고 유럽 여행도 할 겸, 졸업 선물이라며 비용까지 다 지원해 준다고. 엄마와 추억도 쌓고 내 돈도 아낄 수 있으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가장 효율적인 루트인 로마 인-파리 아웃으로 약 3주간의 일정을 짰다. 중간에 영국에 들렀을 때 졸업식에 참여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일정이었다. 우리가 유학중일 때 한 번도 오지 못해 미안해하던 엄마는 드디어 마음의 짐을 덜어낼 기회가 생겼다며 꽤 기대하는 눈치였다.
우리의 여행 계획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걱정하며 말했다. “장모님이랑 사위? 그것도 힘든데 여행 기간이 20일이나 된다고? 그거 쉽지 않을걸~” 나는 이해가 잘 안 됐다. 당시 결혼 후 7년 동안 여러 번 가족 여행을 갔었지만, 딱히 나쁜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다. 애교 많은 엄마는 마음 씀이 남달라서 주변에 늘 사람들이 많았고, 예의 바르고 다정한 성격의 남편 역시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 아니었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시어머니와 3주간 유럽 여행을 간다고 생각해 봐도 나는 괜찮았다. ‘우리 가족들을 잘 몰라서 그래~내가 중간에서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일정이 꼬이지 않도록 항공권, 숙소, 나라 간 이동 교통수단 및 관광지 사전 예약까지 더 꼼꼼하게 챙겼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 엄마는 탑승구에 앉아 아빠와 통화를 하며 이유 없는 눈물을 계속 흘렸다. 비행기 타는 해외여행이 처음이 아닌데 좀 당황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엄마를 안고 손바닥으로 등을 토닥토닥했다. 엄마가 아빠와 30년 넘게 살면서 이렇게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어서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잘 보살펴 드려야지’라고, 굳은 다짐을 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꼬박 열세 시간 비행 후 드디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나에게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스무 살 때 친구들과 왔던 배낭여행과 유학할 때 남편이랑 휴가 왔던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테르미니역으로 가는 익스프레스 기차를 탔었는데 엄마랑 온 거니까 택시 픽업 서비스를 예약해 두었다. 로마는 길이 좋지 않아서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숙소는 모든 관광지로 빠르게 연결되는 도심 한복판에 잡았다. 한식을 먹어야 하니 취사도 가능한 곳으로 골랐다. 여행의 모든 것이 엄마를 위해서, 엄마의 컨디션과 취향을 고려해서 세팅되어 있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미술관에서 전시해설 듣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했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바티칸 미술관, 로마에서 바티칸 다음으로 소장품이 많은 보르게세 미술관,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하다 평가받는 우피치 미술관은 필수였다. 가이드 업체는 예전에 실패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조금 덜 재미있어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 신중하게 골랐다. 인터넷에 맛집이라 올라와 있어도 내가 별로였던 식당들은 다 패스했다. 이번 여행은 동선, 숙소, 식당 등 모든 면에서 그간 내가 여러 차례 유럽 여행을 하며 겪었던 시행착오를 반영한 그야말로 완벽한 일정이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봐야 했기에 일정은 다소 빡빡했지만, 우리 셋은 정말 호흡이 잘 맞았다. TV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가서 보고, 처음 보는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먹고,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될 때마다 엄마는 세상이 정말 넓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완벽하게 계획을 짠 나 스스로를 칭찬하며 더 철저하게 스케줄을 관리했다.
여행 10일 차, 체코 프라하에 갔을 때였다. 로마,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뮌헨 등 2,000km 이상을 이동해서 그런지 피로가 좀 누적된 상태였다. 일정을 조금 일찍 마치고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엄마 방 안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귀 기울여보니 아빠와 통화를 하는 듯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있었는데 어느 순간 격해지더니 “여보 나 집에 가고 싶어, 너무 힘들어”라며 정말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토록 애 쓰면서 잘하고 있는데 왜 몰라주나 싶어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한테는 아무 말 없다가 아빠한테 쪼르르 일러바치는 건가 싶어 섭섭한 마음도 올라왔다. 하지만 이내 이 여행을 내가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엄마가 너무나도 잘 알아서, 오히려 나를 배려하느라 불편한 것들을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복합적인 감정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서서 그저 엄마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엄마가 해외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대부분이 패키지였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느지막한 시간에 나와 목적지까지 편하게 데려다주는 패키지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여덟 시에 숙소에서 나와 밤 열 시에 들어가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미술관들은 어찌나 큰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이동할 때는 골목길이 많아서 택시를 타는 것도 어려웠고 돌바닥이라 걷는 것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하루에 네다섯 개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식사도 테이크아웃을 해서 이동 중에 먹거나 레스토랑을 가도 빠르게 먹고 일어났다.
매일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는 남편의 가방에는 우리 셋이 먹을 과일과 마실 것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남편은 이 상황이 마치 군대에서 군장 메고 행군 훈련을 하는 것 같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었다. 엄마와 남편에게는 힘들었을 수도 있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계속 스쳐 지나갔다. 계획된 일정대로 하는 것만 생각하느라 함께하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했던 자책감이 밀려와 침대에 누워서도 한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 여행지인 스위스에서는 숙소 체크아웃 후 기차를 탈 때까지 한 시간이 남았었다. 어디를 다녀오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 역 앞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샛노란 파라솔이 쫙 펼쳐진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지금까지의 여행 중에서 가장 느긋하고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엄마가 이런 거 너무 좋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만 있어도 좋겠다고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백 번 정도 얘기한 것 같다.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뭐라고, 아이같이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서 울컥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하는 말들의 뉘앙스까지 엄마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자만이었다. 느긋하게 차 한잔 하며 사람 구경하기, 한국에는 없는 나무 모양 관찰하기, 성당에서 미사 보기 등 엄마가 원하는 것들은 효율을 중요시하는 내 계획에는 없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엄마를 위해서 완벽하게 짰다고 생각했던 이 여행이 사실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었던 것이다. 이후로 우리의 여행은 조금 느슨해졌다. 스위스, 런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하루에 두세 개 정도의 일정만 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은 발길 닿는 대로 조금 더 여유롭게 보냈다. 엄마의 얼굴에 웃음이 점점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