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인종차별인가, 과도한 배려인가?

by 한그루

나는 현재 영국의 한 기관에서 데이터 관리와 보고서 관련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조직이기에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몇 달 전,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진행된 교육에 참석하는 기회가 있었다. 강사는 35년간 경찰로 일한, 은발의 58세쯤 되어 보이는 영국인이었다. 교육생은 총 9명. 나와 내 옆에 앉은 인도인 동료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국인이었다.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으로, 각자 자기소개와 함께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에 대해 돌아가며 얘기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The most memorable moment of this year was when my son started counting numbers right after he turned 2"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리 아이가 두 돌이 되자마자 숫자를 세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자녀가 있는 동료들이 공감하며 호응했다. 곳곳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분위기도 괜찮았다.

평소 개그 본능이 있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좋았어! 적당히 센스 있었어.’

하지만 말이 끝나자마자 강사가 말했다.


"Oh! your English is very good"

"오! 당신 영어 정말 잘하시네요."


순간 누가 찬물을 끼얹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것 말고 제가 무슨 말하는지는 들으셨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직장에서 '영어를 잘하네요'라는 말은 나에게 더 이상 칭찬이 아니다. 만약 그와 내가 요리 교실이나 십자수 취미반에서 만났다면, 그건 칭찬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일하는 곳에서 한국인으로 특별채용이 된 것이 아니라, 앉아있는 교육생들과 동등한 방식으로 월급을 받으며 똑같이 일을 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제 나에게 영어는 잘한다 못한다의 의미보다는 그냥 기본값이다. 칭찬인 듯 말씀하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기쁘네요" 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강사가 활동지를 나눠주고 각자 읽어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2분쯤 지났을 때, 강사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나와 인도인 동료가 앉은 곳으로 왔다.


"By the way, you two, can you read?"

"그나저나 당신들 읽을 수 있어요?"


다른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하기에 충분한 크기의 목소리였다. 할 말을 잃었다. 읽을 수 없으면 여기서 일은 어떻게 하나? 순간 너무 어이가 없었는데, 바보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나는 그렇다 쳐도, 내 옆에 있는 인도인 동료는 영어를 사용하며 자랐고 명문 공대도 졸업했다. 당연히 영어가 힌디어만큼이나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실례가 되는 말을 숨 쉬듯 할 수 있을까?


강사는 굳어있는 내 얼굴을 보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 한 듯 얼른 말했다. 영국은 이제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되었으니, 항상 이런 배려가 필요한 것 같아 자기는 교육 때마다 그런 부분을 챙기는 편이라고.

나는 괜찮다고는 했지만, 쿨하게 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고도의 인종차별이었을까, 아니면 과도한 배려였을까?




생각해 봤다. 우리 한국사람들도 의도치 않게 외국인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남편이 남자 친구였을 무렵, 우리 가족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고급스러운 한식당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종업원이 영국인 남편에게 아이용 포크를 가져다주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포크가 이것밖에 없어서요."


남편은 웃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옆에 있는 나에게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빨개졌다. 나름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 보기에는 힘들어 보였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가 유럽 어느 레스토랑에 갔는데,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종업원이 아동용 젓가락을 가져다주며 "준비된 게 이거밖에 없네요? 이걸 쓰세요"라고 한다면. 서툴러도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줄 아는데, 부탁하지도 않은 것을 굳이 가져다주는 이유는 뭘까라고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그러한 배려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종업원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혹시 더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강사도, 종업원도 절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인종차별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잘 챙겨주려고 한 배려이지만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몰랐을 뿐이지 않을까?


교육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 침묵하고 있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내 피드백으로 그 강사가 어떤 방식으로든 처벌을 받는 건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지만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국인이지만 아빠보다는 엄마의 동양인 유전자가 외모에 몰빵 된 우리 아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어딘가에서 '영어 잘하네?'라는 말을 들어도 당황하지 않도록,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몰랐을 수도 있으니 그냥 '모국어니까 당연히 잘하죠'라고 웃으며 넘겨도 된다고.

그렇게 서로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 배우고 노력하면,

배려가 차별로 오해받는 일이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나는 그날의 일을 한 달쯤 지났을 때

내가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정리해서 말할 수 있었을 무렵,

교육 담당자에게 전달했고 다음번 교육 진행할 때 강사가 더욱 주의하실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나비효과처럼, 그날의 작은 움직임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변화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강사가 읽을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영국에 8년째 살고 있으니

이제 읽을 때도 됐죠. 하하하’

하며 그냥 웃어넘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내일은 좀 더 쿨한 사람이 되자

또 다짐만 n년째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