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내 나는 영국 재취업 성공기

영어면접 준비는 ChatGPT와 함께

by 한그루


나는 영국의 한 리서치 회사에서 3년 정도 보고서 및 데이터 분석가로 일했었고, 주 고객은 잘 알려진 글로벌 기업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육아휴직 5개월 차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우리 회사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그 주 고객과의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아 팀을 축소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 선택권은 있었지만 내가 나가지 않으면 우리 팀 중 한 명은 나가야 했기에 육아 휴직 중인 내가 나가기로 했다.


덕분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내가 지향하는 커리어 개발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한 지 2년 정도가 되었을 때,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경력단절이 될 것 같아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이런 곳을 간절히 찾았다.

1. 일과 삶이 확실히 분리되는 곳 (근무시간 외에는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되는 곳)

2.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더라도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곳 (해고 대신 타 부서 발령 etc.)

3. 보고서, 데이터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곳


소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기회도 많이 없을뿐더러 외국인인 내가 저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통과하는 만큼의 희박한 확률이었다. 하지만 나는 육아휴직 전까지 꾸준히 일해왔었고 정말 노력하면, 어쩌면 공공기관의 사무직군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리고 일단 파트타임으로 시작해 육아와 병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들어가기에는 문턱이 높으나, 일단 그 조직으로 들어가면 업계대비 높은 연금과 비교적 안정적인 삶이 어느 정도는 보장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부터 닥치는 대로 무작정 서류를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탈락, 탈락, 또 탈락.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무래도 supporting information이라는 자기소개서에 내용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는 문법체크 앱을 깔아서 오류를 수정하고 어색한 문장도 보완했다.

드디어 거짓말처럼 면접 일정이 잡혔다.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자기소개서는 짧고 간략하게 핵심만 표현하는 것보단 조금 길더라도 논리 정연하게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뚜렷하게 쓰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첫 면접,

시간에 맞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직원 한 명이 나를 데리러 나왔고, 자기를 소개했다.


"Hi, you must be Misong. I am ooo."

"안녕하세요! 미송씨 맞죠? 나는 ooo예요."


여기서 그녀의 이름을 놓치는 큰 실수를 범한다. 늘 불행은 한꺼번에 오는 것처럼 그녀는 나의 면접관 중 한 명이었고 말끝마다 내 이름을 부드럽게 불러줬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실수를 하나 했다고 생각하니 신경이 쓰였다. 너무 당연한 질문들을 물어봤지만 대답이 하나도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 당신이 지원한 직무가 어떤 직무라고 생각하세요?

- 이 일을 함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 자신만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런 너무 당연한 면접 질문들... 나는 그날 면접을 보면서 바로 탈락인걸 직감했다.


나오자마자 까먹기 전에 생각나는 대로 노트에 질문을 기록하고 나만의 오답노트를 만들었다.


며칠 뒤 다른 부서의 동일한 직무로 두 번째 면접을 보러 갔고, 이번엔 면접관의 이름을 정확히 들었다. 면접관도 내 말에 호응을 잘해줬고 면접을 보는 내내 막힘 없이 신나게 대답을 했다. 나오면서도 ‘나 오늘 좀 괜찮았는데?’ 생각했지만 결과는 하지만 여전히 탈락이었다. 생각해 보니 면접관들이 너무 친절했고, 그 덕분에 나도 평소보다 200%를 발휘했다. 문제는 다른 지원자들도 똑같이 2-300% 했을 수도 있기에 당연한 결과였을 것 같다.


그녀에게 온 이메일은 이랬다.


Dear Misong


Thank you for attending for your interview yesterday and apologies for the delay in getting back to you.


Unfortunately on this occasion you have been unsuccessful, I would say for future interviews it would be to expand on your answers. A lot of interviewers here like the use of STAR method and it would be really useful to use going forward.


I wish you all the best in your job search.


Best wishes.


그녀는 나에게 ‘미안하지만, 아쉽게도 불합격입니다. 다음엔 답변을 조금 확장해서 말해보세요. 이 기관에 계속 지원할 마음이 있다면 'STAR'라는 방법에 맞게 답변을 준비해 보세요. 여기 사람들 그 방법 좋아해요.'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몰랐다! 그런 방법이 있는 건지.


- Situation: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하고

- Task: 그 당시 나의 업무는 무엇이었으며

- Action: 나는 어떤 액션을 취했고

- Result: 결과는 어땠는지


생각해 보니 나의 답변은 정말 형편이 없었다. 면접관들에게 귀한 시간을 뺏았었던 같아서 괜히 죄송하기까지

했다. 이젠 스타라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면접은 걱정 없겠구나 라는 기대와는 달리,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여섯 번째도 일곱 번째도 떨어졌다. 이쯤 되면 스타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니냐며 자존감은 또 바닥을 쳤다.


그러던 중 그 기관, 다른 오피스의 데이터 팀에서 리포트 관리 행정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았고 지원서를 작성했다. 풀타임 직군이라 망설였지만 일단 지원했고 면접 볼 기회가 생겼다.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 마음먹고 면접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번엔 사람들이 그 난리라는 ChatGPT의 힘을 빌려봐야겠다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나와 ChatGPT와의 일터복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내가 한 것은 잡사이트에 누구에게나 공개된 구직정보를 ChatGPT에게 공유했고 면접 안내 메일을 참고하여, "지피티야, 이 직군을 지원했고 다행스럽게도 면접안내를 받았어. 면접관은 그 팀장과 시스템 개발자가 될 것 같아. 그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하면 좋을까?"라고 물어보자 지피티는 맞춤 질문과 그에 맞는 답변을 내어주었다. 나는 그 답변들을 내 상황에 맞게 수정했다.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질문들의 경우 STAR 방식을 사용해서 초안을 작성하였고 ChatGPT가 더욱 설득력 있게 대답할 수 있도록 개선점을 찾아주었다.


만약 질문이 아래와 같다면 나는 STAR 방식을 이용해서 나의 경험을 녹여냈다.


This role requires strong attention to detail. Can you give an example of how your accuracy in reporting has positively impacted decision-making in your previous roles?

이 직무는 꼼꼼함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전 직무에서 보고서 작성의 정확성을 통해 의사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경험이 있다면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Situation: 이전 직장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면서 정기적인 성과 및 품질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Task: 제가 맡은 주요 역할은 의사결정에 사용되는 모든 데이터가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Action: 월말 보고서를 검토하던 중 숫자에서 작은 불일치를 발견했습니다. 단순한 반올림 문제라고 넘기지 않고, 원본 데이터와 수식, 필터를 하나하나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데이터 처리 단계의 오류를 찾아냈고, 이를 수정했습니다.

Result: 그 결과 최종 보고서를 정확하게 완성할 수 있었고, 팀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보고서 작성에서 세심한 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답변이 이런 식으로 정리되면, 그다음으로 내가 사용한 방법은 음성서비스를 이용해서 ChatGPT와 모의인터뷰를 진행했다. 자기소개부터 시작해서 회사소개 관련 질문 3개, 면접관 개별 질문 3개, 공통 질문 3개로 이루어진 면접 한 세트가 끝나면 피드백받는 식이었다. 입구에서 안내데스크에 이름을 얘기하고 기다리다 스몰토크를 하며 면접실로 들어가는 시나리오와 함께 철저하게 준비했다.

지난 7번의 인터뷰로 배운 나의 가장 큰 약점은 면접관의 얼굴이 갑자기 무표정으로 바뀌면 나는 곧바로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들이 내 답변을 노트에 기록하느라 날 쳐다보지 않는 모습은 날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나는 ChatGPT와 연습하면서 중간에 호응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끝까지 말을 마무리 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고 여러 차례 수정된 답변에 맞게 매끄럽게 말이 나올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리고 모의면접이 끝나면 지피티에게 방금 연습했던 질문과 함께 정리했던 답변을 텍스트로 요청해 프린트해서 틈틈이 보며 내 입에 붙게끔 수정하고 또 연습했다.


드디어 면접 날이 왔고, 예상했던 대로 남자 면접관 2명이 앉아 있었다.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 이후 첫 번째 질문은 ‘우리 기관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나요?’였다. 나는 연습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막힘 없이 대답하면서 면접관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데이터 분석가로 일했을 때 사용했던 엑셀, PowerBI, SQL, Power Query 등 다양한 도구들에 대해 예를 들었고 STAR 방식에 맞게 답변을 하니 확실히 횡설 수설이 줄었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질문이 이해가 안 가면 "그러니까 방금 그 말씀은 이 말씀이시죠?"라고 하는 여유도 생겼다. 예전엔 못 알아 들어도 대충 눈치껏 대답했는데, 동문서답을 할 수도 있으니 항상 질문에 먼저 집중했다. 그날 면접에서 나온 질문은 나의 오답노트, 그리고 ChatGPT와 연습했던 부분과 거의 80% 이상 일치했다.

공식적인 면접 질문은 끝났고 면접관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정말 나의 전부를 쏟아낸 느낌이었다. 아무 질문이 없었다. 아! 딱 하나, 갑자기 무언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나는 시스템 개발자에게 요즘 AI가 대세인데, 정말 AI가 우리의 일을 대신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분은 나의 질문을 매우 흥미롭게 여겼고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해 얘기하느라 면접에 주어진 30분 보다도 거의 30분을 더 썼다.


면접이 끝나고 팀장님이 날 배웅하러 나왔다.

결과는 원래 금요일에 발표될 예정이지만 아마 내일 중으로 연락이 갈 거라고 했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그렇게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면접장을 나왔다.


밖에서 할머니와 기다리고 있었던 24개월 아이가

처음으로 웃는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보통은 울다 지쳐 거의 실신한 모습이었는데.

너도 이제 준비가 됐구나. 아가.


그다음 날 전화를 받았다.


"어제 면접 보러 와줘서 고마웠어요.

혹시 아직 원한다면 우리랑 같이 일할래요?"


아니 이렇게 기쁠 수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예스죠!


그 면접관들은 내 직속 상사가 되어 현재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고 나는 아직도 가끔 말한다.

그때 너무 감사했었다고

그러면 그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You were the strongest candidate. We are lucky to have you here”

"네가 가장 경쟁력 있는 지원자였어. 우리가 고맙지"


ChatGPT는 우리의 질문에 대해 우리가 며칠을 조사해도 다 못할 훌륭한 양의 정보를 준다. 하지만 그것을 검증하고 어떻게 가공해서 쓸지는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눈으로 읽고 이렇게 말해야지라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내가 말하기 쉽게 정리하고 입 밖으로 꺼내 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특히 그것을 모국어가 아니라 제2의 외국어로 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회사에 대해 알고

지원한 직무가 어떤 직무인지 알고

직무와 관련하여 어떤 경험이 있고

어떤 부분들을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준비하여 자신 있게 말했는데도,

불합격이었으면

그건 그 회사와의 인연이 없는 거지

우리가 부족한 건 아닌 것 같다.

그땐 그냥 쿨하게 보내주고 또 찾으면 된다.

Let them get on with it! (그러세요 그럼!)


언젠가 여러분의 가치를 알아보는 면접관을 만났을 때

자신의 200%를 보여주시고

꼭 기회를 잡으시길 바랄게요.

오늘도 어딘가에서 구직으로 힘드신 분들께

곧 좋은 소식 있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