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s too much information!
“한그루님, 저 모닝똥 좀 때리고 올게요"
‘엥 굳이요? 그렇게 자세하게 말씀 안 하셔도 되는데…’
2013년 즈음, 내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특히 나에게만 꼭 저렇게 말하고 나갔던 선배가 기억난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았는데 왜 말하는 거지 싶었지만 평소보다 조금 오래 걸릴 수 있단 말로 해석했었다. 사실 그 어려운 선배와 그만큼 가깝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었기에 한편으론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이렇게 좀 과도하게 알아가면서 친해지는 면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너 오늘 살쪄 보인다. 살만 빼면 예쁘겠다. 저 사람 얼굴이 크네, 머리가 크네 라는 노필터 오지랖 화법이 난무하던 격동의 시절.
생각해 보면 나도 만만치 않았다. 개그 본능이 있었던 나는 팀장님 앞에서도 팀장님 목소리를 모사하던 간 큰 팀원이었고, 팀장님도 유쾌하게 받아주셨기에 크게 잘못된 건 줄 몰랐다.
영국에 온 뒤에도 개그 본능을 버리지 못하고 분위기가 어색할 때 어떻게든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동료의 표정이나 말투를 흉내 내보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같이 웃어주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억지웃음이거나, 그게 웃기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기 때문이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주제로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 순 없겠으나 적어도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 나갔다. 그러면서 내가 점점 줄여 나갔던, 그래서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이제는 절대 하지 않는 세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기
내가 서울 사무실에서 일할 때, 직장 선배에게 이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한그루님은 뒤통수가 납작해서 그런 머리가 안 어울려" 그때는 그게 일반적이었다. 내 옆엔 일 잘하는 동료가 앉아있었는데, 일찍 출근해서 일하느라 화장은 안 하고 나오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렇게 빨리 출근할 시간에 차라리 집에서 화장을 좀 하고 나와, 그리고 살 좀 빼야겠네"라고 말하는 선배도 있었다. 일만 잘하면 됐지 외모가 뭐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리고 남의 체형엔 왜 그렇게들 관심이 많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상대방의 외모에 대해서 말하는 게 결코 옳지 않다고 느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시누이 될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됐는데 날씬한 모습을 보고 나는, "Oh my gosh, you look so skinny!" 완전 뼈밖에 없네!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 시누이랑 적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그게 칭찬이라고 한 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시누이는 과거에 아팠던 적이 있었고, 그래서 살이 빠졌던 것이었다. 죽다 살아난 사람한테 뼈밖에 없다고 했으니 이 무슨 망언인가. 사람들의 겉모습은 밝히고 싶지 않은 건강 문제나 개인적인 사정과 직결되어 있을 수 있기에 언급을 안 하는 편이 낫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뒤로 절대 사람들의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뚱뚱하든 말든, 피부가 희든 말든, 키가 크든 말든, 탈모가 있든 말든, 사람들을 만나면 좋아 보이는 점만 말하려고 노력한다. "You look great today", "I love your dress". 그 뒤는 상대방에게 맡기기로 했다. 살이 빠진 게 자랑이라면 "나 최근에 살이 빠졌잖아" 혹은 "아 정말? 이거 10년도 더 된 드레스야~" 라며 아침부터 서로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으니.
2. 필요 이상으로 개인 사정에 집착하지 않기
한국에서는 점심시간에 "병원 좀 다녀올게요"라고 했을 때, "무슨 병원?"이라고 물어보는 동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저 다음 주에 연차 쓰고 제주도 가요"라고 하면 "누구랑?"이라고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게 내가 2010년대 초반 여초 사무실에서 듣던 흔한 반응이었다.
그에 반해 영국에서는 사실 다른 사람 일에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나의 팀장만 하더라도 인사상 기록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요구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필요한 것만 말해, 휴가를 누구랑 가든, 병원에 무슨 병 때문에 가는지, 그건 궁금해해서도 안 되는 거고, 궁금하지도 않아 라는 분위기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궁금하다 한들 상대방이 먼저 말하기 전까진 물어보지 않는 게 예의인 듯하다.
어느 날 직장 상사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금가락지가 "짠~ 나 좀 보세요"라고 말하듯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결혼반지가 생겼네? 내가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100% 물어봤을 것 같다. 나는 못 본 척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후에 "아, 이거 비밀은 아닌데, 나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됐어요" 라며 회의 시간에 본인이 먼저 언급을 했다.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성급하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당장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을 수도 있기에, 상대방이 먼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못 본 척해주는 것도 예의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3. 나의 ‘진짜 기분’은 드러내지 않기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짤을 보았다. 영국인에게 "오늘 하루 어땠어요?"라고 물어봤는데, 최악의 하루였든, 최고의 하루였든, 일관되게 "나쁘지 않았어"라고 대답하는 것을. 물어보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예의상 하는 거다. "오늘 어때요?" 물어봤을 땐 구구절절한 대답을 듣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밥 먹었어?" 느낌으로 물어보는 것 같다. 먹었다고 하면 뭐라고 할 것이며, 안 먹었다고 하면 또 뭐라고 할 것인가?
조금 각박한 것 같지만, 내가 사는 소도시 사람들은 보통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야근으로 동료들과 저녁을 먹는다거나, 친목 도모로 회식을 한다거나 하는 일이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 까다. 점심도 대부분 책상에서 먹고, 점심시간 30분은 혼자 산책, 독서, 아니면 핸드폰을 보며 말 그대로 '휴식(休息)'을 취한다. 그리고 대부분 자차로 출퇴근하기에 함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 일은 참으로 드물다. 감정을 나누기엔 시간이 너무 짧고, 한 번 보인 부정적인 인상은 다시 설명할 기회도 많지 않다. 그만큼 회사 동료들과 우정을 도모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듯하다. 동료는 동료, 친구는 친구, 물론 두 관계의 교집합이 있기도 하지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대도시는 상황은 좀 다를 수도 있다. 내가 2017년에 런던에서 일했을 땐 상대적으로 1인 가구 동료들이 많았기에 퇴근 후에도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직장에서 못 다 한 얘기를 하느라 늦게까지 수다를 떠는 일도 많았다.
어딜 가든 장단점은 있다. 그리고 이건 지극히 내가 느낀 점이기 때문에 다른 분들은 다르게 느끼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는 것이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롱런할 수 있는 방법인 건 맞는 듯하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2010년대 초반, 회식을 하는데 마침 내가 새로 오신 부장님 테이블에 같이 앉게 되었고, 막내였던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띄워보려고 그 높으신 분 앞에서 3분에 하나씩 주제를 바꿔가며 열심히 사회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그 부장님이 나한테 말했다.
"한그루님,
그냥 조용히 있어도 돼요. 굳이 말 안 해도 돼."
굉장히 민망하고 굴욕적이었는데,
10년도 더 된 지금,
영국에 와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된 것 같다.
’모닝똥‘같은 너무 사적인 이야기로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외모 이야기는 안하는게 낫다는 것을
어색한 침묵은 그냥 어색한 대로
내버려 둬도 된다는 것을.
결국엔, 말은 양보다는 질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