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영어로 말하기를 선택한 엄마

이중언어 육아를 꿈꿨던 엄마의 고백

by 한그루


아빠가 프랑스인이고 엄마가 독일인인데 둘의 공용어가 영어라서 아이는 세 개 국어를 한대.


티브이나 유튜브에서 흔히 보는 다중언어 가정 이야기다.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나는 은근히 다짐하곤 했었다. 나는 영국에서 살고 있으니 아이를 낳으면, 꼭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겠다고. 임신했을 때도 밖에 나가면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한국어도 가르칠 거예요?” 그때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Of course". 엄마가 한국인이고 아빠가 영국인인데, 두 언어를 다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때까지는 그게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출산 후 회복실에서 우연히 미드와이프와 언어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녀 주위에 국제커플이 많다며 나에게 물었다.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거냐고.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 아이는 영어뿐만 아니라 꼭 한국어도 할 거라고. 그녀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이중언어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엄마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처럼 한국어만 쓰세요.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실패해요.” 진지하게 듣는 척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실패한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아닐 거라고.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집으로 돌아온 첫날부터 나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다가도 남편이 옆에 있으면 멈칫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처럼 한국어만 쓰는 엄마가 되라는 조언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갑자기 이 공간에서 남편을 소외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특별한 순간을 셋이 함께 나누고 싶은데, 언어가 그 사이를 가르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스스로 타협했다. 남편이 있을 땐 영어, 아이와 둘이 있을 땐 한국어.


시댁 식구들이 왔을 때는 더 어려웠다. 이미 “한국어로 키우겠다”라고 선언해 둔 상태였지만, 모두가 영어로 웃고 있는 공간에서 나 혼자 다른 언어로 중얼거리는 건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중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육아휴직을 하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둘이 보낼 수 있었고, 하루의 80퍼센트는 한국어를 사용했다. 소위말해 티키타카가 안되니 이게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로 계속하면 된다고 믿었다.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은 아이가 20개월이 될 무렵이었다. 주변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16개월에 단어를 몇 개씩 말한다는 이야기, 18개월이면 두 단어를 이어 말한다는 이야기. 그때 우리 아이는 “엄마”, “데디”, “헝그리” 정도가 전부였다. 괜히 내가 한국어를 써서 혼란을 준 건 아닐까. 내 욕심이 아이 발달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절대로 비교하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우리 아이는 왜 아직 못하지?"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불안하기 시작했다. 터미타임, 뒤집기, 되집기, 기어가기, 잡고 일어나기, 걷기까지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쫓겨 왔는데, 이번엔 정말 최대 위기였다.


맘카페에서는 18개월에서 24개월 즈음이 이중언어 가정의 고비라며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영어는 학교 가면 자연스레 는다고, 한국어는 지금 아니면 기회가 많지 않다고. 나는 그 말을 맞다고 믿었고,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다졌다.


하지만, 24개월이 되도록 말이 시원하게 트이지 않자 불안은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혹시 치료가 필요한데 내가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닐까. 내가 한국어를 포기하지 않아서 아이가 뒤처지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보다 내가 더 걱정했던 점은 동양인 엄마를 닮은 우리 아이가, 혹시라도 영어가 서툴러서 또 다른 이유로 눈에 띄지는 않을까. 내가 겪었던 미묘한 차별과 어색한 시선들을 이 아이도 겪게 되는 건 아닐까.


결국 나는 영어를 선택했다. 가족이 있든 없든 영어로만 말하기로. "잘 잤어?"가 아닌, "Did you sleep well last night?" 그러면서 점점 아이는 나를 “엄마”가 아닌 “mummy”라고 부르고 있었고, 영어가 우리 둘 사이의 공식언어로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걱정했었던 아이의 발음은 조금씩 또렷해졌고, 문장이 자연스러워졌다. 35개월이 된 우리 아이는 이제 못하는 말이 없다. 빵 말고 밥 먹어야지라고 하면 "That’s not a big deal, mummy.” ('그게 뭣이 중헌디'의 영어 버전)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시렸다.


사람들은 말한다. 영국에 사니까 애가 영어를 잘해서 좋겠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 멈칫한다. 영국에서 태어났으니 아이가 영어를 하는 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의 언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건 참 가슴이 쓰라리다. 특히, 외갓집 식구들과는 통역 없인 소통할 수 없는 것. 친정 식구들과 종종 영상 통화를 하는데 이제 점점 소통의 벽이 높아지는 걸 느낀다. 그때 좀 어려웠지만 조금 더 소신을 가지고 계속 밀고 나갔어야 했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으나 그때의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그래서 좀 요상한 조합이지만 생활 속에 한국어를 꾸역꾸역 끼워 넣는다.


“자, 정리하자. Let’s 정리정리.”

“That’s 안 돼요.”


이렇게라도 아이 귀에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여전히 꿈꾼다.

어쩌면 완벽한 이중언어 아이는 아닐지 몰라도,

언젠가 이 아이와, 번역 없이, 설명 없이,

내 마음을 그대로 한국어로 건네는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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