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브리즈번에서의 첫 번째 면접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약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에
면접을 보러 갔다.
가는 내내 나는 감사한 줄도 모르고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아니 왜 이렇게 멀어?
오퍼 받아도 여기까지 출근 못 할 것 같은데.
게다가 호주 사람들이랑 일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가지 말까?’
그렇게 투덜대다 보니
어느새 면접이 진행되는 곳까지 와버렸다.
면접 장소는 대형 한인 마트 안에 있는 작은 카페였다.
커피, 빙수와 디저트, 여러 가지 음료를 파는 곳.
테이블은 네 개 남짓,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뭐야, 대충 시간만 때워도 될 것 같은데?'
그런 조건이라면 자신 있었다.
매니저님은 내 이력서를 천천히 보더니 말했다.
"호주에서는 아직 근무경험이 없으신데,
한국에서 경력이 좋으시네요
자격증도 많으시고요.
호주에서 일 구하기 많이 힘드시죠?"
예상치 못했던 그의 친절한 말 한마디에
꽁꽁 얼어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몇 가지 질문이 오갔고, 그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으세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내일부터라도 바로 할 수 있어요.”
아까 불만 가득하던 사람 어디 갔나요?
오후에 면접이 몇 차례 더 있으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오전에 결과를 알려준다고 하셨다.
'여기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면접이 끝나고
오랜만에 한인마트에서 먹을거리를 가득 샀다.
모처럼 신이 났다.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전화가 울렸다.
”지이이이잉 “
아까 그 카페였다.
"혹시 이번 주 토요일부터 가능하세요?"
"네 그럼요. 당연히 가야죠!"
그날은 내가 브리즈번에 온 뒤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던 날이었다.
70여 번의 지원 끝에 처음으로 받은 잡 오퍼.
자존감이 이미 바닥까지 내려와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었던 때,
기적처럼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저녁을 맛있게 차려먹고
걱정 없이 잠을 푹 잤다.
내일은 이력서 돌리러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토요일, 오후 3시.
처음 출근하는 날이었다.
긴장됐다.
다소 무표정한 여자 직원이 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오신 거죠?"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바로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오늘부터 3일 동안 오픈부터 마감까지
카페의 전반적인 업무를 배우기로 했다.
에스프레소 추출하는 법,
라테를 만들 때 스팀기 사용하는 법,
차가운 음료 만드는 방법,
주문받는 법, 계산하는 법, 마감하는 법까지.
‘이걸 만약 영어로 배웠다면
내가 과연 다 이해할 수 있었을까?’
돈을 주고도 배우기 힘든 실무 교육을
한국어로 이렇게 자세히 들을 수 있다니.
그리고
사실 여긴 숨쉴틈 없이 하루 종일 바쁜 카페였다.
면접 보러 왔을 땐 손님이 한 명도 없더니
그땐 다 어디 계셨었나요..
정신없이 뒤에서 보조하고 있었는데
트레이너가 물었다.
"이제 미송씨가 한번 해볼래요?"
자신은 없었지만 일단 대답은 언제나 자신 있게!
"아.. 그럼요!"
드디어 내 첫 손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Hi, What can I get you?"
“안녕하세요.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어요?”
"Medium latte, please."
“미디엄 라테 하나 주세요”
트레이너가 두 눈에 레이저를 켜고 나를 지켜봤다.
내손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일단 계산을 먼저 끝내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우유를 데웠다.
그 순간 스팀기에서 끼이이이익 소리가 났다.
내가 당황하자 트레이너는 손님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현재 트레이닝 중이니 양해 바란다고.
손님은 너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Oh! no worries! take your time."
“오! 걱정 마세요. 서두를 필요 없어요”
라테를 손님에게 건넸다.
“Here is your latte, Hope you enjoy”
“여기 라테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
“I am sure I will, good luck with your training”
“네! 그럴게요. 트레이닝 잘 마치시길 바랄게요.”
너무도 다정했던 내 첫 손님.
그가 카페를 나간 뒤,
나는 조심스럽게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시베리아의 겨울처럼 매서웠었던
그녀의 눈빛이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미송씨 정말 잘했어요. 이제 혼자 하셔도 되겠네요”
그 순간,
이 땅에서 처음으로
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꼬박 두 달을 일했다.
아쉽게도 매장 사정상 파트타임 전환이 어려워
테솔 과정 시작을 앞두고 일을 그만둬야 했지만 말이다.
아침 8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혹은 오후 1시 출근, 밤 9시 퇴근.
주말도 없이 바빴지만,
통장 잔고가 조금씩 불어나는 걸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안 쓰고 안 먹고 악착같이 일하고 모아서
부족했던 수업료와
코스가 끝날 때까지 드는 생활비를 벌었다.
그리고 덤으로
커피와 음료 제조, 손님 응대,
캐시 핸들링과 카드머신 사용법까지.
이제는 호주 어느 카페를 가도 바로 일할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을 쌓았다.
"고생 많았어요.
코스 끝나고 일자리 필요하면 또 연락해요."
"네, 감사했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렇게 나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이브에
호주에서의 첫 직장을 떠났다.
매니저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라테 한 잔을 들고
카페 문을 나서며 한 모금 마셨다.
딱 알맞은 온도, 부드러운 우유 거품,
깔끔하게 내려진 에스프레소.
마치 지난 두 달 동안 일과 돈, 경험과 자존감을
조금씩 되찾아 온 내 시간들처럼 완벽한 맛이었다.
가끔 인생은 좋은 기회를 주기 전에
우리가 그 기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시험한다고 한다.
어쩌면 70여 번의 고독한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 나갔기에
그 기회가 선물처럼 나에게도 왔던 게 아닐까.
그날 전화를 받고 면접에 갔던 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기까지 2주 남짓 남았다.
다시 돌아갈 날이 오긴 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