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심하기 3개월 전]
나는 해외 사업팀에서 꼭 일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난 늘 '해외'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항공사 승무원을 3년 넘게 준비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말이다.
화려한 승무원 유니폼 대신
대기업 사내 교육팀 명찰을 가지게 됐지만,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나'에 대한 동경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해외 사업팀에서 일하는 게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이
마치 다른 방식으로나마 내 꿈을 이루는 길처럼 보였다.
그 당시 회사는 미국, 영국, 동남아로
사업을 거침없이 확장 중이었고,
이탈리아 밀라노 엑스포에서의
한식 프로젝트까지 기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는 늘 대졸 공채 사원과
경력 있는 선배들에게 돌아갔다.
서비스 교육 담당자로서
내 노력이 빛을 볼 순간을 기다렸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이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회사 안에서는 길이 없으니
회사 밖에서라도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 무렵 우연히 홍콩에서 열리는
중동 항공사 승무원 오픈 데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맞아,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한번 포기했던 그 꿈을,
이번엔 경력을 무기로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본 요건은 충족했으니
'나' 정도면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다.
그때 나는 대기업 경력이
무슨 면접 프리패스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만하고 있었다.
파이널 인터뷰까지 간다는 가정하에 4일 휴가를 받았다.
면접을 위해 50만 원짜리 빨간 재킷도 서슴없이 샀다.
사흘 이상 진행되는 면접에서 버틸 걸 생각해서
구두도, 화장품도 무조건 좋은 걸로 장만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갑자기 덜컥 합격이 돼버리면 어쩌지?
인수인계는 누구한테 해야 하나?'
혼자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홍콩으로 무작정 떠났다.
드디어 대망의 그날 아침.
영문 이력서를 들고 면접관 앞에 섰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 연습했던 인사말
"Good morning, Nice to meet you."
그런데 막상 면접관 앞에 서니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면접관이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일단 모든 대답을 "예스 예스"로 일관했다.
결국 면접관이 물었다.
"Where did you learn English?"
세상에, 어디서 영어를 배웠냐고?
전혀 예상 못 한 질문에 머릿속이 더욱 새하얘졌다.
'학교 다닐 때 배웠어요'라는
간단한 문장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입 밖으로 나온 건
"Um... I go school?"
망했다. 문법 테러리스트인 것까지 들키고 말았다.
면접관은 끝까지 프로페셔널함을 잃지 않고
서류를 리뷰하고 내가 다음 면접 대상자가 된다면
저녁 6시까지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면접 대상자는 이미 이력서를 제출할 때
면접관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고,
다음 순서인 토론 면접은
그날 오후 1시부터 진행 됐다고 들었다.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모국어로 해도 떨려서 생각이 안 날 상황인데,
그걸 영어로 하겠다고 여기까지 왔다고?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해외 사업팀에서 일하려 했던 건지.
가장 기본인 영어로 소통도 못하면서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기회가 안 온다고 불평하던 내가
너무 못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해외 영업팀이고 승무원이고 나발이고,
일단 영어부터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제 나흘 중 겨우 이틀째 아침인데.
홍콩 일정에 올인한 덕에 텅 빈 통장,
그리고 남은 이틀...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