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테솔(TESOL)만 이수하면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 만도 아니었다.
이력서에 한 줄이 더 추가 됐을 뿐
나는 여전히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그사이에 나는 브리즈번에서 일도 두 곳이나 구했고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고 더 저렴한 숙소로 옮겼다.
인턴쉽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기에 일을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악착같이 모으려고 했다.
주 4일은 카페에서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바리스타로 일하고
주 3일은 하루 종일 마트에 있는 초밥코너에서
하루 8시간씩 초밥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쉬지 않고 주 7일을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미송아, 잘 지내나?"
"응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우리 딸 며칠 연락이 없길래,
잘 지내나 싶어 전화했지."
"바빴어요. 엄마는 어때요?"
"아... 엄마는…
엄마가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은 며칠 전에 팔이 부러졌어.
일하다 넘어졌는데,
골다공증 때문에 팔이 좀 많이 부러졌대."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어떡해... 엄마, 대체 언제, 왜 말 안 했어요.
혼자 어떻게 씻고 식사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며칠 됐으니까 괜찮다. 깁스하고 있으니까 됐다.
다음 주에 오빠가 온대 "
"왜 진작 말 안 했어요. 엄마 죄송해요..."
"아니다. 너 이렇게 걱정할까 봐 그랬지.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그렇게 숨 쉴 시간도 없이 일했는데,
비행기 왕복표값을 겨우 낼 수 있을 정도다.
전 재산 탈탈 털어 한국 다녀오면, 그다음은?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인턴쉽은?
며칠을 멍하니 보냈다.
일하면서도 엄마가 혼자 고생하고 계실 모습이 떠올라
자꾸 눈물이 났다.
‘안 되겠다. 그냥 집에 가야겠다.’
집에 와서 출국 준비를 하려고 책상을 정리했다.
그때 서류 더미에서 나온 문서하나..
'S Project - Finding Real Me'
회사 책상 서랍 제일 아랫칸에 몰래 숨겨두고
퇴사하고 싶을 때마다 하나하나 써 내려가면서 완성된
내 인생 새 출발 기획서였다.
나의 퇴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작성하기 시작했지만,
서른이 되도록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앞만 보며 걸어갔던 내 인생.
결국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작성한 오직 나만을 위한 작은 프로젝트였다.
- 어떤 목표를 가지고 떠나는지
- 어떤 것을 이루고 올 것인지
- 비용은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 향후 계획은 무엇인지
- 내가 이 여정을 통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필리핀 어학원, 테솔 이수는 이미 했고..
아직 못한 건,
한주에 1000달러 벌기
봉사활동하기
자격증 최소 3개 취득하기
현지 회사 인터뷰 보기
외국계 회사 취업하기
…
...
그렇게 10년이 흐른 2026년 즈음엔
꿈에 그리던 세바시 강연 무대, 그리고 도서 출간...
아직 할 게 많은데 여기서 멈추면?
잔인하리만큼 이기적이지만
이대로 한국에 갈 순 없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엄마..."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딸 그새 감기 걸렸네, 약 챙겨 먹었어?"
‘엄마’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내가 감기 걸렸는지를 귀신같이 알아내는
지구상에 유일한 단 한 사람
"엄마, 나 엄마 보러 가려고 했는데,
지금은 못 가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아이고, 왜 울어 딸내미.
그 멀리서 뭐 하러 오려고, 걱정하지 마라.
엄마 괜찮다. 엄마는 우리 딸내미만 괜찮으면 된다. “
나를 안심시키려 괜찮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샘이 고장 난 듯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울지 마라 우리 딸, 네가 울면 엄마가슴 찢어진다.
엄마 걱정 말고 할 거 다 하고 오너라,
엄마 여기서 잘하고 있을게.
우리 딸 엄마가 걱정시켜서 미안해. “
"엄마 내가 너무너무 미안해요."
전화를 끊었다.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멀리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지.
하지만 지금 돌아가면
시작하지 않은 것 만도 못하기에,
완주해야 했다.
다시 일어나, 계속 걸어가야 한다.
오늘은 좀 울자..
내일은 또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야 하니까
아팠던 만큼 더 씩씩하게 나아가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