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
사장님이 놀라셨다.
“저 영국으로 갈 수 있게 됐어요.
갑작스럽게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사장님은 안도하시듯 웃으며 말했다.
"와, 진짜 잘됐다. 너무 축하해.
어쩐지 요즘 생각이 많아 보이더니,
여기서 일했다면 우린 더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정말 잘됐어."
'네가 갑자기 가면 우리 힘들잖아'가 아니라,
'여긴 걱정 말고,
가서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홍콩인 사장님,
내가 다른 나라 워킹홀리데이로 고민하고 있을 때,
우리 카페가 퀸즐랜드주 전역에 있는 체인이니
원한다면 스폰 비자를 지원해 줄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던 분이다.
처음 일하면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한국어로 "아놔, 진짜 괜찮아요!"라고 하시며
항상 나를 웃게 해 주셨다.
호주에 온 외국인 직원들이
종종 악덕사장들을 만나
최저 시급도 못 받고 일하는 것을 잘 아시고,
스태프 밀, 음료 등을 항상 넉넉하게 챙겨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1분도 쉽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급여로 계산해 주셨다.
매일 쌓이는 1분이
한 달이 되면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1분의 노동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문득 한국에서의 시간이 떠올랐다.
하루 8시간 종일 강의운영 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기본 4시간은 다음 강의 준비,
경비 처리, 서류 정리, 행정 업무들을 해야 했기에
밤 12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8시간 외에는 대부분 무급. 이른바 열정 페이.
‘네가 싫다면 너를 대체할 사람은 많아.’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누구든 할 수 있지만 너라서 더 특별해’
사장님으로 인해 모든 직원이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누가 결근을 하고 싶겠는가.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결국 리더의 자질이었다.
단골손님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리며
영국으로 가게 됐다고 말씀드리니,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시는 분들,
영국에 지인이 있으니
소개해주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중 한 손님이 물으셨다.
"여기 있는 동안 호주는 많이 여행해 봤어요?"
그렇다. 나는 여기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체류 중이지만,
'워킹'만 있었지 '홀리데이'는 전무했다.
이대로 그냥 가기 아쉬워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급하게 이곳저곳을 알아봤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의 외치다‘ 에 나온
울룰루, 에어즈락?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나왔던 멜버른?
호주 수도 캔버라?
서쪽 끝 퍼스?
‘아니.. 1년이나 있었는데, 이런 곳도 진작 안가보고…
난 정말 주구장창 공부랑 일만 했구나.’
그래도 호주까지 왔는데
오페라 하우스 정도로 마무리는 해야지.
옥상에서 오페라 하우스가 한눈에 보이는
시드니의 6인 도미토리 숙소를 예약했다.
9월 18일 카페에서 마지막 근무,
9월 22일 브리즈번에서 시드니로 이동,
그리고 시드니에서 9월 29일 부산으로 입국.
계획을 하고 보니 벌써부터 서글퍼졌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우리는 브리즈번 시내에 있는
힙한 한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나의 송별회를 했다.
국경을 넘어, 나에게 '언니~'라며 날 살갑게 챙겨주던 아이들.
특히 나한테 야박하게 굴었던 베트남 친구 S가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네가 잘하지도 못하는데 바리스타 자리에 서 있었던 게 너무 꼴 보기 싫었어. 미안해."
"네 잘못 아니야. "
우리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로마스트릿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생각했다.
'나 떠나기 전에
너랑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앞으로도 살아가며 얼마나 생각났을까.'
다음날 아침
공항으로 가기 전
나는 잠시 브리즈번 시내를 산책했다.
브리즈번 도서관,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어학원,
시청 앞 작은 문화 공간,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던 로마 파크.
바쁜 카페들을 지나갈 때마다
이력서를 들고 어설프게 가게 앞을 서성이며 들어갈까 말까를 천 번 고민하던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린 나의 브리즈번
떠나기 직전, 다시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난 이곳을 하루도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것을.
이제 진짜 떠날 준비가 됐다.
공항에 도착하여 커피를 마시며
시드니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남은 일주일은 나의 지난 1년 여정의 여독을 푸는 시간.
그리고 다음 여정을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
오랜만에 휴가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너무 설렜다.
그때 갑자기 카톡이 왔다.
“너 시드니 오픈데이 뜬 거 봤어?”
시드니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정신없이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9월 24일, 시드니 중동 항공사 채용 오픈데이.
감성에 한참 젖어 있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바로 내일모레다.
지난번엔 고배를 마셨지만
이번엔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을까?
친구가 물었다.
“너 참석할 거야? “
나는 잠시 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 메시지에 답을 했다.
반전이 끊이질 않는 저의 30대 도전 이야기,
독자님들의 응원 덕분에
저도 즐겁게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다음 화가 이번 시즌의 마지막입니다.
끝까지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