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급 인원 337명
지원 인원 1,092명
세 명 중에 한 명은 붙고 두 명은 떨어진단 말이다.
지원 현황을 보고 더욱더 요동 치는 내 마음.
시간이 이렇게 천천히 갈 수도 있는 걸까?
9월 12일에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혹시나 결과가 일찍 나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홈페이지를 새로 고침에 새로 고침.
더 고칠 것도 없는데 또 새로 고침.
버튼이 마르고 닳도록 고쳐댔다.
안 돼도 할 수 없지.
근데 안되면 나는 어떡해?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극지방과 적도를 오갔다.
조금 우습지만
나에게는 징크스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예를 들어
면접을 보러 간다거나,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버리면
이상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확실해지기 전까진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말 간절한 것이라면 더더욱.
사실 이번엔 한국에 있는 친구 도움이 없었으면
서류를 낼 수 없었기에
아주 예외적으로 그 친구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누구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내가 왜 이렇게 까지 초조했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저 혼자 끙끙 앓고 감내해야 했다.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나는 애플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자소서 수정한다고 땅만 보고 걷다가
전봇대에 부딪혀
산산조각 난 핸드폰 액정을 수리하러.
"It will be $499 (AUD)"
"Pardon?"
세상에, 499달러라니?
한화로는 40만 원? 피 같은 내 돈.
생각보다 손상이 심해서
기기 자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거참, 엄청나게 비싼 자소서였구먼.
그래도 깨끗한 화면으로
내가 기다리는 소식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아깝지 않았다.
깨끗하게 수리된 핸드폰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도 그 또한 뜻이 있는 거라고.
9월 11일 저녁.
드디어 내일이다.
하루 정도는 발표가 일찍 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변은 없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땐 결과가 나와 있겠지 싶었다.
낮시간 때부터 조금씩 어지럽더니
갑자기 머리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아프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한 두통을
내가 또 언제 앓아 봤을까 싶을 정도로
머리가 너무 아팠다.
구역질이 나고, 어지럽고 식은땀이 났다.
그렇게 쓰러지듯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강한 아침 햇살에 잠이 깼다.
그렇게 기다리던 9월 12일 아침이었다.
시계를 보려고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도착해 있는 이메일 한 통.
보낸 사람은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
제목은...
[외교부] 2016년 영국 YMS 추가 모집.........
머리가 너무 아파서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앉아 메일을 열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고,
나는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제목: [외교부] 2016년 영국 YMS 추가모집정부후원 보증서 송부
2016년 영국 청년교류제도(YMS) 추가모집
정부후원보증서 발급 대상자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뜨거운 눈물이 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깨끗한 핸드폰 액정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축하합니다.'
내가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헛되지 않았구나.
부질없지 않았구나.
미완성된 경력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
크게 달라지지 않은 환경에서
또다시 불평만 하는 커리어 이어 나가야 한다는
불안감이 가장 컸었다.
브리즈번에서의 1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연장되었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기뻤다.
나는 안다.
이것은 파라다이스행 특급열차가 아니라는 것을.
영국으로 간다고 해서
내 인생이 역전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곳에 가서도 또 하루 13시간씩
일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호주에서 나의 바닥을 보았고,
이것보다 더 구질구질 해 지더라도
이젠 어떻게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다.
호주에서 비자 만료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았고,
나는 최대한 빨리 한국에 들어가서
정부로부터 받은 보증서를 가지고
영국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마지막 근무일을 정하고
얼른 사장님께도 말씀드려야 했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 전화를 드렸다.
"사장님, 정말 죄송한데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출근을 못하겠어요"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오다니….
"아!! 걱정하지 마, 약 챙겨 먹었어?"
호주 와서 일을 시작하고 처음 해보는 결근..
시급제라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닥치는 대로 일을 더 하면 더했지,
못한다고 한 적은 없었던 지라
사장님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셨다.
병가까지 낸 마당에 오늘 하루만큼은 머리를 비우고
편안하게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출국 준비로 정말 바빠질 테니까.
잘했다.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