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엔 대체 왜 온 거야?

by 한그루



2017년 4월

어느덧 힐튼 유스턴 호텔에서 일한 지도 3개월이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조식, 룸서비스, 컨퍼런스 세팅, 라운지 응대 그리고 기물과 식기 정리까지.

호텔 식음료 업무를 하나씩 배워가고 있었다.


하루에 7시간을 포크, 나이프, 접시만 닦은 날도 있었고 새로운 일을 배우며 아찔한 실수를 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체코 등 유럽 각국에서 온 동료들 덕에

출근이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었다.


특히 이 호텔에서 일하며 인상적인 건 매니지먼트였다.


그들은 직원들이 실수를 했을 때

눈물이 쏙 빠지게 질책하기보다는,

일단 최대한 빨리 수습할 수 있도록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했다.


“Could have been worse!”

“이만한 게 어디야~”


“It’s not the end of the world!”

“세상 끝난 거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며 우리가 남은 시간 동안

스트레스받으며 일하지 않도록 챙겨줬다.

손님을 대할 때는 언제나 프로페셔널했지만,

특유의 유머 덕분에 팀 분위기는 늘 좋았다.


한국에서 나는 서비스 교육 담당자였었다.

직원들의 매너와 이미지, 일하는 태도,

심지어 목소리톤까지 코칭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그 많은 교육들이 꼭 필요했을까 싶다.

현장의 분위기는 결국 매니저에게 달렸으니 말이다.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면 손님도

그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되고

고객만족도는 자연스레 올라갈 테니까.


Happy people make people happy.




하루는 기물을 닦고 있는데, 한 친구가 물었다.

“한국은 여기서 얼마나 멀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9000km, 비행기로 12시간 정도.”


친구들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집은 보통 런던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마저도 멀다고 느끼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열두 시간이라니.


“가족 보고 싶지 않아?”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런던에도,

내 마음에도 조심스레 봄이 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있는 친구 K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 나 너 보러 런던 갈 거야."


정말 반가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그때 나는 4성급 호텔에서 식음료 보조로 일하며

한 달에 1,100파운드 남짓 벌고 있었다.

집세와 교통비를 빼면 한 달에 300파운드도 남지 않았다.


친구가 왔다 가면 밥이라도 한 끼 사야 하는데,

비싼 런던에서 나에게 외식이란 상상도 못 할 사치였다.

돈을 아끼며 생활하느라 놀러 가본 적도 없어

런던 어디가 좋은지, 맛집이 어딘지

알려줄 만큼 여유로운 생활도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같은 회사를 다녔다.

용감하게 대기업을 박차고 결혼 적령기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여자들이라는

공통점으로 더욱 친해졌다.


그 친구는 호주에서 돌아와 자리를 잘 잡았고

당시 서울의 한 5성급 호텔 마케팅 부서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 비하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초라했다.


그렇게 K가 런던에 오는 날이 왔고, 나는 마중을 나갔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그동안의 걱정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그저 반갑기만 했다.


비행기 안에서 귀걸이로 유심칩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며 해맑게 웃는 그녀.


사실 나는 런던에 온 뒤로 많이 변해 있었다.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고집도 더 세지고, 훨씬 예민해졌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K 앞에서는

걸쭉한 부산 방언이 터져 나오며

어느 순간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렇게 삭막한 대도시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K의 숙소 근처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나한테 돈 쓰지 마. 1원도!!!

너 돈 쓰라고 온 거 아니야.

내가 다 쓰고 갈 거니까 너는 절대 부담 갖지 마.”


친구가 내 주머니 사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K는 내가 일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퇴근하면 함께 밥을 먹고, 여기저기 구경도 하러 다녔다.


친구 덕분에

그제야 나도 런던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작은 것이라도 사려고 하면

친구는 내 카드를 낚아채 버렸다.

고마웠지만 점점 더 미안해졌다.




그렇게 K가 런던을 떠나기 이틀 전,

우리는 그녀의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파국을 가져올지도 모른 채

우리는 평소처럼 엉뚱한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친구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여기는 왜 온 거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네가 일하는 호텔을 둘러봤어.

주차장도 없고, 컨시어지 서비스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것 같던데. 거기서 대체 뭘 배우는 거야?”


굉장히 거슬렸다.

‘너 대체 영국엔 왜 온 거야?’


그 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있는 힘껏 나를 방어했다.


“야! 얘가 또 뭘 모르는 소릴 하네.

런던 한복판에서 무슨 주차장이냐!

그리고 1층에 컨시어지 서비스 있어.

런던 4성급 호텔을 한국 5성급이랑 비교하면 안 되지.”


그러자 친구도 받아쳤다.


“나 첫날부터 느꼈는데 너 왜 이렇게 날이 서 있어?

왜 이렇게 방어적이야?”


그때부터 나는 완전히 고삐가 풀려버렸다.


“아니, 나도 네가 왔을 때부터 느꼈는데

왜 나한테 계속 영국에 왜 왔냐고 묻는 거야?


나도 사실 몰라. 내가 왜 여기 왔는지.

나도 모르는 걸 계속 물어보면 어떡해?


나도 하루하루가 너무 불안해.

하루 종일 접시랑 기물 닦으면서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네가 알기나 해?

나도 내가 여기서 대체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괜찮다고, 나는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꼭꼭 숨겨왔던 속마음이

결국 입 밖으로 터져 나와 버렸다.


나는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너 나한테 이러려고 온 거야?

나 너랑 더 이상 얘기하기 싫어. 나 갈래.”


짐을 챙겨 방을 나서려는 순간 K가 나를 붙잡았다.


“그냥 이렇게 보내면

앞으로 널 두 번 다시 못 볼 것 같아.”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럼 보지 마.”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 나왔다.

K는 떠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문을 닫지 않았다.




나는 곧장 전철역으로 향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보던 친구 때문이

아니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믿었던 내 바닥보다

더 낮은 곳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나는 괜찮다 ‘ 고 수없이 되뇌이며 꿋꿋하게 버텨 왔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이미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그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나이에, 이 어린애들 사이에서,
이 고생을 하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기까지 온 거냐고.

잠 한숨 못 잔 채 다음 날이 되었다.



K가 런던에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보다 못한 마리아가 말했다.

“런던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네 친구는 몰라.

그래도 이렇게 보내면 다신 못 볼 수도 있어.

늦기 전에 꼭 연락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친구가 공항으로 향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결국 용기를 내어 카톡을 보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어.

여기까지 왔는데 못난 모습만 보였네.

다음에 한국에서 꼭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1 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동안,

그리고 오랫동안.


나를 보러 9000km, 12시간을 날아온

고마운 친구를 그렇게 보내고야 말았다.


내 하찮은 자존심이 우리의 우정을 기어코 망쳐 버렸다.


참 못났다.





화, 수, 금, 일 연재
이전 05화마리아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