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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Dec 21. 2016

자유롭게 꿈꾸는 아이들이 있는 나라, 덴마크

월간 <폴라리스>  '아이와 꿈' 中

덴마크 사람들은 어떻게 꿈꿀까



“커다란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 될 거야” “나는 가수가 될래” 천진하게 꿈을 얘기하는 아이를 보면 부모들의 마음 한구석은 어쩐지 무거워진다. 이 아이가 정말 꿈을 이루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세상일까.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어른들과 자유롭게 꿈꾸는 아이들이 있는 나라, 덴마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글 박은아  사진 제공 북유럽문화원, 위즈덤하우스  도움말 김진희 북유럽문화원 공동대표


일하는 것이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


“당신은 일하는 게 행복한가요? 왜 일을 하나요?” 이런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까. 고민 없이 ‘즐겁다’ ‘행복하다’고 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일을 재미로 하나, 돈 벌려고 하지.”
사람들에게 있어 꿈이란 대개 장래 희망, 즉 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의 동의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의사니 과학자니 하는 장래 희망을 품고, 그 꿈을 이룬 미래의 나를 그려보곤 했다. 그 상상의 세계 속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분명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왜 매일 아침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회사로 향하고 꿈 따위는 꾸지 않는 어른이 됐을까. 어릴 때 품었던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해서? 그렇다면 내 아이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여기 배를 아프게 하다 못해 자괴감이 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하는 것이 즐겁고 삶이 행복하다는 덴마크인들이다. 덴마크는 ‘덴마크=행복한 나라’가 공식처럼 여겨질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UN이 1인당 GDP, 삶의 선택에 대한 자유, 부패율, 건강한 삶 기대 지수 등을 조사해 매년 발행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덴마크는 한 차례 3위를 했을 때를 빼고는 세 번 모두 1위 자리를 지켰다. 근로자의 직업만족도 역시 1위다. 반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58위다. OECD가 발표한 ‘2016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38개 회원국 중 28위를, 일자리 만족도는 17위를, 일과 삶의 균형은 36위를 차지했다. 행복이나 직업 만족도를 정확히 수치화하는 데 한계는 있을 것이다. 그늘과 이면 없이 마냥 행복한 낙원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쏟아져 나온 덴마크 관련 책과 방송 속 ‘증언’들은 그 수치가 결코 거짓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나라
덴마크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저마다 다른 미래를 꿈꾼다. 의사가 되려는 사람도 있지만 열쇠수리공이 되길 원하는 사람도 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이가 있는 반면 직업학교에 진학해 기술자가 되려는 이도 많다. 덴마크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돈이나 사회적인 명성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인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이런 선택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적은 소득 격차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나라이기도 한데, 소득에 따라 그 비중이 달라진다. 물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의사, 변호사와 같은 직업들이 많은 돈을 벌고, 자산과 소득에 따른 빈부 격차도 분명 존재한다. 자본주의 국가니까. 하지만 그 차이가 적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전문 기술을 지닌 이들에 대한 대우가 좋은 편이다. 직업에 따른 사회적 격차가 적다 보니 굳이 어떤 직업을 부러워하거나 비교할 필요가 없다. 이는 덴마크인 특유의 성향 덕도 있다.
김진희 북유럽문화원 공동대표는 “덴마크 사람들은 직업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직업이나 학력 같은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관심 자체가 별로 없어요. 예를 들어서 누가 ‘저 사람 하버드대학 나왔어’라고 말하면 덴마크 사람은 왜 그 얘기를 하는지 이해를 못해요”라며 덴마크 사회를 설명한다.
우수한 성적이 명문대 진학으로, 좋은 직업으로, 많은 돈과 사회적 지위로 견고하게 이어져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하는 한국 사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셈이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돈과 명성보다 중요한 것은 일과 가정의 균형, 안락하고 소박한 일상이다. 덴마크에는 ‘휘게(hygge)’라는 덴마크어가 있는데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 소박하고 단순한 상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휘게를 매우 중시하는 덴마크 사람들은 화려한 장식품보다 집 안을 아늑하게 만드는 양초 한 자루, 비싼 음식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소박한 식사가 가치 있다고 여긴다. 집 안을 장식할 때도, 식당을 선택할 때도,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도 ‘휘겔리(휘게의 형용사적 표현)’ 한가 아닌가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 <휘게 라이프>의 저자 마이크 비킹은 복지 모델이 우수한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유독 덴마크가 각종 행복 관련 지수를 휩쓰는 이유를 이러한 휘게 문화에서 찾는다.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소박한 행복, 현재의 평화로움에 집중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개인이 꿈꿀 수 있게 하는 버팀목, 사회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러한 삶과 일에 대한 만족도 뒤에는 든든한 사회제도가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세금이 높은 나라다. 그런데도 덴마크 사람들은 별 불만이 없다. 왜냐고? 그만큼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지라도, 나라가 사사로이 돈을 쓰지는 않으리라는 신뢰를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덴마크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1위 타이틀’이 있는데, 바로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정부라는 국가 청렴도지수(국제투명성기구 보고서)다. 자괴감을 넘어 박탈감마저 드는 대목이다.
어쨌든 덴마크는 세금으로 노동, 의료, 교육 등 생활 전반에 거친 탄탄한 복지제도를 시행한다. 특히 교육비 지원이 매우 높은 나라로, 대학 진학 때까지의 모든 공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한다. 이는 부모가 ‘내 돈으로 공부시키는데!’라는 명목으로 자녀의 미래를 좌우하는 일을 원천 봉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의외의 사실 하나. 덴마크는 해고가 자유로운 나라다. 종교, 성 정체성 등 차별적 이유에 의한 해고는 불법이지만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으면 쉽게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해고는 곧 살인’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업이 직원을 쉽게 해고하는 나라에서 일을 하는 게 행복하다니. 
이는 덴마크의 독특한 노사 정책인 ‘유연안전성(flexicurity)’에 따른 것으로, 기업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는 대신 해고된 노동자는 정부로부터 기존 월급의 80~90%를 2년 동안 실업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법 제정 당시에는 기한이 없었으나 9년, 7년, 4년 순으로 줄어들어 현재는 2년이다). 재취업을 위한 다양한 교육 기회도 제공된다. 2년이 지나도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할 때는 사회보장기금에서 생활비를 보조해준다. 덴마크에는 기본적으로 누구든 거리에서 굶어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 덕분에 덴마크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찾는 것에 두려움이 적다. 굳이 해고를 당하지 않아도 성인들을 위한 직업교육이 활발해 제2, 제3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다. 헬렌 러셀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에 따르면, 덴마크 노동자의 25%가 매년 새로운 일자리를 가지며, 실직자 중 40%가 석 달 안에 새로운 직장을 찾는다고 한다. 오히려 기업이 유능한 인재가 그만두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근무 조건과 환경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라고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싸운 사람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덴마크의 근로 환경과 복지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한 사회가 가진 사회문화에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있겠지만, 성공적인 노사 정책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연안전성’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를 대표 사례로 삼아 살펴보자.
19세기 후반 덴마크는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노동자 해고와 열악한 근무 여건, 저임금 장시간 근로 등의 문제들이 불거졌다. 그러던 중 1895년 겨울 불경기로 인해 덴마크 노동자의 1/3가량이 해고됐고, 노동자들은 1899년 5월부터 약 4개월간 총파업에 돌입한다. 오랜 토론과 논쟁 끝에 노동자는 노조 결성과 파업의 자유를, 경영자는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때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이를 ‘9월 대타협’이라 부른다. 이후 활발해진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꾸준하게 타협과 평등을 중시하는 직업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덴마크 근로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기반을 유지해주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덴마크는 노동자의 2/3가량이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 직장에 들어가면 자연스레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분위기로, 이를 거부하면 의아하게 여길 정도다. 덴마크는 기본 7주의 연 휴가와 주당 37시간의 근무(법정 노동시간 기준)로도 부러움을 사는데, 이 역시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꾸준하게 싸워온 결과다. 1928년 덴마크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당시 가장 큰 산업이었던 제철 노동자들의 유급휴가는 1년에 3, 4일에 불과했다. 노동조합의 꾸준한 압력 끝에 1938년에 모든 노동자가 2주간의 유급휴가를 쓸 수 있는 법이 통과됐고, 1932년에는 3주, 1971년에는 4주, 1979년에는 5주로 늘어났으며, 현재는 기본 7주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성적보다 주체성을 키우는 아이들

한 사회의 교육철학과 방향성은 그 나라를 이해하는 중요한 지표다. 일과 삶의 균형, 탄탄한 복지제도, 직업 간 차별 없는 사회는 어떤 교육을 가능케 할까. 반대로 덴마크의 어떤 교육이 이러한 사회를 가능케 했을까.
덴마크 교육의 핵심은 평등과 자율성에 있다. 부모들은 공부 기술 하나를 배우는 것보다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찾고, 타인을 존중하고 협력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학습 능력은 여러 재능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해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칭찬받고 학습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무시하는 분위기도 없는 편이다. 이는 가정뿐 아니라 학교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꿈을 강요하거나 다그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부모가 아이의 꿈을 정해준다거나 뭐가 되라고 권하는 것이 매우 이상한 일로 여겨진다. 김진희 북유럽문화원 공동대표 역시 덴마크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를 대신 계획하고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덴마크 부모들은 꿈이라는 말 자체를 별로 쓰지 않아요.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회라 굳이 아이의 꿈에 연연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죠. 그냥 너 좋아하는 거 하면 되지, 정도의 태도예요. 덴마크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뭔가를 만들거나, 원대하고 거창한 걸 이루는 것보다는 뭐든지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해요. 아이의 삶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고요.”
대신 독립성과 자율성을 키워주는 가정교육을 매우 중시한다. 정리 정돈을 하고, 스스로 옷을 입고, 설거지를 깨끗하게 하는 등의 생활 습관을 통해 자기 일상을 주체적으로 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더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은 결국, 학교와 가정이 강조하는 가치가 사회에서도 통용된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공부를 못해도 다른 재능을 찾을 수 있다는, 어떤 일을 하든 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사회가 최소한의 복지를 책임져준다는 믿음 말이다. 역으로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더 좋은 대학 가야지’라고 압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부모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있을 것이다. 
요즘 어딜 가나 북유럽 스타일이 인기다. 사람들은 아늑하면서 세련된 북유럽 스타일의 그릇과 양초, 담요에 열광하며 지갑을 연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이 삶과 일을 대하는 태도, 아이들의 꿈을 뒷받침해주는 복지와 교육제도 아닐까. 결국 꿈을 위한 노력의 몫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에게 있다.



참고 도서 

오연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말레네 뤼달 <덴마크 사람들처럼>, 마이크 비킹 <휘게 라이프>, 헬렌 러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 김영희 <대한민국 엄마들이 꿈꾸는 덴마크식 교육법>




행복을 키우는 영유아 교육라이프 매거진 <폴라리스>는 매월 한가지 주제만 심층적으로 다루되, 확장성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폴라리스>는 앞서가는 부모를 위한 영유아 교육 지침서 역할과 교육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는 교육 전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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