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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폴라리스 Jan 10. 2017

엄마의 이름

월간<폴라리스>Vol.180 '안녕, 자존감' 中

글 김서화  에디터 박은아



친정엄마는 살림꾼 중의 살림꾼이었다. 하루 세 번 집 안 청소를 할 만큼 부지런하고 깔끔했다. 도시락은 엄마 살림의 절정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내가 도시락 뚜껑을 열기만을 기다리셨다. 짓궂은 남학생들은 미리 젓가락부터 빨고 있다가 위 칸 반찬들을 죄다 집어 도망가기도 했다. 이를 알고 엄마는 반찬만 여러 통 더 싸주셨다. 또 친구들은 우리 집에 와서 시험 공부하는 날을 기다렸다. 엄마는 공부하라고 크게 채근하지도 않으셨고, 오히려 중간중간 간식을 챙겨주시고, 집을 평소보다 더 깔끔하게 해놓으셨다. 잠이라도 자고 가는 날이면 새로 빤 이불 세트를 펼쳐주고 진수성찬 못지않은 아침상도 차려주셨다. 말이 시험공부였지, 친구들에게는 우리 집에 모여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날이었다. 

엄마는 본인의 임무를 절대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이었다. 외할머니가 워낙 어릴 때 돌아가신 게 큰 이유다. “엄마 없이 사는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본인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늘 ‘최고의 엄마’를 선물하려고 했다. 안락하고 따뜻한 살림과 도시락은 그런 각오가 가져온 혜택이었다. 
하지만 엄마 스스로에게도 안락하고 따뜻한 날들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유리알처럼 매끈한 집 안이나, 한 반 아이들도 거뜬히 먹일 만한 도시락이나, 내 친구들까지 두루 살피는 노력 뒤 그늘은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기억났다. 거의 매일 엄마는 몸살을 앓았고, 만성두통으로 약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꽤나 히스테릭했다. 왜 당시는 그런 모습을 지나쳤을까. 

내가 엄마를 더 강렬하게 기억하는 날들은 따로 있다. 어느 날 문득 주부대학을 다니겠다 하셨던 때다. 그때부터 몇 년간 엄마는 열심히 일본어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고, 학교 공부를 했다. 집 안 곳곳에 엄마 이름이 적힌 노트나 책이 놓이기 시작했다. 아침 식탁에 앉으면 새벽녘에 펼쳐보다 옆으로 밀쳐놓은 노트가 있었다. 가운데 볼펜을 끼워서 대충 덮어놓은 그 노트가 아침밥보다 더 따끈해 보였다. 나는 한 번씩 노트 표지의 엄마 이름을 손으로 매만져보고는 했다. 그 이름 세 글자가 왜 그렇게 빛나 보였을까? 그 무렵 엄마는 별로 히스테릭하지도 않았고, 외할머니의 부재에 대해서도 자주 말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 엄마를 마음에 품고 있다. 살면서 힘들어질 때면 꺼내보는 모습 중 하나다. 그 모습이 내 삶에 직접적인 에너지를 준다. 엄마가 ‘엄마’가 아닌, 자기 이름 세 글자로 살아본 시절. 
어릴 적에는 그저 엄마가 바쁘고, 뭔가 공적인 일을 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면 좋은 거니까, 그래서 멋있어 보이는 줄 알았다. 내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아이들과 고도로 밀착해야만 하는 초창기 육아를 행하는 시기가 되자 깨달았다. 도시락의 혜택보다도 엄마 이름 세 글자에서 더 큰 삶의 에너지를 얻는 이유를…. 
엄마는 그 몇 년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최고의 엄마’에 충실하기 위해 열심히 살림을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엄마’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가 내게는 가장 멋지게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아실까. 엄마가 잠시나마 자기만의 삶을 살았던, 자기 이름 세 글자를 이곳저곳에 써놓던 시기를 보여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엄마로서 삶의 무게가 버겁더라도 종국에는 내 이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내 스스로 그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딸아이의 초창기 육아, 밀착육아의 끝이 보인다. 습하고, 어둡고, 두렵고, 막막했던 시간들이었다. 최근 나는 이전에 하던 학업으로 복귀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쁜 요즘, 이제 네 살이 된 딸이 묻는다. “엄마, 학교 가?” 아무래도 나는 아이가 안쓰러워 “응, 이제 많이 바빠질 텐데”라며 미안해했다. 그런데 의외로 딸은 “진짜 잘됐다. 잘 다녀오세요”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그럼 열심히 행복하게 하세요”라며 뜬금없이 배꼽인사를 했다. 딸은 이내 학교놀이를 하자며 의자 위에 올라서서 제법 선생님처럼 “학생! 이름이 무언가요?”하고 물었다. 그 순간 엄마 노트의 이름 세 글자가 떠올랐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저는 김서화입니다”라고 초등학생처럼 대답했다. 딸이 나를 따뜻한 엄마로 기억하는 동시에 나의 이름도 기억하기를 바란다. 엄마가 자기 이름을 찾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이 살면서 곤궁해질 때, 삶의 자원이 되어 자기를 찾게 해줄 힘이 될지도 모른다.




김서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칼럼니스트. 사회학과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여성주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변화시키고자 글을 쓰고 있다. 여성주의 미디어 <일다>(www.ildaro.com)에서 ‘초딩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칼럼을 썼고, 월간 <작은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 코너를 정기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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