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폴라리스>Vol.170 '식탁을 부탁해'中
일상과 전혀 다른 하루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편하고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조금 낯설지만,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여행을 소개한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식탁 위에 놓인 음식에 감사해 하는 아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글 성소영 에디터 윤경민 포토그래퍼 강봉형
봄의 기운을 느끼는 용인 여행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주말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한 주의 금요일엔 언제나 잠이 오지 않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곳을 찾는다는 기대감, 얼마나 재미있는 여행이 될지를 상상하는 설렘은 아침에 눈을 번쩍 뜨게 했다. 여행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로 ‘음식’도 한몫을 했다.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평소에는 잘 먹지 못했던 과자와 음료수가 여행지에서만큼은 마음껏 허락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색소와 설탕으로 가득한 음료가, 여행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이처럼 여행의 의미와 재미를 ‘음식’에서 찾는 가족이라면, 이번 여행이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고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산해진미나 구미를 확 당기는 자극적인 음식 대신 자연에 가까운 먹거리와 만날 기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박 2일의 여정이 끝나고 난 뒤에는 우리에게 건강한 삶을 선물하는 음식에 감사하고, 쌀알 한 톨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아이의 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용인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놀이동산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용인에는 에버랜드를 제외하고도 가족과 함께 갈 만한 좋은 공간이 많다. 실제로 용인은 한국민속촌, 호암미술관, 한택식물원 등 관광지를 비롯해 농촌테마파크, 체험 농장 등이 있는 경기권 최고의 여행지다. 국토의 중심부로 북부권, 남부권, 동부권에서 모두 찾아오기 좋은 지리적 위치에 있고 서울에서도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기에 주말 아침, 부담 없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예로부터 이곳에는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는 말이 전해내려 오는데 ‘죽어서는 용인에 묻히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용인 사람들이 지역의 수려한 산세와 뛰어난 풍수지리에 얼마나 자부심이 많았는지 보여준다.
수많은 관광지 중에서도 농촌테마파크는 용인시에서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관광산업 중 하나다. 하천이 많아 물이 풍부한 용인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농경이 발달해 왔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너른 들판이 펼쳐진 한적한 시골마을에 도착하면, 파릇파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봄의 첫 인사를 받을 수 있다. 농촌테마파크 인근에 위치한 체험 농장 중 하나인 ‘쭝이랑 딸기체험’은 아이들과 함께 딸기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는 3월. 딸기를 수확하며 봄의 기운을 실컷 만끽할 수 있다.
수확의 기쁨을 맛보다
‘쭝이랑 딸기체험’에 도착해 비닐하우스 문을 열면 발을 채 내딛기도 전에 상쾌하고 향긋한 딸기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가만히 서서 향을 맡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다. 이곳은 20대 중반의 젊은 대표가 운영하는 곳으로 지난해 처음 문을 연 새내기 농장이다. 용인에서 오랜 기간 한터 조랑말 농장을 운영해 온 부모님 밑에서 자란 김일중 대표는 자연과 가장 가까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딸기를 따며 즐거워하고 농장을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애정이 느껴진다. 부모님의 뜻을 이어 농업기술대학을 졸업한 후 시작한 체험 농장은 일 년 만에 인근 엄마, 아빠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농업과 젊은 감각을 접목한 덕분. 젊은 대표가 운영하는 농장답게 이곳은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보통의 체험 농장은 판매를 위해 운영하던 오래된 농장을 과일 수확 시기에 따라 잠시 체험 농장으로 전환한 곳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과일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이들과 방문해 시간을 보내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김일중 대표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런 점이다. 농장을 찾는 사람들이 깨끗한 공간에서 체험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쾌적한 시설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수경재배용 베드에 딸기를 심어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딸기를 딸 수 있다. 수경재배용 베드가 지상으로부터 약 50~70cm 정도 떨어져 있어 주렁주렁 열린 딸기와 아이들의 눈높이가 꼭 맞는다. 약품을 쓰지 않고, 꿀벌을 활용한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딸기를 기르기 때문에 아이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일단 농장을 방문하면 일회용 통을 주는데 그 안에 마음껏 딸기를 따 담으면 된다. 여느 농장들에서 일인당 체험비용을 책정하는 것과 달리 ‘쭝이랑 딸기체험’에서는 딸기를 딴 만큼만 계산할 수 있어 더욱 합리적이다. 농작물을 수확하는 경험을 처음 해보는 아이들은 순식간에 통 하나를 가득 채운 이후에도 줄곧 딸기 따기에 여념이 없다. 방금 딴 딸기를 바로 입속에 가져가는 기쁨도 크다. 따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딸기는 맛과 향이 진해 먹고 난 뒤 오래도록 상큼한 여운을 남긴다.
비닐하우스 맞은편에는 가족이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하우스에 들어서면 카페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산뜻한 컬러로 칠을 한 나무 테이블이 돋보인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한편에는 널찍한 공터를 마련해 두었다. 이곳에서는 각종 음료를 주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딸기 모찌, 딸기 베이글, 딸기 케이크 등을 만드는 체험을 함께할 수 있다.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작은 식판에 재료를 알맞게 담아주는데 방금 딴 싱싱한 딸기를 활용하기 때문에 그 맛 또한 일품이다. 딸기체험 패키지를 신청하면 1인당 1만7000원의 체험료로 딸기 따기(500g)와 딸기 베이글 만들기, 딸기 모찌 만들기, 동물 먹이 주기를 모두 체험할 수 있다.
‘쭝이랑 딸기체험’ 마을에서 오전 체험을 끝내고 나오면 출출해질 시간이 된다. 다음 일정인 화운사에 도착하기 전, 용인중앙시장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를 권한다. 농촌테마파크와 화운사 사이에 위치한 중앙시장에는 ‘머뭄 도시락 카페’가 있다. 시장 내 반찬가게에서 원하는 반찬을 골라 담아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아이와 함께 먹고 싶은 반찬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 매월 날짜에 5와 10이 들어간 날은 용인오일장이 서는 날이니 참고하자.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여정
용인중앙시장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리면 화운사에 도착한다. 멱조산 자락에 위치한 화운사는 예로부터 유명한 비구니 수행도량이다. 1938년, 우암거사가 창건한 곳으로 ‘화운(華雲)’이라는 이름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 꽃구름이 피어났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여느 절들이 외진 산속에 위치한 것과 달리, 화운사는 용인 시내와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절이라 엄마와 아이가 버스를 타고 템플스테이를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뚝 솟은 산 안에 포근하게 자리한 화운사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안락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곳곳에 심은 꽃나무는 봄이면 꽃이 만개하는데, 아름답고 온화한 모습이 비구니를 닮았다. 절에서는 스님을 만나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인사해야 한다. 합장은 부처님 또는 보살을 공경하는 예법으로 ‘손가락과 손바닥을 한데 모으듯이 마음을 진실하게 모아 상대방을 공경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인사법과 그 의미를 배우고, 엄숙한 절의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바르게 살아가는 예절을 익히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절이 어린이들에게 무섭고 불편한 공간은 아니다. 화운사에서는 엄격한 규율을 내세우지 않고 최소한의 예의범절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마음껏 웃는 것이 허락된다. 어린이들의 밝은 기운이야말로, 행복한 미래를 가져오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화운사의 어린이 템플스테이 ‘놀아봐 꿈꿔봐!’는 전국 어느 절과 견주어도 가장 뛰어난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평가를 받는다. 거기에 지난 2012년부터는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가족 템플스테이 전문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상시 진행되는 화운사의 가족 템플스테이는 보통 3시 이후에 시작된다. 절에 도착하면 먼저 하루 동안 사용할 방을 배정받고 스님들과 인사한 뒤 사찰 예절을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이후 5시가 되면 첫 번째 저녁 발우공양을 하는데 집에서는 반찬 투정을 하고 아무렇게나 앉아 음식을 먹던 아이들도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다. ‘발우공양(鉢盂供養)’이란 스님들의 식사법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발우’는 그릇을 지칭하는데 국그릇, 밥그릇, 찬그릇, 청수그릇의 네 가지로 이뤄져 있다. 크기가 각기 다른 네 개의 그릇은 가장 큰 그릇 안에 작은 그릇을 차곡차곡 넣어 정리한다. 위쪽부터 순서대로 찬그릇, 청수그릇, 밥그릇, 국그릇을 놓고 스님이 목탁으로 공양을 알리면 식사가 시작된다. 맨 처음에는 청수물을 받아 그릇을 헹구고, 각자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밥과 반찬을 자신의 그릇에 덜어 온다. 발우공양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이가 공평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평등사상’이다. 아이들은 스님의 설명과 함께 반찬을 그릇에 옮겨 담는 경험을 통해 욕심을 부려 다 먹지도 못할 정도의 많은 음식을 가져오면, 내 뒤에 앉은 친구가 음식을 적게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불교에서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따라서 공양물에 대한 좋고 나쁨, 맛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쌀알을 만든 농부의 노고에 감사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길러낸 자연에 감사할 뿐이다. 도선사에서 타계한 청담스님은 “음식을 먹을 때는 공양이 아닌 지혜로 먹어야 합니다. 지혜로 먹는 것은 육신을 거두기 위해 생기는 대로 먹는 것일 뿐 음식에 탐욕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너무 많은 음식을 먹고 있고, 때로는 먹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 될 때가 많은 요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식사를 할 때는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꼭꼭 씹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정갈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채식 반찬은 아이들 입맛에 다소 낯선 것이지만,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된 아이들은 발우를 깨끗이 비우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음식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다. 밥을 다 먹고 나면 꼭 백김치나 단무지 등을 하나 남겨 그릇을 깨끗이 닦아 밥알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한다. 이후 찬그릇을 씻어낸 숭늉까지 모두 마시고 그릇을 처음과 같이 차곡차곡 정리해야 비로소 식사가 끝난다.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만다라 그리기, 캠프파이어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당일 프로그램이 끝나면 오후 9~10시 사이 취침한다. 다음 날에는 새벽 4시에 기상해 새벽예불을 드리고 108배를 한 뒤 아침 공양을 한다. 내 마음대로 편하게 생활하고 싶은 욕망을 잠시 억누르고, 불교의 예법에 따라 절제를 배우는 경험은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이외에도 여름과 겨울방학을 맞이한 아이들만을 위해 진행되는 어린이 전문 템플스테이 ‘놀아봐, 꿈꿔봐!’에서는 찬불가 율동을 배우고 54배를 하는 등 아이들 수준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화운사의 모든 공간은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어 불편함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템플스테이 참여 시, 간단한 수련복을 지급하고 있지만 저녁 이후에는 다소 쌀쌀할 수 있으니 여벌의 옷을 더 챙기는 것이 좋다. 또 세면도구와 수건은 지급되지 않으니 챙겨가야 한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자라는지, 그 뿌리를 찾는 동시에 음식이 나의 몸을 구성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시간. 아이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풍요로운 밥상에 대한 고마움과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용인 여행을 떠나보자. 아이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언제나 부모 가까이에 있다.
Info
쭝이랑 딸기체험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 1316
문의 및 예약 031-323-3695
화운사 템플스테이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31번지
문의 및 예약 031-335-2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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