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자크의 소설과 함께 여행하다
아비뇽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아비뇽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7월에 열리는 축제가 마침 여행 기간과 맞은 덕분에 축제를 현장에서 보게 됐지요. 아비뇽 페스티벌은 본래 연극제로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장르가 확대되어 다양한 공연이 열립니다. 워낙 유명해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오기 때문에 일찌감치 표를 예매하지 않으면 공식 공연은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시 곳곳의 작은 공연장들에서 비공식 공연이 열리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먹으면' 말이지요. 그런데 나는 애초에 그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니, 열의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요.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다니자는 게 이번 여행의 계획이라면 계획이었습니다. 그래도 축제가 열린다니 안 갈 이유가 없지요. 정신없더라는 어떤 분의 소감을 들어서 분위기는 대강 짐작했습니다.
아비뇽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입니다.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들은 아비뇽 유수의 그 아비뇽입니다. 프랑스 왕이 교황에게 도전해서 승리했고, 그 결과 교황청을 아비뇽에 두고 프랑스인 교황을 뽑습니다. 그 기간이 약 70년이었고 그 후 로마에서 새로 교황을 냄으로써 대략 40년 간 두 교황이 공존하며 교회가 분열되는 시기가 있었어요. 14세기, 교황권이 쇠퇴하고 황제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이었는데 중세는 이렇게 해서 서서히 막을 내립니다.
그러니 아비뇽에서 볼거리는 당연히 교황청이겠지요. 그밖에 아비뇽 대성당이 있고, 광장도 있고, 아름다운 강도 흐릅니다. 론 강입니다. '아비뇽다리 위에서 우리는 춤을 춘다, 춤을 춘다...'라는 유명한 프랑스 민요가 있는데 바로 그 다리가 이 다립니다.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다리는 중간에서 끊어졌네요.
바티칸의 호화찬란한 교황청에 비하면 아비뇽의 교황청은 소박합니다. 실은 늦게 도착해서 교황청도 성당도 내부를 들어갈 수는 없었는데, 외관에서부터 바티칸에 견줄 바가 못 됐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왕이 교황에게 패배한 꼴이죠. 아직도 바티칸에는 교황이 있는데 프랑스에는 왕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교회의 호화찬란함은 솔직히 말해서 성직자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황청에서 론강까지 천천히 걷습니다. 편안한 정원 길입니다. 중간중간 아비뇽 페스티벌의 기원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매우 생소한 연극인들이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습니다. 시간은 저녁 7시경. 중요한 공연장에서는 아마도 질 높은 공연이 상연되고 있을 시각입니다. 론강까지 가서 아비뇽 다리를 보고 다시 방향을 돌려 교황청을 지나 관광안내소까지 이어지는 도심의 중앙로로 들어섭니다.
아비뇽은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중앙로는 30분 거리에 불과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거리 공연들이 벌어질 기미입니다. 기타 줄을 조정하는 사람, 앰프를 설치하는 사람, 이미 공연을 시작한 사람도 있습니다. 마술 공연입니다. 구경하는 아이 한 명을 데리고 나와 에취, 재채기를 시키더니 입에서 동전을 토하게 하네요. 남미에서 온 사람들인지,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줄을 지어 서서 북소리도 요란하게 춤을 춥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청년 한 명이 앰프를 옆에 놓고 기타를 안고 있습니다. 시간이 안 됐는지 아직 공연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노래를 듣고 싶었는데 기다리기 민망해서 자리를 뜹니다.
누군가 랩을 합니다. 힙합을 정말 좋아했던 누군가를 생각하며 서서 들었습니다. 멜로디를 얹은 랩이네요. 참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부르는 사람은 얼마나 더 행복할까요. 구경하는 내 옆에서 큰 개가 내 다리를 핥습니다. 개는 지루하고 더워 보입니다. 거리를 따라서 레게 머리를 땋아주는 사람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주 예전, 학교 운동회가 열리면 솜사탕, 번데기, 설탕 뽑기 좌판이 교문 주변으로 죽 깔렸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희한하지요? 사람 사는 풍경은 비슷비슷합니다.
시끄러운 중앙로를 되짚어 다시 교황청 쪽으로 올라갑니다. 소란 속으로 들어갔다가 소란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길. 느끼한 프랑스 음식 대신 크레페를 사들고 교황청과 성당 사이의 넓은 광장으로 들어섭니다. 광장 가장자리를 길게 두른 계단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그 사이 광장에는 어둠이 내렸습니다. 열기도 좀 식었습니다. 조용합니다. 저 앞쪽 불빛 환한 노천 식당에서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와인을 마시고 대화를 나눕니다.
광장 맞은편 빈 공간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언뜻 카운터테너처럼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러나 여자입니다. 어깨가 드러난 하얀 드레스 차림에 하얀 긴 스카프로 어깨를 둘렀네요. 머리를 틀어 올려 더 여성스럽습니다. 가곡인지, 아리아인지, 가요인지, 처음 들어보는 낯선 노래인데 절절한 사랑 노래 같습니다. 그녀는 간간이 손동작을 곁들이고 몸을 살짝 틀기도, 고개를 숙이기도 하며 마치 연극을 하듯 노래를 부릅니다.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네, 남편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잘 부르는 노래는 분명 아니었어요. 그런데 가슴을 울리네요. 노래에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진심을 다해 부르는 노래가 광장을 건너 나에게 들어옵니다. 그녀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남녀 한쌍이 노래를 듣다가 중간쯤 가버리고 또 한두 명이 듣는 듯하더니 자리를 뜹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이어집니다. 그녀는 한 곡을 정성껏 부르고, 잠시 스카프를 고쳐 두르며 숨을 돌린 뒤 다시 다른 노래를 시작합니다. 노래 속 주인공이 되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녀 주위를 떠나지 않는 한 아이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녀는 한 곡을 끝내고 잠시 아이와 얘기를 나눕니다. 아들일까? 엄마의 공연에 따라온 아이는 엄마의 노래를 들으며 놉니다. 어두운 큰 광장에서, 밤공기 속에서, 엄마의 땀내와 열기를 느끼면서요. 다른 한 아이가 광장을 가로질러 가더니 그녀 앞에 뭔가를 내려놓는군요. 노래값을 준 것 같습니다. 여자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한참 동안 얘기를 합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크레페를 먹었습니다. 나도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차장 쪽은 그녀와 멀어지는 방향입니다. 그녀에게 다가가 예의를 다해 노래를 더 들어주어야만 할 것 같은데, 나도 노래값을 내야 할 것만 같은데, 당신 노래는 정말 아름답다고, 마음을 울린다고 말을 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데, 내 두 발은 무정하게 주차장을 향해 걸어갑니다.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 나의 성의 없음을 탓합니다.
아비뇽 축제.
사람들은 어둠이 내린 광장 한 귀퉁이에서 열린 그 공연을 보지 못했겠으나 그곳에서는 그 어떤 멋진 공연도 부럽지 않은 아름다운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마침 그 시각, 그 자리에 내가 있었고요. 본인도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를 수 있는 공연, 그래서 더 아름다운 순간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일컬어 '값으로 따질 수 없다'라고 하는 것임을 생생하게 배운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