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9 : 대화들

발저크의 소설과 함께 여행하다

by 스프링버드


프랑스 남부 여행을 간다고 하면 다들 엑상프로방스를 추천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남부의 햇살이 만들어내는, 아니 프랑스 남부만의 햇살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풍경이 있나 보다고 내 나름대로 그려본 모습이 있었습니다. 노랑이 아닌 샛노랑, 빨강이 아닌 새빨강, 초록이 아닌 진초록을 상상했지요. 과연 그곳의 태양은 모든 색깔들을 강렬하게 폭발시키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인상파 화가들이 이곳을 그리도 사랑했던가 봅니다.


인상파 화가 세잔이 태어나 자라고 머물며 그림을 그린 곳도 바로 이곳, 엑상프로방스입니다. 세잔은 화가로서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인간적으로 굴곡이 심하고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산 듯합니다. 하지만 삶의 조건에서 모든 게 충족되어야지만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적어도 그는 천국 같은 자연 속에서 산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세잔의 작업실이 보존돼 있다길래 그곳을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인생 후반기에 그림에만 몰두하고자 엑상프로방스의 고지대에 있는 셰르맹데로브 근교의 땅을 사서 작업실을 지었다고 해요. 실제로 고지대더군요.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길. 햇빛도 무진장 뜨거웠습니다. 게다가 길까지 잘못 들었네요. 다행히 인심 좋은 동네 할머니께서 우리를 불러 세우더니 "어째 세잔 작업실을 가는 것 같은데 길을 잘못 들었네요..." 하면서 갈림길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참 좋은 곳에 사신다고 하니, 근처에 버스 정거장도 있고 가게도 있어서 편리하다며 원주민다운 대답을 하십니다.


세잔 작업실에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관심이 많을 줄은 몰랐어요. 막상 도착해 보니 예약이 꽉 차 있더군요. 개별 관람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큐레이터가 프랑스어로 설명하는 시간대를 기다려 겨우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런 낭패가 있나. 아무리 작업실이라도 그의 그림들을 모아놓은 전시실이 따로 있겠거니, 내 좋을 대로 생각했죠. 그런데 겨우 열두어 평 남짓한 화가의 진짜 작업실이었어요. 물론 세잔이 사용한 이젤이며 팔레트, 그가 쓰던 모자와 짚고 다녔다는 지팡이, 그가 모았다는 소품 등등 볼 것이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작은 작업실의 벤치에 앉아 오로지 프랑스 큐레이터의 설명만 들으며 30분을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했습니다. 외국어의 바다에 낚싯대를 걸쳐놓고 하염없이 앉아서 문장을 낚았습니다. 뭐, 거의 못 잡았지요.


드디어 작업실에서 풀려나 언덕길을 내려옵니다:

- 난 큐레이터가 하는 말을 십 분의 일도 못 알아들었어.

- 당신은 그거라도 알아들었지. 내가 왜 벤치를 꽉 붙들고 있었는지 알어?

- 왜?

- 뒤로 넘어갈까 봐. 졸려 죽는 줄 알았네.

- 흐흐흐...... 근데 파스퇴르가 누구야? 저기 저 건물이 파스퇴르 요양원이래. 거리명도 파스퇴르던데.

- 뭐이? 파스퇴르를 몰라?

- 요구르트 만든 사람인가?

- 이 사람아, 파스퇴르를 모르는 건 세잔을 모르는 거랑 똑같거든.

- ......

- 면역학의 아버지 아니냐! 전염병 예방 백신을 만든 게 그 사람이야.

- 사람들을 엄청나게 살렸네.

- 그렇지.

- 근데 세잔하고 파스퇴르 중에 누가 더 인류에 기여했을까?

- 둘 다 기여했겠지. 각자 다른 의미로.


발자크의 소설에도 사람을 살리는 과학도가 한 명 나옵니다. 의대생 비앙숑입니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인물들은 사실적이기는 하나 상당히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200년의 시간적 거리와 문화적 이질감이 큰 이유일 테지요.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 데려다 놓아도 잘 어울려 들어갈 것 같은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방금 말한 비앙숑입니다. 아주 현실감이 있는 인물이에요.


야심가 청년 외젠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의 첫째 딸 아나스타지 백작부인에게 차이고 이번에는 둘째 딸 뉘싱겐 부인의 사랑을 얻고 싶어서 몸이 달았습니다. 범죄자 보트랭의 제안 '너를 부자로 만들어주겠어'도 그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는 목표가 확실합니다. 성공하고 싶다! 그 이유는 고향에서 고생하는 가족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본인의 야망 때문입니다.


목표로 가는 길이 그의 앞에 열려있습니다. 바르지만 좁고 느린 길, 질러가는 고속도로 그리고 어둠의 지름길입니다. 비앙숑은 종종 하숙집으로 식사를 하러 오는 라스티냐크의 친구지요. 라스티냐크는 과대망상적 생각에 빠져 신열에 들뜬 사람처럼 정신없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비앙숑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야?
- 나쁜 생각 때문에 괴로워서.
- 어떤 나쁜 생각?
- 루소 읽어봤어?... 루소가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 부분 기억나? 만약 당신이 파리에서 생각만으로 중국의 늙은 관리를 죽이고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이야. 넌 어떻게 할래?
- 그 중국 관리는 늙은 사람이야? 아니지, 쳇! 젊었건 늙었건, 건강하건 아프건, 그런 일은 절대 하면 안 되지.
- 넌 참 훌륭한 친구야, 비앙숑. 하지만 만약 네가 어떤 여자를 사랑해서 영혼을 뒤집어 보여 줄 정도로 빠져있다면, 그래서 옷이며 마차며 여자가 원하는 걸 다 해주기 위해 돈이 많이 필요하다면?
- 너 미쳤구나.
- 그래, 미쳤어... 난 천사 같은 누이동생이 둘 있는데, 걔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부터 5년 안에 누이들의 지참금 20만 프랑을 어디서 구하겠어? 인생에는 말이야, 크게 한 번 걸어야 할 상황이 있는 법이야. 푼돈이나 버느라고 자기 행복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그런 상황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산다는 건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지요. 유혹도 많습니다. 선택이 언제나 옳았다고도 할 수 없고 유혹에 넘어갈 때도 부지기수입니다. 어쨌든 어리석은 선택과 회피와 타협과 자기기만의 가시덤불숲을 하찮은 양심의 칼로 그럭저럭 쳐내가며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내 가치관이 확고하지 않을 때, 유혹이 너무 강렬할 때, 양심의 칼은 그저 종이로 오려낸 장난감 칼만도 못하지 않던가요? 자, 우리의 비앙숑은 친구에게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난 말이야, 바보 같지만 시골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받아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이 행복해. 사람의 애정이란 무한한 반경 속에서나 가장 작은 원 안에서나 똑같이 가득 채워지는 거라고. 나폴레옹이라고 저녁 식사를 두 번 했겠어... 우리의 행복이란 항상 두 발과 후두부 사이의 문제야. 한 달에 백만 프랑이 들건 백 루이가 들건, 우리 마음속에서 내재적으로 인지되는 정도는 똑같아. 난 아까 말한 그 중국인을 살리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겠어.”


비앙숑은 고리오 영감이 죽어갈 때 최선을 다해 그를 돌봐줍니다. 여기에는 의대생으로서의 직업의식이 크게 작용합니다. 고리오 영감의 상태는 그의 의학적 호기심을 자극했죠. 영감은 아주 훌륭한 연구거리니까요.


“이런 종류의 병에서는 모든 게 아주 이상해! 만약 여기가 터지면......” 비앙숑은 환자의 후두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상한 현상들이 발생하지. 뇌가 몇몇 기능을 회복해서 사망 시점이 더 늦춰져. 장액이 뇌에서 방향을 바꿔서 다른 경로로 흐를 수도 있어..."


하지만 의대생이 아니었더라도 비앙숑은 영감을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고리오 영감 앞에서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말합니다.


“친구, 난 방금 절규하고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어. 하느님은 있어! 오, 그래, 하느님은 있어.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놓았어. 만약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무의미해... 난 지금 심장이랑 위장이 조여서 눈물도 안 나와.”


소설가는 자신의 조각들을 여러 인물들에게 투영합니다. 라스티냐크에도 얼마간, 비앙숑에도 얼마간, 발자크가 들어있을 겁니다. 실제로 발자크는 가톨릭 신자였다고 해요. 하지만 비앙숑처럼 단순한 인간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비앙숑의 특징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다는 것. 혹은 담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마치 맑은 물속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단번에 낚아챌 수 있는 힘과 비슷합니다. 그러려면 물은 맑아야 하고, 손은 민첩하고 강해야 하며, 눈은 정확해야 합니다.


"평범한 생활이 난 행복해."라고 말하는 비앙숑의 소박한 말이, 죽어가는 노인이 불쌍해서 '심장과 위장이 조'이는 그의 인간적인 마음이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그 감동으로 마음이 선량해집니다. 아름다운 풍경도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그 감동으로 마음이 선량해집니다. 그러니 인간다움과 아름다움과 감동과 선량함은 같은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닐까요.







이전 09화삽화 8 : 마르세유의 고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