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4 : 정의의 깃발을 든 악당

발자크의 소설과 함께 여행하다

by 스프링버드


투르에서 기차를 타고 보르도로 향합니다. 보르도로 가는 길은 내내 넓은 구릉지대였습니다. 발자크는 와인 애호가였고 와이너리를 소유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내가 묵은 보르도의 숙소도 큰 와이너리입니다. 오로지 포도밭만 보이는 곳, 눈이 닿는 저 끝에서 이 끝까지 모두가 포도밭인 곳, 해가 포도밭 위로 뜨고 그 밑으로 지는 곳.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풍경이 주는 효과는 오래가지 않네요. 아름다운데 뭔가 미진합니다. 초록색 능선으로 굽이치는 그 광경이 단조롭고 권태롭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슬렁슬렁 포도밭 안으로 걸어 들어가 봅니다. 그제야 밭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랑조랑 매달린 포도송이들도 보였습니다. 예쁜 것들! 너희들이 거기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말을 겁니다. 이 기특하고 향기로운 것들을 누군가 키워내고 있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하니 헛헛해지려던 마음이 다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발자크는 글을 쓰느라 바빠서 포도를 직접 키웠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포도나무보다는 포도주가 좋았을 것 같고, 포도나무의 푸른 잎사귀와 연둣빛 사랑스러운 알맹이보다는 사람에게 훨씬 더 깊이 경도되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오해일까요?


<고리오 영감>은 고리오 영감과 두 딸 그리고 앞서 언급한 외젠 라스티냐크 외에도 두세 명의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 있는데요. 그중 한 명이 보트랭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보트랭도 보케 부인의 하숙집에 기거하는 하숙인입니다. 그는 어딘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그는 남들로부터 "거참 화통한 사람이지!"라는 평을 들을 만한 인물이었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가슴이 잘 발달하고, 근육이 한눈에 드러나고, 두 손은 두툼하고 넓적하며, 손가락 마디 부분에는 타는 듯한 붉은색 털이 복슬복슬 나 있는 것이 눈에 확 띄는 사람이었다. 나이보다 이르게 주름이 여기저기 잡힌 얼굴로 보아서는 냉혹한 사람일 것 같지만 유연하고 싹싹한 태도를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낮은 목소리는 걸걸한 쾌활함과 잘 어울려 전혀 밉지가 않았다. 그는 친절하고 잘 웃었다.


발자크가 1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보트랭의 모습입니다. 발자크의 밀당은 절묘합니다. 알려줄 듯 말 듯, 보트랭이라는 사람에 관해 궁금증을 최대한 부풀려놓고 나서 소설의 제3장, 즉 이야기가 절반이 지난 지점에서 그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3장은 보트랭이 단연코 주인공입니다.


호탕하고 친절하며 호인이지만 왠지 두려움을 주는 보트랭의 정체는 뭘까요? 3장에 오기 전까지 발자크는 사소한 대화와 행동으로 이 사람을 한 겹 한 겹 채색해 나갑니다. 그는 어딘가 위협적이고, 재밌기도 하며, 호의적이지만, 냉소적이기도 하고, 주변의 일들을 모조리 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스티냐크는 이런 보트랭에 대해 거부감을 느낍니다. 보트랭은 반대로 라스티냐크를 아끼는 것 같은데 말이죠.


고리오 영감이 마지막까지 소중히 지켰던 은식기를 팔아서 큰딸의 빚을 갚아준 일을 놓고 하숙인들 사이에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장면에서 보트랭은 노골적으로 파리라는 사회를 비판합니다.


외젠이 역겨운 듯이 말했다. "아니, 그렇다면 당신의 파리는 시궁창이네요."
"그것도 아주 웃기는 시궁창이지. 거기서 마차를 타고 다니며 진흙을 묻히는 건 선남선녀, 걸어 다니며 진흙을 묻히는 건 건달들이지. 불행히도 거기서 뭐라도 하나 훔쳤다가는 법원 광장에 세워져 만인의 구경거리가 되는 거야. 1백만 프랑을 훔치면 파리의 살롱에서 미덕 있는 자로 공인받게 되고, 경찰 법원에 3천만 프랑을 내면 그런 도덕을 견지할 수 있다네. 웃기지!" 보트랭이 말했다.


보트랭은 차갑고 공격적인 모습을 호탕하고 친절한 말과 행동에 섞어서 도무지 정확한 속내를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자기 자신을 마치 잘 길들인 말처럼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지요. 그러나 그가 본색을 드러내는 때가 옵니다.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는 자신을 드려냅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젊은 영혼, 대단한 야심가로서의 싹을 막 틔우기 시작한 청년 라스티냐크 앞에서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숙집에는 거부인 아버지를 둔 아가씨가 기거하고 있습니다. 빅토린 타유페르라는 이름의 이 아가씨는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버림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무시하고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줍니다. 하지만 그녀는 신앙심이 깊었고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해마다 아버지 집을 찾아가지만 아버지는 모질게 딸을 거부하지요.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제안합니다. 그녀의 오빠를 죽여서 빅토린이 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게 해 줄 테니 그녀와 결혼하라고 말입니다.


빅토린의 아버지 타유페르는 대혁명 기간에 친구 한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있는 늙은 폭력배라네. 그는 사람들의 평판쯤은 상관도 안 하는 호걸이지. 그는 은행가이자, 자신과 몇몇 사람의 주주로 구성된 타유페르 주식회사의 대표야. 아들이 하나 있는데 딸 빅토린은 제쳐 놓고 그 아들에게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해. 나는 그런 정의롭지 못한 일이 싫어. 나는 마치 돈키호테 같아서 강자에 대항해 약자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즐긴다네. 만약 그의 아들을 앗아 가는 게 하느님 뜻이라면, 타유페르는 딸을 다시 찾게 될 거야. 그는 어쨌든 자기 유산의 상속자를 원하거든.


마치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악마 같지요. 그런데 이 말을 자세히 읽어보면 좀 이상합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가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이좋게 붙어있습니다. 폭력과 살인, 정의와 약자의 이익 수호와 하느님의 뜻이 말이지요. 며칠 전에 본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나쁜 의도로 좋은 일을 한다는 말을 믿지 말라.
그 일을 한 이유, 그것이 일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좋은 의도로 나쁜 일을 한다고 해야 하나요? 청년은 단호히 그 제안을 거절하지만 보트랭은 교묘한 방법으로 처녀의 오빠를 죽이고 빅토린은 거액의 유산 상속자가 됩니다. 보트랭의 정체는 3장에서 마침내 드러납니다.


3장의 부제는 <<불사신>>. 보트랭의 별명입니다. 그는 탈옥수로서 실명은 자크 콜랭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일종의 검은 자금관리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복역수들의 재산 관리, 탈옥하는 죄수들의 자금 마련, 죄수들의 유산 처리 등을 하지요. 그는 거액의 돈을 굴리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그를 잡으려고 함정을 파는데, 아무래도 경찰의 의도가 의심쩍습니다. 탈옥수보다는 탈옥수의 검은돈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지요.


보트랭은 왜 라스티냐크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를 도우려고 할까요? 소설에서는 언급이 없지만, 내 눈에 보트랭은 동물적입니다. 그는 젊음, 젊음의 생기, 생명력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나란히 앉아있는 라스티냐크와 빅토린을 바라보며 "젊음이란 참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라스티냐크에게 감동받는 이유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준수한 외모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듯 얘기합니다. 그는 본능의 소리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본능은 때로 선하고 때로 악합니다. 본능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순수하기도 하지만 위험하고 악마적이기도 하지요.


보트랭의 이미지 위로 마리오 푸조가 쓴 <대부>의 돈 콜레오네의 이미지가 겹쳐집니다. 영화 <대부> 첫 장면에서 한 남자가 돈 콜레오네의 딸 결혼식에 그를 찾아와 말합니다. 딸의 남자 친구가 딸을 폭행해서 턱뼈가 부러졌는데 경찰이 겨우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요. 남자는 돈 콜레오네에게 딸의 복수를 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대부는 남자에게 돈 대신 존경을 요구하고 남자는 조직의 가족이 됩니다.


돈 콜레오네가 이끄는 범죄집단 안에서도 정의가 있습니다. 그 정의는 그들만의 정의로, 그들만의 법에 따라 규정됩니다. 사회와 국가 단위에서도 정의가 있습니다. 이 정의는 좀 더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 단위에서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개인은 정의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호소할 대상을 찾습니다. 그때 내가 정의의 실행자가 되겠노라고 나서는 이가 소설 속 보트랭이며 영화 속 돈 콜레오네입니다. 관념적으로 말하자면, 파우스트를 유혹한 악마도 이와 같은 정의의 실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요.


발자크가 활동하던 당시, 프랑스 사회는 혼란했습니다. 보트랭의 말대로, 파리는 시궁창 같았는지도 모릅니다. 발자크는 보트랭의 입을 빌어 신랄하게 파리 사회를 비난합니다.


원칙이란 없고, 다만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을 뿐. 법칙이란 없고, 다만 상황들이 있을 뿐이야. 뛰어난 사람은 사건과 상황에 착착 맞추어 처신하면서 그것들을 주도해 간다네... 하룻밤에 순진한 사람으로부터 전 재산의 반을 후려내는 말끔한 신사에게 징역 2개월을 선고하면서, 형편이 너무도 어려워져서 1천 프랑짜리 한 장을 훔친 불쌍한 녀석은 어째서 징역살이를 해야 하지? 그것이 우리 사회의 이른바 법이라네. 법 조항이란 모조리 말도 안 되는 결론으로 귀결된다니까... 인간을 경멸하게. 그리고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틈새들을 잘 보게나.



어쩐지 요즘의 한국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일 같지 않나요? 보트랭은 신을 믿습니다. "올곧은 사람의 기원은 빈말이 아니라 틀림없이 행복을 가져다준답니다. 하느님이 듣고 계세요." 신앙심 깊은 하숙인 쿠튀르 부인은 이 말을 듣고 감동합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분명 범죄자인데 사회의 부패가 신의 섭리를 바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겁니다. 보트랭은 경찰에 잡혀가면서 구경꾼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우리보다 나은가? 우리가 어깨에 진 파렴치함이 당신들 마음속에 있는 파렴치함보다는 덜하다고. 타락한 사회의 무기력한 구성원들인 당신들 말이야. 당신들 중 가장 낫다는 인간도 내게는 저항하지 못했어.


그리고 자기 가슴을 두드리면서 말합니다. "난 여기에 착한 마음이 있다."고요. 착한 마음이라…


선량함과 신의 섭리와 사회 정의가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사회를 우리는 꿈꿉니다. 역사가 발전해 온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은데, 그 발전이라는 것이, 내가 묵었던 투르 숙소의 바투고 비좁은 나선형 계단 같아서 한없는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사회의 혼란기에 정의의 대변자라고 나서는 보트랭에게 마음이 슬쩍 기우는 거예요. 그러다가 문득 그 인물의 매력 뒤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봅니다. 악마적인 그림자입니다. 그는 자신을 돈키호테라고 하지만, 돈키호테는 거기서 언급될 인물이 절대 아니지요. 그는 미쳤지만, 미쳤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진짜 정의를 보는 인물이거든요.

사회가 부패해서 억울하고 원통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트랭을, 돈 콜리오네를 찾아갈까요? 파우스트처럼 악마에게 우리의 영혼을 팔까요? 유혹은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부패할수록, 비례적으로 강해집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인 것만 같습니다. 유혹의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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