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3 : 우리 안의 광기 혹은 신비한 동력

발자크의 소설과 함께 여행하다

by 스프링버드


발자크의 고향인 투르에 대해서 사전 조사를 거의 하지 않았던 탓에 발자크의 박물관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투르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도대체 무슨. 근거였을까요. 발자크 박물관은 투르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사셰성에 있습니다. 그는 사세성에서 글을 쓰기도 했다고 해요. 성에는 그의 자취가 아주 잘 보존돼 있다고 하네요. 아쉽습니다. 그러고 보니 투르 시내에서 멀리 않은 곳에 있는 오노레 드 발작 공원도 놓쳤습니다. 이건 마치 과거의 불문학사 수업의 연장 같습니다. F를 겨우 면한 부끄러운 성적표 말이지요.


어쨌거나 투르 시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발자크의 흔적은 거리 이름과 투르 미술관에 전시된 조각상과 초상화 두 점이 전부인 듯싶습니다. 조각상은 로뎅의 작품입니다.


Auguste Rodin, 1897 / E. Godard (청동 주조), 1985



로뎅은 풀 사이즈 석고 조각상을 제작했는데, 로뎅이 사망하고 22년 뒤에 청동으로 주조됐습니다. 투르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12개 원본 중 하나라고 적혀있네요. 조각상은 좀 기괴합니다. 온몸을 망토로 감싸고 있으며 짧은 목과 헝클어진 머리, 넓고 단단한 상체가 특징적입니다. 조각상 옆에 걸린 그의 초상화를 보면 로뎅의 조각상은 발자크의 실제 모습과 많이 달라 보입니다.




Louis Boulanger, 1836



로뎅은 발자크의 겉모습보다 내면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 것 같습니다. 작품 의뢰를 받은 뒤 그는 발자크의 작품을 읽고 그의 고향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발자크라는 인간을 철저히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를 이해하려고 그가 입었던 옷과 비슷한 옷을 지어 입기까지 했다는군요. 로뎅 자신이 강렬한 정신의 소유자였기에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깊이 매료됐던 걸까요.


로뎅은 애초에 약속한 제작 기간 18개월을 훨씬 넘겨 7년이 걸려서야 조각상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던 작가협회에서는 조각상이 발자크의 모습을 과하게 왜곡했다는 이유로 작품 인수를 거부했고, 로뎅은 그것을 구입하겠다는 사람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기 집에 보관합니다. 발자크에게 깊이 몰입한 사람이 보였을만한 행동입니다.


발자크의 인생은 파란만장합니다. 어머니에게서 사랑받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기숙학교에서 6년간 단 한 번도 집에 가지 못했으며, <인간희극>으로 성공하기 전까지 초기 작품들은 모조리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발자크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쓰는 한편으로, 신문에 기사를 투고하고, 정기간행물을 발간했으며, 문인협회를 설립하고,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을 사랑했지요. 사업과 사랑으로 그는 많은 돈을 썼고 사치한 삶을 즐겼습니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부채를 지고 항상 채권자들에게 쫓겨 다니는 생활을 했다지요.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그는 작품을 써야 했습니다. 하루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시며 광적으로 작품을 썼던 그의 사인이 심장 발작이라고 하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밀어붙였던 걸까. 지나친 사치, 사랑하는 여인을 얻고자 하는 열정, 끓어오르는 창작열, 혹은 사업에 대한 과한 애착... 심리학자들은 어머니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결핍감이 원인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어떻게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앞서의 글에서 나는 두 가지 동력을 언급했습니다. 작가적 야심과 빚. 그런데 단순히 그렇게 정리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로뎅이 발자크에게 깊이 몰입했던 것은 두 사람의 내면에 유사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와 닮은 것을 저이에게서 발견한 것이지요. 나도 설명할 수 없는 것, 나를 밀어붙이는 것, 이성을 잃게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무엇' 말입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로뎅이나 발자크 같은 천재들에게는 예술로, 사업가들에게는 새로운 사업 구상으로, 무용수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몸짓으로 구체화될 뿐, 본질은 같지 않을까요.


거부할 수 없는 광기, 내 안에서 뚫고 올라오는 그 무엇이 그 사람을 밀어붙이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평범한 나도 우연히 들은 노래에, 오묘한 색깔의 그릇에, 어떤 소설에, 혹은 사소한 장래 계획에 한동안 잠을 설치며 홀려 지낼 때가 있으니까요. 결국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의 내면에는 이성으로 설명 안 되는 신비한 동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참으로 다채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지요.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 ’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노라’고 대답하는 수밖에요. 어쩌겠어요. 누구는 그러더군요. 어머니가 그렇게 낳아놓지 않으셨냐고. 아주 냉정한 말이죠.


이제 투르를 떠납니다. 투르에 머무는 나흘 동안 <고리오 영감>을 끝내기로 했는데, 다 못 읽었습니다. 총 네 장 중 마지막 한 장이 남았습니다. 계획은 수정하라고 있는 것. 여행이 끝나기 전에는 다 읽을 수 있겠지요. 인천 공항으로 돌아가는 비행시간이 열한 시간이나 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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