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2 : 강물은 무심히 흐른다

발자크의 소설과 함께 여행하다

by 스프링버드


투르는 작은 도시입니다. 예전에는 지리적으로 꽤 중요한 도시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세력이 약해진 느낌입니다. 도시의 지그마한 크기나 유구한 역사, 예스런 분위기가 왠지 우리나라의 공주를 연상시킵니다. 더구나 공주에 금강이 흐르는 것처럼 이곳에도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이라는 루아르 강입니다.




내가 머물고 있던 숙소는 강과 인접해 있습니다. 강폭은 한강의 1/3 정도 될까요. 도시의 나이만큼 오래된 다리를 천천히 걷습니다. 그 다리 위를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합니다. 강물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부드럽게 흘러가는데 의외로 유속은 꽤 빠르네요. 강변에는 포플러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크고 작은 나무들도 더불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림 같습니다. 풍부한 수량 덕분에 투르 주변은 땅이 기름져 풍요롭습니다. 프랑스는 의외로 농업 강국입니다. 프랑스에는 세련된 도시인들만 살 것 같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지요.


투르에서 보르도로 그리고 다시 마르세유로, 프랑스의 중부와 남부 지역을 여행하면서 본 프랑스의 땅은 평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축복받은 땅이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부러웠습니다, 그들의 풍요로움이 말이지요. 포도밭이며 옥수수밭, 수확이 끝난 밀밭, 해바라기밭, 올리브 과수원이 부드러운 구릉 지대를 온통 덮으며 끝도 없이 굽이 굽이 펼쳐져 있는 풍경은 경이롭고 낭만적이었습니다.

<고리오 영감>의 시대적 배경은 1819년. 7월 혁명이 있기 10년 전입니다. 사회는 왕정에서 부르주아 사회로 막 전환되려는 시점이었지요. 사회 저변에서 변혁의 힘이 비등점을 향해 폭발할 듯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계급의 형성과 맞물려 그들의 주거지와 활동영역도 새롭게 구분이 되어서, 파리는 센 강을 중심으로 왼쪽 강변은 귀족의 영역이었고 오른쪽 강변은 급속도로 부상하고 있던 금융 부르주아 계층의 영역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중요한 인물인 외젠 라스티냐크는 프랑스 남부에서 올라온 가난한 시골 청년입니다. 농사를 짓는 그의 가족들에게 그는 가족의 앞날을 책임져줄 희망이고 버팀목입니다. 청년은 그들의 희생을 딛고 파리로 상경했습니다. 우리도 장남의 성공을 위해 온 가족이 희생했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요.


라스티냐크의 가족들은 보잘것없는 소출로 빠듯하게 허리띠를 졸라 가며 살아'갑니다. 그들이 마시는 음료는 '포도주 압착기의 찌꺼기로 만든' 것이고요. 하지만 청년은 파리 상류층의 삶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계획이 하찮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학에서 성실하게 법률을 공부해서 고만고만한 직업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의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의 내부에는 자신도 몰랐던 야심가가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파리 여인들의 화려함과 사치는 이 야심가에게 너무나 유혹적이었습니다.


파리사교계는 인맥을 형성하고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화려한 정글 같다고 할까요. 그 시대의 파리 사회는 이상한 사회였어요.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요. 결국 라스티냐크는 사교계의 총아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파리 사교계로 진출해서 자기를 보호하고 성공시켜 줄 상류층 여인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한때 궁정에 드나들었던 고모의 소개로 보세앙 자작부인을 소개받습니다. 자신을 꾸미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지요. 청년은 가난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에게 내어 주실 세 번째 젖가슴이 있는지 한번 보세요. 저는 지금 빨리 돈을 마련해야만 하는 처지랍니다. 1천2백 프랑이 필요해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돈이 있어야 합니다... 사교계에 진출해야 하는데 깨끗한 장갑을 살 돈도 한 푼 없어요...


청년은 부끄러웠습니다. 어머니와 두 누이가 자신을 위해서 고결한 마음으로 희생해 줄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어머니는 답장을 보냅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부탁한 것을 보낸다. 이 돈을 잘 쓰거라. 설령 네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제 다시 한번 이런 큰돈을 아버지 몰래 구할 수는 없을 거란다...


어머니는 법률가가 되려고 떠난 아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합니다. 어머니이기 때문에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녀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어머니의 희생을 딛고 올라서는 아들을 보는 것은 괴롭습니다. 기꺼이 등을 내어주는 어머니일지라도요. 아니, 어머니가 기꺼이 등을 내어주기에 글을 읽는 내 마음은 더 불편했습니다.



자, 사랑하는 내 아들, 앞으로 걸어가거라... 오! 그래 성공하거라, 내 아들 외젠. 너로 인해 난 너무도 생생한 고통을 알게 되었고 두 번 다시 이 고통을 견디긴 힘들겠다. 자식에게 줄 재산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도 보니, 가난이 무언지 알겠더구나...



강물은 무심히 흐릅니다. 파리의 센 강도, 투르의 루아르 강도 인간사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연안이 귀족들의 영역이든 부르주아들의 영역이든 강물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자신에게서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포도주를 마시든 포도주 찌꺼기 음료수를 마시든 강물은 그저 무심합니다.


아름다운 루아르 강을 바라보며,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 사회는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얼마나 복잡하고 기묘한가를 생각합니다. 강물은 촉촉이 땅을 적시며 그저 유장하게 흐를 뿐입니다.


강변의 포플러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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