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1 : 투르의 숙소와 보케부인의 하숙집

발자크의 소설과 함께 여행하다

by 스프링버드

좁은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열한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일은 참 고생스러웠습니다. 좁은 기내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나눠주는 승무원들을 보며 처음으로 '힘든 직업'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창에 머리를 기대고 <고리오 영감>의 속표지를 넘깁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제1장
하숙집

처녀 시절 성이 드 콩플랑인 보케 부인은 늙수그레한 여인으로, 40년째 파리의 라탱 구역과 생마르소 동네 사이의 뇌브생트주느비에브 길에서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다...


첫 문장이 뻑뻑합니다. 드 콩플랑, 라탱 , 생마르소라는 이름이 고구마처럼 목구멍을 턱 막습니다. 뇌브생트주느비에브는 또 어떻고요. 따라 읽기도 어렵습니다. 그 당시 독자들이라면 이 대목을 읽으며 동네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었을 겁니다. 아, 그 동네, 그러저러한 하층민이 사는 허름한 지역, 하고요. 하지만 파리가 프랑스 수도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이방인에게 이 이름들은 아무 정보도 주지 못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2023년,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819년이니, 지금부터 대략 200년 전의 파리를 상상하는 일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영화라면 아무 문제 되지 않을 대목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문제가 됩니다. 아마도 프랑스 사람이 김만중의 <구운몽> 첫 장을 읽는다면 나와 비슷한 느낌을 느낄 겁니다.


어쨌든 뒷 문장들을 계속 밀고 나가봅니다. 하숙집은 이 소설의 주요 배경입니다. 과장하자면, 집 자체가 거의 인물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리의 누추한 동네에 위치한 누추한 하숙집. 그곳의 하숙집 주인과 하숙인들 그리고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려고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 합쳐서 열여덟 명 전후입니다. 이들 모두 서민이며 그중에서도 하층에 속합니다. 우리의 주인공인 고리오 영감은 이 집에 4년째 기거하는 최고참 하숙인이자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롱받는 불쌍한 천덕꾸러기입니다. 왕년에는 꽤 잘 나간 국수 제조업자였지만 지금은 비참한 가난뱅이입니다. 그에게는 그럴 사정이 있습니다. 두 딸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었기 때문이지요.


발자크는 1장의 상당 부분을 작품의 중요한 배경인 하숙집을 묘사하고 주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데 할애합니다. 그는 <인간 희극>이라는 소설 연작에 '인물들의 재등장' 기법을 활용하는데, 이것은 한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을 다른 작품들에 다시 등장시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작품들이 서로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발자크는 야심차고 원대한 계획 하에 120편에 이르는 연작소설을 써낼 생각이었는데 다 쓰지는 못했던 모양이에요.


보케 부인의 하숙집에서 하숙하는 젊은 청년 외젠 라스티나크도 발자크가 다른 작품들 속에 재등장시키는 기본 인물입니다. 가난한 농촌 청년으로 원래는 파리에서 대학을 다니며 법률가가 되어 안정된 삶을 꾸릴 계획이었지만, 그는 야심가입니다. 그래서 파리라는 정글에서 먹이사슬의 꼭대기까지 치고 올라갈 꿈을 꿉니다. 이 소설은 고리오 영감의 비극적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라스티냐크의 성장소설이기도 합니다.


1장의 중요한 스토리 라인은 고리오 영감의 과거사가 밝혀지고, 라스티나크가 파리 상류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문을 여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노인의 추락과 청년의 비상이 크게 곡선을 그리며 엇갈리는 모습을 느린 속도로 목격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듯이 말이지요. 그것은 나의 추락이 아니어서 덜 가슴 아프고 나의 도약이 아니어서 덜 긴장됩니다. 그저 소설 속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어서,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합니다. 다행히 청년은 노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도우려 합니다.


첫 문장에 대해 불평이 많았지만, 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며 절로 감탄이 나오는 대목이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그의 관찰력은 대단하고 심리분석은 놀랍습니다. 무엇보다 하숙집과 하숙집의 주인 보케 부인을 동일시하는 대목은 절묘합니다.


요컨대 보케 부인이라는 사람 전체가 이 하숙집을 설명해 준다. 마치 이 하숙집이 그녀라는 인간을 의미하듯 말이다. 간수 없는 감옥이 있을 수 없듯이, 보케 부인 없는 이 하숙집은 상상할 수 없다. 이 작달막한 여인의 희뿌옇고 살진 몸집은 이러한 삶의 산물이었다. 마치 티푸스가 병원에서 뿝어져 나오는 나쁜 공기의 결과인 것처럼 말이다. 털실로 뜬 그녀의 속치마는 낡은 드레스 천으로 지은 겉치마 길이보다 길고 도마뱀처럼 터진 천의 틈새로 속이 비어져 나오는데, 그 치마가 이 응접실, 식당, 뜰을 다 요약하며 부엌을 예고하고 이 집 하숙인들을 미리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녀가 여기 있으면, 이 장관은 완벽하다.



긴긴 비행이 끝나고 마침내 파리드골 공항에 내립니다. 여기에서 택시를 타고 파리의 몽파르나스역으로 이동해 투르행 기차를 탑니다. 투르는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24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도시입니다. 인터넷상의 관광 정보를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성과 중세 유적이 많은 도시라고 하는데 과연 그렇더군요. 주변에 성이 많아서 차나 열차로 한나절 안에 찾아갈 수 있는 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세에 지어진 건물들도 많고요.



투르전경.JPG



제가 묵은 숙소도 15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집주인이 말하더군요. 보케 부인의 하숙집 같기야 하겠습니까만, 나는 이 오래된 집이 왠지 무서웠습니다. 그 두려움은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 힘듭니다.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너무나 찬란해서일까요,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맞이하는 어두운 복도는 바깥의 밝음과 대조되어 더 짙었습니다.


좁고 조용한 복도, 나선형 계단, 잘 돌아가지 않는 방문 열쇠.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 복도의 정적과 어두움이 나를 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은 비이성적인 초조함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런 두려움은 점차 사라지긴 했습니다만.


15세기의 건물에서 느꼈던 막연하면서도 실재했던 그 두려움은 단지 공간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혹시 시간이 주는 무게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시간의 중압감이 나에게는 두려움으로 오인되어 느껴졌는지도 모르지요. 일종의 착각처럼 말이지요. 내가 잡았던 그 문고리를 수백 년 이상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또한 잡았을 겁니다. 그들이 들이마시고 내뱉은 숨결은 벽에 천정에 문에 스며들었을 것이며, 그들이 나누었을 대화와 그들의 웃음과 눈물과 한숨 또한 그 공간을 맴돌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집에서 사랑을 나누고 아이들을 키워내고 다툼을 벌이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다채로운 삶의 드라마가 비단 보케 부인의 하숙집이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집안에서 펼쳐져왔고 펼쳐지고 있으며 펼쳐질 것입니다. 결국 본질적인 의미에서 이 세상 모든 집은 하숙집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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