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7 : 마르세유

발자크의 소설과 함께 여행하다

by 스프링버드


보르도에서 마르세유까지는 차로 6시간 반이 걸립니다. 프랑스는 오각형 모양인데, 이 경로는 말하자면 대서양 변에 위치한 한 점에서 지중해 변에 위치한 한 점까지 이은 선에 해당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대략 400킬로미터인데 보르도에서 마르세유까지는 650킬로미터쯤 되네요. 국토의 크기면에서 나는 자꾸만 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광활한 만주벌판을 말을 타고 달렸을 우리의 먼 조상들을 떠올리면 괜히 안타깝고 억울합니다.


하여간 차로 달리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 비행기를 타기로 했습니다. 마르세유공항의 정확한 명칭은 마르세유프로방스공항입니다. 파리의 삭막하고 큰 드골공항에 비해 훨씬 정감이 가는 공항입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서, 공항 이름에 걸맞게 마르세유와 프로방스 지방을 둘러보기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마르세유를 여러 곳 둘러보지는 않았습니다. 마르세유 항구와 그 주변 골목들 그리고 노트르담들라가르드 성당만 구경했어요. 항구는 관광객들로 붐볐고, 달걀도 익을 정도로 뜨거운 땡볕이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마르세유 항구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로 역사가 기원전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네요. 한창 번성했을 때는 배를 1000척 이상 수용했을 정도였다는데 세계 제2차 대전 때 항구가 거의 완파되다시피 했고 이제는 상업 항구로 쓰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항구 바로 위로 전철역이 나있고, 길에는 버스가, 바다로는 페리가 다닙니다. 항구에는 요트가 많이 정박돼 있고요.


그러지 않아도 산뜻하고 아름다운 항구는 독특한 조형물 덕분에 한층 근사해 보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는 그 조형물은 큰 그늘을 만들어서 햇볕을 막아주는 실용적인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조형물의 이름도 '그늘막'입니다.


그늘막.JPG



마르세유는 사랑스럽습니다. 마르세유는 활기가 넘칩니다. 마르세유는 눈과 입이 즐겁습니다… 항구를 따라 보행로가 길게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 어부들이 좌판을 차려놓고 한국사람에게도 익숙한 생선들을 팔고 있습니다. 조개도 있네요. 문어도 보이고요.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더 푸릅니다. 요트 돛대들이 바다의 수평선과 이루는 수직과 수평의 대비도 멋집니다. 항구를 따라 늘어선 식당들의 메뉴를 구경하는 일도 재밌습니다. 홍합찜을 먹고 상큼한 이탈리안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합니다.


항구 한쪽, 유럽도시에서는 작은 공간도 종종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이니 이곳도 광장이라고 불릴 만한데, 대략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비장한 얼굴로 낯선 노래를 부릅니다. 다가가서 보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사람들입니다. 노래는 아마도 우크라이나 국가인 듯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그랬듯이요. 그들에게는 형제자매가 죽고 고향이 파괴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즐기고 사랑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비극과 기쁨의 부조화입니다.


한 식당의 노천 탁자에서 홍합찜을 놓고 짜네, 안 싱싱하네, 불평을 하며 먹고 있는 나와 남편 뒤에서는 노숙인 한 명이 쓰러지듯 앉아있습니다. 그이가 데리고 다니는 개일까요, 피부병으로 털이 듬성듬성 빠진 개가 목걸이도 없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관광객인 듯싶은 여자 한 명이 개를 쓰다듬으며 물을 줍니다. 여기에서도 또 하나의 조화롭지 못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먹는 사람 1로 말이지요.


같은 길을 세 번이나 지나갈 일이 생겨 한 청년을 세 번 연속 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은 자는 모습으로, 또 한 번은 깨어있는 모습으로요. 건장하고 잘 생긴 청년입니다. 행색은 비교적 깨끗하지만 어쩐지 며칠 이상 노숙을 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깔끔한 식당 입구 한쪽에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쨍쨍한 햇볕 아래서 뜨거운 줄도 모르고, 청년은 곯아떨어져 자고 있습니다. 며칠 전 보르도의 도심 후미진 뒷길에서 우연히 본 주사기와 피 묻은 솜이 떠오릅니다. 세 번째 지나가게 되었을 때, 청년은 깨어있었지만 일어설 기미는 없어 보였습니다. 항구 주변에는 그이 같은 젊은이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활기차게 대화를 하며 걸어 다니고 있는데요. 이곳에도 부조화가 있습니다.


마르세유 항구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비장함과, 관광객들의 기쁨과, 하늘과 바다가 이루는 아름다운 색조와, 노숙인의 허기와, 해산물 요리의 풍미와, 젊은이의 낙망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르세유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바다는 푸르고 천막은 노르스름하고 좌판대는 하늘색이고 그 위에 붉은색이 있어서 색의 조합이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얼른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찍어놓고 보니 그 붉은색은 꽃의 붉음이 아니었습니다. 삶이란 얼마나 부조리하고 잔인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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