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소네트로 만들어진 실험극이 있었네요. 2009년 베를린 국립극단인 베를리너 앙상블의 공연이었는데,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세운 극단이라고 합니다. 이 극단은 독일 연극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실험극으로 유명하다지요.
공연을 연출한 사람은 로버트 윌슨인데, 이른바 이미지 연극을 개척했다고 평가됩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게 된 그의 공연 영상은 과연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는 시인과 젊은 남자, 검은 여인이 등장한다고 했지요. 윌슨은 이 인물들을 포함해서 여러 인물들을 무대에 올려서, 소네트의 시들을 소재로 한 편의 연극 같기도 하고 행위 예술 같기도 한 공연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공연에, 앞서 읽어본 소네트29가 포함됩니다.
이 실험극은 독일어와 영어 노래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작곡은 루퍼스 웨인라이트예요. 영화 <슈렉>에서 '할렐루야'라는 노래를 부른 바로 그 가수 말이죠. 루퍼스 웨인라이트는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시 10편으로 작곡을 했다고 하는데 소네트29의 곡이 참 아름답습니다.
무대에는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합니다. 먼저, 세 배우가 시의 첫 네 행을 반복해서 노래하고, 이어 두 배우가 두 행씩 노래한 다음, 다시 한 배우가 네 행을 노래하고, 마지막 두 행을 네 배우가 합창합니다. 노래가 끝나고 난 뒤에 한 배우가 독일어로 독백을 하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막연히 소네트29의 독일어 번역시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만.
무대 모니터에 띄운 영상을 보면, 연출가는 시를 비틀어서 사랑의 모순과 상처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해석이고, 아무튼 무대가 주는 시청각적 충격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게 전달됩니다.
네 명의 다른 목소리로 노래되는 소네트29,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아름다운 선율을 입은 소네트29를 들어보세요.
29
1 -
“행운의 여신과 사람들에게 천시되어,
버림받은 처지를 홀로 슬퍼하며,
귀먹은 하늘을 부질없는 외침으로 괴롭히고,
나 자신을 보며 운명을 저주할 때,“
2 -
“행운의 여신과 사람들에게 천시되어,
버림받은 처지를 홀로 슬퍼하며,
귀먹은 하늘을 부질없는 외침으로 괴롭히고,
나 자신을 보며 운명을 저주할 때,“
3-
“행운의 여신과 사람들에게 천시되어,
버림받은 처지를 홀로 슬퍼하며,
귀먹은 하늘을 부질없는 외침으로 괴롭히고,
나 자신을 보며 운명을 저주할 때,“
4 -
“나도 부유한 누구 같기를,
그이처럼 생겼으면, 저이처럼 친구가 많기를 꿈꿀 때,“
5 -
“이 사람의 기술과 저 사람의 능력을 탐하며,
내가 가진 최상의 것으로 조금도 만족하지 못할 때,“
6 -
“이런 생각에 빠져 나 자신을 경멸하려다,
문득 그댈 생각하니, 나의 처지,
동틀 녘 음울한 대지로부터 날아오르는 종달새처럼
천국의 문 앞에서 송가를 부르노라."
7 -
“당신의 달콤한 사랑을 기억하니 너무나 풍요로워져,
왕들과도 내 처지를 바꾸지 않겠네."
https://www.youtube.com/watch?v=uRglplWwZ2Q
* 대문 그림은 샤갈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