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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Sep 28. 2020

여행 = 설렘

<한나의 여행> 사라 스튜어트 글/데이비드 스몰 그림

원래는 (같은 작가들이 쓰고 그린) <리디아의 정원>을 소개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우리 집 서가에 있는 듯 없는 듯 꽂혀있는 <한나의 여행>을 새삼 꺼내보게 됐는데, 문득 작년에 무모하게 떠났던 한 달 간의 여행에서 내내 나를 의아하게 했던 물음에 대한 어렴풋한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이것은 설렘과 관련된 얘기다.


여행지는 주로 우리가 선망하는 나라, 경험해보고픈 낯선 삶, 가슴 뛰는 놀라운 풍경을 접하게 해주는 장소일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를 압도하는 어떤 것을 그리며 우리는 떠난다. 예전 같으면 유럽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유럽도 시시해져서 사람들은 더 멀리 더 낯선 곳으로 떠나는 분위기다. 일상을 떠나지 못하는 남은 자들은 대륙을 자동차로 횡단했다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방랑자처럼 몇 년을 떠돌았다는 사람을 존경의 눈길로 쳐다본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많고도 다양하겠지만, 내 생각에 여행자들의 마음 기저에는 설렘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니, 설렘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하면 더 적당하려나?



<한나의 여행>은 독자를 강하게 끌어당길 요소는 없는 책이다. 내용도 그림도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대단한 모험도, 마음을 휘감는 뜨거운 감정도,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도 없다. 책꽂이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감 없이 있을 만도 했다.    


우리 주인공, 한나는 펜실베이니아 주를 포함해 미국 본토 몇몇 곳에 공동체를 형성해서 사는 아미시(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파)다. 이들은 현대 사회와 거의 절연된 채 살아가는데, 우리로 말하자면 지리산 청학동과 비슷하다. 이들은 아직도 마차를 몰고 검은 모자와 검은 옷차림으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산다. 아미시의 시계는 마치 19세기에서 멈춘 것 같다.


한나는 열두어 살쯤 됐을까. 한 번도 공동체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이 소녀가 엄마와 엄마 친구를 따라 일주일간 도시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나에게 이번 여행은 공간적인 이동이기도 했지만 시간적인 의미에서 엄청난 거리를 건너뛰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나의 일기를 읽게 된다. '일요일, 일기에게,' 라고 시작하는 한나의 일기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그리고 토요일까지 이어진다. 한나는 매일 있었던 일들을 일기에 차분하게 적는데, 마음은 차분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주 내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라고 한 걸 보면. 한나는 하루 종일 가게를 돌고, 공원과 건물 구경을 하고, 배를 타고, 수족관을 간다... 호수에서 물고기만 낚던 아이에게 수족관 유리벽을 통해 바라보는 물고기들의 세상은 신기하기만 했다.  


이렇게 기쁘고 흥분되는 일주일이 흘러 어느덧 여행의 마지막 날, 한나는 여행이 끝나는 걸 섭섭해하는 대신에 집을 그리워한다. 설렘의 짝은 그리움인가 보다.


오늘은 미술관에 갔는데 우리 마을 풍경과 비슷한 그림을 보고 울었어... 일주일 동안 가족들에게 줄 시를 한 편씩 썼어...  


어쩌면 그림책의 글 작가는 21세기 도시인으로 사는 아이들에게 시간과 공간 속 여행을 시켜주고 싶어서 이 책을 구상했는지도 모르겠다. 한나가 구경하는 도시 풍경 중간중간에 아미시 마을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그림책 속에서는 한나가 도시로 여행을 하지만 그림책 밖에서는 우리가 아미시 마을로 여행을 한다. 말하자면, 양방향의 여행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이 그림책에 특별한 뭔가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여행 첫날부터 눈으로, 피부로, 냄새로, 아니 온몸으로 느껴지던 바로 그것.  


책 표지는 새벽 풍경이다. 마차가 준비됐고 말을 챙기는 아빠가 있다. 노란 기름등이 밝히는 동그란 빛무리 속에 가방을 들고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 아, 아주 이른 아침에 찬 새벽 공기를 마시며 어딘가를 가는구나, 우리는 짐작한다. 푸른 새벽빛, 공기는 촉촉하고 싸늘하다. 여행자는 잠이 덜 깬 눈으로 길을 나선다. 돌아보면 우리 기억 속에는 이런 새벽길의 특별한 느낌과 냄새가 있다... 고생스러워서 다시 잠자리로 기어들어가고 싶지만 억지로 현관 문밖을 나서던 무거운 발걸음도 기억난다.


작년 늦가을에 여행을 떠났더랬다. 한나보다 오래, 한나와 달리 나 혼자. 한나는 첫 여행이었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아서, 살면서 이런저런 낯선 곳과 멋진 곳들을 꽤 다녀봤다. 그래서일까, 여행지가 별로 신기하지 않았다. 여행하는 마음도 별로 기쁘지 않았다. 생전 처음 혼자 긴 시간 멀리 떠난 여행이어서 새롭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미진했다.


저녁에 낯선 밤길에 나서는 게 무서워서 해만 지면 득달같이 숙소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여행지에서의 밤은 무척 길었다. 사고가 나도 한두 시간 안에 달려와줄 가족도 없고 한두 시간 안에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먼 외국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노리고 떠난 여행이었다.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곳에서 익명의 자유를 멋지게 누려보리라, 원대한 꿈을 품었더랬다. 그런데 숙소에서 초라하게 떠는 꼴이라니.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곰곰 생각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뭘 찾아왔냐고?


그걸 알 수 없어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전자책으로 읽었다. 내가 여행하는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어서 남의 이유를 들여다봤다. 그럭저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신나는 모험담을 기대하는 식구들이며 친구들에게 좀 미안했다.


<한나의 여행>을 읽으면서 문득 지난 여행에서 내가 진정으로 찾던 것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멀리 여행지에서 찾지 못해 당황했던 바로 그것. 그것은 '설렘'이었고, 여행 내내 마음이 미진했던 것은 '설렘의 부재' 때문이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파리, 예술작품, 맛있는 음식, 열심히 익힌 프랑스어를 써볼 기회, 무한한 자유 같은 것들을 찾아 떠났는 줄 알았는데, 내가 진정 그곳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더 근원적인 무엇이었나 보다. 이 모든 것들의 저변에 있는 '설레는 마음' 말이다. 여행지가 왜 나를 설레게 만들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 여행이 그다지도 미진했는지는 일단 알았다.


어쩌면 설렘은 아주 깨끗한 마음만이 느끼는 귀한 전율일지 모른다. 한나처럼 순수한 아이만이 느낄 수 있는 귀한 것. 닳고 때 묻은 마음은 경험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이 그림책의 푸른 새벽빛과 한나의 일기가 이렇게나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인가.  


우리가 여행에서 꿈꾸는 것은 어쩌면 순수한 마음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내면의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첫눈과 첫 만남과 첫맛 같은 모든 처음의 깨끗함이 그리워서 우리는 여행을, 영화를, 음악을, 아니 새로운 경험을 찾는다. 순수한 마음으로 느꼈던 그 설렘이 그리워서. 마음이 두근대며 동공이 커지고 입에서는 탄성이 나오며 심지어 살갗의 솜털이 일어서기도 했던 그때의 그 느낌을 찾아서.


p.s. 설렘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를 재미있는 민담이 하나 있다. 그림형제의 이야기 중에서 <소름을 찾아 나선 소년>이라는 이야기인데, 소년은 너무 멍청해서 '아버지의 짐'이 될 거라며 너나없이 한심해하는 아이였다. 사람들이 난롯가에 둘러앉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서 소름이 끼친다고 말하는 걸 듣고 아이는 혼자 중얼거렸다.


소름이란 게 뭔지 모르겠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기술인가 봐.


아이는 결국 소름 끼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소년에게 소름을 알아내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생각해보면, 소름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의 모든 경험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소름 끼치게 무섭고, 소름 끼치게 좋고, 소름 끼치게 싫다, 등등 어떤 경험이 극단적이 될 때 우리는 말하자면 존재 전체로 이것을 겪고 그럴 때 우리 몸에는 소름이 돋는다. 극단은 처음으로 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소름이 돋을 때 우리는 우리 마음의 맨바닥까지 내려가게 된다. 그래서 내 뿌리와 연결되는 느낌이랄까, 내 존재의 본질을 손으로 확인해보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나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낀다. 민담은 이것이 사람에게 극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싶다. 민담의 주인공이 마침내 훌륭한 인물로 거듭나는 과정은 소름을 찾아 나서는 여정과 겹치고, 소름을 경험하는 것으로 그의 성장은 완성된다. 어쩌면 소름은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 마음을 뒤흔드는, 우리의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생기를 충전시키는, 진앙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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