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바웃타임>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게 "로맨틱 코미디"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곤 하는데, 영화에 대한 글도 꾸준히 쓰고 있고 독립영화제나 단편영화제에서 종종 글을 쓰기 때문인지 다들 내가 다양성 영화나 예술 영화를 가장 좋아할 것이라 생각해서 이다.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봐왔고, 나에게 가장 익숙한 장르가 바로 로맨틱 코미디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영국의 워킹타이틀과 레이첼 맥아담스를 매우 사랑한다.
제작사 워킹타이틀은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등의 영국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이다. 나 또한 <노팅힐>로 워킹타이틀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작품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바로 <오만과 편견>과 <어바웃타임>이다.
전작의 경우 말할 것도 없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로맨스 작품이고 키이라 나이틀리의 진면모를 처음으로 느끼게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경우 너무나도 할 말이 많고 쓰고 싶은 글이 있지만,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 <어바웃타임>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개봉했는데, 마치 <라라랜드>처럼 오랫동안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어바웃타임>에는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이 참 많이 나온다. <노트북>에서부터 눈여겨보았던 레이첼 맥아담스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짧은 역이었지만 참 멋있었던 돔놀 글리슨, <러브 액츄얼리>에서 특이한 가수 역을 맡았던 빌 나이 등 평소에 '사랑스럽다'라고 생각했던 배우들이 모두 나와 반드시 챙겨보았다.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모든 대사가 나에게 명대사였다.
<어바웃타임>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며칠 전 꾸었던 꿈 때문이다. 평소에 잠을 깊게 자지 못해서 꿈을 거의 매일 꾸고 심지어 잘 기억하는 편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곤 한다. 하지만 그 날 꾸었던 꿈은 너무 생생해서 눈을 떴을 때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안도했었다.
꿈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있었다. 작은 의자가 놓인 작은 방에 있었는데, 그 의자에 앉아 9시가 되기 전에 피리를 불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건이 참 이상하다...) 겁이 많은 나는 수 번을 주저했는데, 타임슬립은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긴가민가 했다. 마치 성인이 된 날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팀이 그랬던 것처럼, 반신반의하며 의자에 앉았던 것 같다. 그렇게 갈등하다 9시가 되기 2분 전 겨우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피리를 불었고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더니 대학교 2학년 때의 강의실로 돌아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3년 전 그때쯤으로 돌아가 있었다. 눈을 뜨니 수업이 거의 다 끝나 있었고 문과대 밖으로 나오니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이 여럿 있었다. 친한 동기들에게 "나 사실 미래에서 왔어"라고 했다가 눈초리를 받기도 했고 어떤 동기는 나에게 찾아와 미래에서 왔냐며 그때쯤에는 자신이 제대를 했냐고 울먹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과거로 돌아갔지만, 나는 실망감이 컸다. 왜냐하면 애초에 나는 아무것도 바꾸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타임슬립 영화를 보면서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생각을 자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제 가장 돌아가고 싶은지, 돌아가게 된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에 대해도 생각을 해보았다. 예전에는 20살 때로 돌아가 좀 더 놀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대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가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교환학생 시절을 다시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두 결론 모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내가 살아온 삶을 그대로 살 것'이었다.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이 나에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때 최선의 결정을 내렸으며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 일을 겪고 싶고 그때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싶을 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좌절을 겪었었다. 그 당시 붐이 일었던 외국어고등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나는 특이하게도 특정 외고를 가고 싶어 했다. 그 학교 교복이 예쁘기도 했고 사립학교라 시설이나 분위기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원에 같이 다니던 친구의 괴롭힘으로 다른 학교를 쓰게 되었고 결국 떨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 나의 실력에 대한 원망과 '떨어질 거면 원하던 학교를 쓰고 떨어질 걸'에 대한 후회로 굉장히 많이 힘들었는데, 결국 고등학교는 좋은 학교로 가게 되어 행복한 3년을 보냈다. 그 어떤 길을 갔더라도 나는 만족스럽게 지냈겠지만, 그 3년 동안의 시간과 인연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소중해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모교로 진학하고 싶다.
그때의 기억 덕분인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이유가 있거늘"이라고 하며 크게 속상해하지 않는다. 대학교를 예상보다 못한 학교에 진학했지만, '내가 이렇게 된 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다녔고 결과적으로 지금은 매우 만족한다. 설령 아프리카에 갔다가 반년만에 돌아왔어도, 그때의 만난 동기 봉사자들과의 인연이 소중해 과거로 돌아갔어도 나는 다시 아프리카로 떠났을 것이다.
그래서 꿈에서 나는 매우 막막했다. 내가 원래 있었던 2017년까지 3년이나 남았는데, 어차피 내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보낼 텐데, 도대체 왜 돌아왔나 싶기도 했었고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를 만나려면 여러 상황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다시 만나야 하며 <어바웃타임>에서 처럼 무작정 그가 있는 전시회를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서야 사진전에서 무작정 메리를 기다린 팀의 심정이 백 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아, 사실 나는 현재에 매우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구나.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팀은 말한다.
"그저 내가 이날을 위해서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이 삶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아마 이 마지막 대사와 장면이 감독이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나 싶다. 인생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 사랑과 우정, 의리, 가족. 팀은 샤롯의 사랑을 얻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고, 자신에게 방을 내어준 해리를 위해 시간을 되돌리고, 메리를 만나기 위해 또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동생인 킷캣을 보호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고,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간을 되돌린다. 이 중에서는 팀이 원하는 대로 미래가 바뀌는 경우도 있고, 팀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도 발생한다. 결국 우리가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어떤 일들을 반드시 일어나며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시간여행을 하며 우여곡절을 겪고 깨달음을 얻는 팀을 보며 나 또한 깨우친 것이 있다. 시간을 되돌려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저 이 시간을 최대한 만끽하며 보내면 되는구나. 반드시 항상 행복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내가 과거의 여러 일들로 인해 깨달음을 얻어 그로 인해 성숙한 것처럼, 힘들고 슬픈 일을 겪어도 좌절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저 나는 순간순간을 감정으로 채우고 싶다. 기쁨, 슬픔, 환호, 후회, 분노, 모든 감정들로 나의 하루를 채우고 싶다. 오늘도 나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