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야겠다

나의 세계가 견고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었다

by 다흰

글이라고 하는 게 참 신기한 것이 쓰자고 마음먹을 때에는 도통 쓰이지 않지만, 어떤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그것이 증폭제가 되어 계속 글만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의 경우 도저히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무언가라도 써서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다. 이럴 때는 내 머릿속에 글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펼쳐져서 나의 손가락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곤 한다.


많이 기대했었던 아일랜드 여행을 며칠 전 취소했다. 남들에게는 체력적으로 지쳐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내가 조용히 나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 같아서이다. 6개월 동안 나의 첫 사회생활을 돌아보고 혹시라도 그 안에서 내가 스스로 칭찬할 만한 점은 무엇인지,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싶었다. 더불어 2주간의 가족여행에서 또다시 불거진 갈등으로 인해 나의 행동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었다. 원래는 이런 과정들을 아일랜드에서 할 예정이었지만, 정말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공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돌아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겠다고 생각한 건 다름 아닌 한 사람 때문이다. 비록 그 사람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앞으로도 계속 알지 못하겠지만, 누군가와의 연애에 있어서 나의 과거나 평소 태도가 발목을 잡는다면 더 늦기 전에 과감히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지난 연애에서 내가 들었던 말과 이번 연애에서 내가 똑같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는, 동시에 나 역시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돌아볼 시간이 조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에게 그 사람이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면 이런 과정을 거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했겠지만, 오랜만에 느낀 소중한 감정에 내가 제대로 된 만남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서는 많이 늦었지만.


나는 나만의 세계를 아주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그것이 영화이던 아이돌이던 나의 과거이던 간에 나의 세계는 너무나도 확고한 상태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 안에 들이는 것들이, 동시에 다시 나가게 하는 일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진다. 확고한 세계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낮은 경계심 혹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확고한 세계에다가 높은 경계심까지 가지고 있다. 누군가가 나의 세계에 물음을 가지면 "감히 내 세계를 건드려?"라고 과민반응하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일방적으로 나의 세계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상대방이 구축한 세계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으면서.


왜 이런 높은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된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나를 두고 바람을 폈던 전 남친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그저 내가 바뀌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내가 나의 세계, 그리고 상대방의 세계를 유일하게 존중해주는 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유일하다. 나와 친한 동생인데, 나는 그 친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친구 역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나의 밝은 모습들, 때때로 드러나는 우울한 감정들을 이해해준다. 어쩌면 내가 그 친구의 세계를 존중하고 이해해서 이런 관계가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나는 남자친구에게도 이와 똑같이 대하면 되는데 왜 자꾸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되는지, 무언가를 자꾸 바라게 되는 지에 있다.


나의 세계에는 나의 취향들, 일상들도 있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이나 큰 상처로 남은 누군가가 있기도 하다. 분명히 나는 그 상처에서 충분히 헤어 나와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남자친구에게는 자꾸 그 상처를 상기시키고 강요한다. "나는 이런 아픔이 있는 사람이니까 당신이 나를 이렇게 대하면 안 돼"라는 말을 덧붙여가면서 말이다. 이런 내 모습에 지친 남자친구는 날 떠나고 싶어 하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스스로 위로한다. "이 사람은 나의 상처를 외면하고 내 좋은 모습만 보려 하네? 역시 이 사람은 이렇게밖에 나를 사랑하지 않았군, 실망이야!"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의 세계에 궁금했었던 적이 있었나 하고 되돌아본다. 상대방은 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상대방을 잘 모를 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고민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나 스스로의 상처에 취해 상대방에게 그리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것, 또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세계를 알려하지 않았다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받지 못한다' 혹은 '배려받지 못한다'라며 상대방을 비난했던 나의 언어들은 사실 나에게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상처와 아픔과 구김살로 똘똘 뭉친 인간은 아니다. 사실 이미 이겨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고 멀리서 조망할 정도의 안정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의 상처를 끄집어내어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일은 아마도 내가 내 자신이 별로인 사람이라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인 듯하다. 이렇게 하면 나를 더 사랑해주겠지, 하면서.


이런 나의 견고한 세계와 높은 경계심 그리고 이기적인 마음들이 연애에 있어 큰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던 건 지난 연애를 통해서였다. 나는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가 그가 우울증에 걸린 나를 두고 도망쳐서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상처를 무기로 삼아 수 없이 칼을 휘두르고 상대방을 찔러댔던 나의 모습이 상대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차라리 칼을 휘두르기만 하면 될 텐데, 칼을 휘두르면서 "왜 이런 날 사랑하지 않아!"라고 외쳐댔으니 나 같아도 도망갈 듯하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다. 재작년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게 되면서 더 곱씹고 동시에 실천하게 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면 그 실천이 조금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게 나라는 사람이니 존중해달라고 강요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어떤 문제가 있다면 고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나의 착각이 어쩌면 이미 이기적인 나를 더 이기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하면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바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마음을 먹는다고 바로 써지는 것 역시 글이 아니니. 다만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잊고 있었던 한 계정을 발견했다. '영지의 그림일기'라는 계정인데, 이 작가는 내가 지난 연애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이번 연애가 끝난 이 순간을 넘어서도 한 사람과 잘 만나고 있는 듯하다. 이 계정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가 나와 너무나도 비슷해서이다.


일주일 동안 연작으로 그린 남자친구와의 통화 속 작가의 말들이 나의 말들을 그대로 복사해놓은 것처럼, 나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호의적인 행동을 나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나 관계에 있어서 모든 탓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모습,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도록 강요하는 모습, 그리고 상처 주는 말로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하는 모습이 그저 내 모습 같았다. 작가의 결론은 상대방이 하는 사랑에만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주는 사랑에 더 집중하라는 것이다. 나는 왜 사랑을 조금만 받지, 왜 나를 더 배려해주지 못하지,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게 맞나 하고 의심하기보다는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떻게 더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에 더 집중하라는 것이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나는 작가의 깨달음과는 달리 그리 실천하지 못한 듯하다. 내가 더 어리고 상처가 많고 혹은 다른 이유를 대며 내가 더 배려받고 사랑받기를 원했다. 그가 나에게 사랑을 주는 모습에만 집중하다 보니 내가 그에게 사랑을 주는 행위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나 당신을 사랑하고 배려하는데, 당연히 당신은 나의 사랑을 느끼고 있겠지 착각하며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이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배려를 원하는 만큼, 이 사람 역시 나에게 그걸 원하고 있었구나. 혼자 많은 것을 떠안고 포용하려다 보니 나보다 훨씬 빨리 지쳐버렸구나.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이 변해서도, 사랑이 식어서도, 혹은 고작 이만큼 밖에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홀로 외로운 연애를 견뎠을 뿐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난밤 '다름을 극복하지 못하겠다'는 말에 반기를 들고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성격의 차이가 아니라 내가 변하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그릇된 행동이 초래했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돌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이 글을 보지 못할 테고 방금 쓴 나의 말들은 메아리처럼 허공을 맴돌겠지만, 그저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다. 나의 어리석은 착각이 그릇된 행동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당신을 외롭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고치는 것은 정말 어렵고 동시에 큰 힘이 필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홀로 높게 쌓아온 성 안에서 자기만의 착각에 빠져 살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어렵다. 참 어렵고 잔인한 일이지만, 당신이 나를 이 성에서 나오게 해 줘서 동시에 내가 이 곳에서 나올 용기가 생겨서 다행일 따름이다.


이젠 좀 더 성 밖을 봐야겠다. 주변을 둘러보고 다른 사람의 성을 살펴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다. 그러다 나의 성에 채워넣을 것이 있으면 채워넣고 빼야할 것이 있으면 빼고 싶다. 만약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 이게 당신의 세계구나, 이런 세계가 있는 당신이 좋다고. 그 세계에 있을 때에는 굳이 나와 함께 하지 않아도 되니 종종 나를 찾아와달라고. 이런 유연함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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