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그 알 수 없는 어중간함

이준익 감독은 <변산>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by 다흰

이준익 감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한국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큰 고민 없이 <왕의 남자>를 꼽을 수 있다. 내가 한국 영화에 바라는 모든 것들을 실현하는 감독인데, 그가 만드는 모든 사극 영화를 사랑한다. 특히 최근 3년 이내에 개봉한 <동주>, <사도>, <박열>은 모든 시대의 사극 영화를 합쳤을 때 가장 잘 만들어졌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작품보다 어느 독립영화제를 갈 때나 마주치는 그의 마인드를 훨씬 사랑한다. 한 때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영화제에서 일을 할 때였는데, 정말 어떤 영화제의 개막식을 가도 이준익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소심쟁이라 직접 말을 붙이진 못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과 한 공간에 여러 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꽤나 행복한 일이었다.


이렇게 이준익 감독의 덕후인 내가 그의 신작에 대해 궁금증을 표하려니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변산>은 애매하다. 어딘가 정착되지 않고 자꾸 어슬렁 거린다. 무언가 이야기할 것 같으면서도 쏙 빠져버린다. 이런 전개 방식이 걷잡을 수 없는 청춘을 표현한 감독의 의도였다면 관객들에게 고민을 하는 여지를 남겨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잘 모르겠다.


사라져 버린 '래퍼'의 서사


c634047504ad21c3c01b9730f73713f651ec7a15 ⓒ Daum 영화

주인공 학수는 한 때 시인이 꿈이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자신의 시를 훔쳐간 교생으로 인해 시인의 꿈을 접고 서울로 상경하더니 갑자기 래퍼가 되어 '쇼미더머니'에 도전 중이다. 그것도 6년씩이나. 이 정도면 '쇼미더머니'가 개근상이라도 새로 신설해야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 영화는 <동주>와 매우 비슷하다. 영화 내내 강하늘이 읊는 윤동주의 시가 등장하듯, <변산>에도 박정민이 부르는 랩이 등장한다. 박정민이 직접 가사를 썼다는 점, 그리고 그 내용이 영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어째 래퍼의 서사는 난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랩은 시(诗)이다. 고대의 시가 무한히 발전해 현재에 맞게 각색된 것이 바로 랩이다. 그런 점에서 시를 쓰던 학수가 래퍼가 되었다는 점이 좋았다. 시에서 랩으로 옮겨갔다는 것은 그 역시 발전했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스페셜 무대를 제외하고 그의 랩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단순히 랩이 학수의 현재성 혹은 힘든 생활을 보여주는 장치나 수단이 아니라, 그의 메인 서사에 등장하길 바랐다. 나 역시 다른 관객들처럼 도끼와 매드클라운이 나올 때마다 머리를 싸쥐었지만 내심 래퍼로 성공하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성장을 보여주는 학수의 모습을 기대했다.


<변산>의 서사는 가족과 고향이다. 여기에 가려져 학수의 랩 실력과 열정은 잘 보이진 않지만, 그의 울분을 토해내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곧 랩이다. 많은 청춘들의 자신들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쇼미더머니'에 도전하듯, 학수 역시 그랬다. 단순히 랩이 청춘을 나타내는 지표 정도로 사용되었다면,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언제나 남자를 깨닫게 해주는 여성의 역할


92392df66e2692563f7f2e4f5d88b4a49e67f6ab ⓒ Daum 영화

영화 밖이듯, 영화 안이든 김고은은 매력적이다. 천편인률적인 얼굴들 사이에서 내가 바로 '김고은'이라고 외치고 있다. 어딘가 슬프고 동시에 사랑스럽다. 그리고 '금잔디' 같은 억척스러움도 있다. 이 모습을 모두 <변산>에서 볼 수 있었다.


김고은이 맡은 배역 선미는 학수의 '고향 친구'이자, '공무원'이자, '착한 딸'이자, '작가'이다. 이렇게 나열만 해도 다재다능하고 효도하는 최고의 청년이다. 심지어 학수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녀만의 책을 썼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렇게 능력 많고 입체적인 캐릭터인 선미 조차도 학수를 깨닫게 해주는 수동적인 역할로만 소비된다. 학수가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화해하게 하고, 아버지를 자꾸 외면하는 학수로 하여금 아버지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고향과 정을 붙이지 않으려는 그를 모든 동창들과 만나게 하며 그간 쌓여있던 공항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을 모두 떨치게 만든다. 즉, 학수가 이 모든 것을 깨닫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바로 선미이다. 영화에서 보이는 선미의 능력과 재능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역할이다. 남자 주인공을 위해 소모되는 여자 주인공 그 이상의 역할을 하길 바랐다. 마치 <박열>의 후미코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혹은 아닌지 모를 그들만의 동창회


a26011a168647f7025e00bf83fc0ffb8f45d1ea2 ⓒ Daum 영화

영화는 고향에 내려온 학수와 그의 아버지가 화해를 하고 고향 절친, 동창들이 모두 모여 다 같이 회식을 하며 끝이 난다. 오랫동안 원망을 품었던 아버지에 대해 순식 간에 원한이 풀린다는 점, 주먹다짐 중에 갑자기 모든 동창들이 모여 밥을 먹는다는 점,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방 출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것인가?' 싶었다. 경기도에서 자라 학교도 서울에서 다니는 나는 몇 번을 제외하고 집을 떠나본 적이 거의 없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그리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 감정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일까?


사실 학수가 학수의 아버지를 때리는 장면을 꽤나 통쾌했다. 누군가는 '패륜아'라고 할 지라도, 어머니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평생을 건달로 살며 병이 든 지금까지도 자신이 건달이라는 사실에 부끄럽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며 학수는 꽤나 답답했을 것 같다. 아들에게 "컴 온!"이라고 외치는 신(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고향을 떠난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자라지 못한 아들의 싸움은 무언가 막혀있던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그들만의 동창회는 역시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1d0c040d4b112eb21679fa84276bdb2df584f2d3 ⓒ Daum 영화

<변산>은 청춘 3부작이 맞다. <동주>에서는 나라를 잃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청년의 부끄러움을, <박열>에서는 나라를 지키는 데에 몸을 사리지 않는 청년의 열정을, <변산>에서는 오랫 고향과의 갈등을 풀고 날개를 펼치려는 청년의 시작을 노래한다.


조금 더 낫길, 혹은 다른 접근을 하길 바랐던 나의 마음은 이준익 감독에 대한 존경과 박정민 배우에 대한 관심이 낳은 아쉬움일 것이다. 앞으로 나는 언제나 그의 작품을 기대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작은 숲은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