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리 어렵게 사는 걸까, <리틀 포레스트>
나는 어릴 적부터 돌아갈 고향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의 친가는 서울이었고 나는 서울 태생이었다. 명절이 되어 친가로 가는 길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가서 전을 부치고 밤에는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보고 아침에는 제사를 지내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 정해진 루트처럼 보였다. 그에 비해 나의 친구 하나는 친가가 거제도였다. 명절마다 거제도로 가는 길은 짧으면 5시간에서 길면 8시간이 걸렸고 며칠씩 쉬다 왔다. 가고 오는 길이 너무 힘든 일로 보였지만 모든 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 축제처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노래방에 가고 그런 모습들이 너무 부러웠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자취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에서 혼자 사는 것이 부러웠다기보다는, 방학마다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이 부러웠다. 나는 학기 중이든 방학이든 언제나 집에서 지내는데, 그 친구들은 학기 중에는 힘들고 힘들게 서울에서 보내다 방학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히 쉬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그런 것들이 부러웠다. 마음 편히 돌아갈 수 있는 곳. 그런 것이 나에겐 없었던 것 같다.
혜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독립해 오랫동안 혼자 서울에서 지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돈을 벌고 요리를 하고 공부를 했다. 씩씩한 그녀는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떨어져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뭘 그렇게 어렵게 사냐
자신을 챙겨주는 재하에게 차갑게 대하고 혜원의 혼잣말이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왜 이리 어렵게 사는 걸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정해야 하는 나의 미래는 너무 불안하고 불투명하다. 혜원이 고향에서 지내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맛있는 밥 한 끼 먹고 오후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만나 반주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지금의 우리에겐 이런 소중하고 평범한 일상들이 너무 어려워졌다. 여유로운 취미 생활을 즐기는 대신 음주로 짧지만 효과가 좋은 여가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는 지쳐 침대에 늘어져 잠만 잔다. 내가 삶을 사는 것인지, 아니면 삶이 나를 억지로 이끌고 가는 것인지 모르는 체 말이다. 내 삶의 중심엔 더 이상 '나'는 없다.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
힘든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가 한 말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학생 때는 교수와 선배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직장 상사가 어느새 나의 중심이 되어 있고 나의 선택을 그들이 결정한다. 분명히 내가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직장을 구하려 해도 결국 남들이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직장을 고르게 되고 직업을 선택하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나의 고민과 선택은 어느새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의 정령이 올 때쯤 나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혼자만의 오랜 시간과 고민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자신만의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랬다. 그동안 자신의 남편과 자식을 돌보며 자신의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그녀는 마침내 결정을 내린다. 자신만의 '해답'을 찾기 위해 혜원이 성인이 되기도 전에 그녀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혜원이 자신이 찾던 해답을 찾은 것처럼 그녀의 어머니도 해답과 자신의 삶을 찾아 돌아온다.
삶은 고독하고 힘들다. 내가 무언가 고민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아닌 것 같고, 홀로 고통을 느끼는 듯 하지만 모두가 겪고 있는 일들이다. 나의 진정한 집은 어디인지,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평생을 찾아 헤맨다. 결국 헤매고 고통스러운 것이 인생이라면, 수많은 시간에 걸쳐 베어지고 다시 자라나는 나무가 가득한 '거대한 숲'이라면 나는 그저 내가 기댈 수 있을 만한 '작은 숲'을 하나 가지고 싶다. 쉬고 싶을 때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따듯한 밥이 있고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사실 나는 떠나온 것이 아니라 돌아온 것이라고
언제 돌아올 거냐는 남자친구의 물음의 혜원은 이렇게 답했다. "사실 나는 떠나온 게 아니라 돌아온 것 같아."
나의 삶을 위로해주는 가장 큰 존재는 '영화'이다. 사람도 아니고 장소도 아니고 하나의 매체일 뿐이지만 언제나 나에겐 큰 위로가 되고 그것이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영화를 직업으로 삼기를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한 때 나의 슬픔을 위로해주던 영화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올까 무섭다.
나는 모든 이가 자신만의 '작은 숲'을 찾길 바란다. 각박하고 외로운 현실 속에서 영화의 캐치 프레이즈처럼 '잠시 쉬어가도 조금 달라도 서툴러도 괜찮'은 곳이 각자에게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때쯤 기다렸다 충분한 용기를 가지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따듯한 봄과 더운 여름, 차가운 가을, 추운 겨울을 모두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