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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Apr 20. 2021

100일 글쓰기

002 내가 교사가 된 이유

어느새 교사가 되기까지 준비했던 시간보다 교사가 되고 나서 그 이후의 시간이 훨씬 많이 흘렀다. 사실 남들에 비하면 새똥만큼 준비했지만, 그 시간의 치열함은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었다. 항상 영화를 꿈꿔왔던 내가, 영화 번역가를, 영화 기자를 꿈꾸던 내가 교사가 되고자 마음먹은 것은 우리나라를 흔들어 놨던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나에겐 평범한 아침이었다. 오후 수업에 가기 전 밥을 먹고 있는데 뉴스에서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 타고 있던 배가 뒤집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행히도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했지만, 곧 오보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며칠을 그 뉴스에만 매달려서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누군가는 구조되었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아직까지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목이 멘다. 왜 사람들은 그 기억을 잊고 사는지, 왜 아직도 세월호냐고 묻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에게 있어 세월호 사건은 한 개인이 시스템을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충격을 준,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피해자는 내 주변에도 있었다. 친한 오빠의 여자친구의 동생이 그 배에 타고 있었고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보면 생판 모르는 남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9.11 사건만 해도 그렇게 큰 미국에서 열 다리만 건너면 피해자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세월호 사건과 9.11 사건 모두 각 국가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그 며칠이 나에게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그 배에 타고 있던 수많은 학생들과, 그리고 그들을 구하고자 했던 선생님들 때문이었다. 한 개인이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만 한 개인이 수많은 개인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월호 사건을 통해 배웠다. 겨우 교직 1년 차의 교사가 학생을 구하다 목숨을 잃기도 하고 수많은 학생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 선생님도 계셨다. 한 개인이, 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그때 겨우 교직이수를 시작한 2학년 짜리 대학생이었지만, 교사 하나의 중요성을 직접 목격하고 나는 선생님이 되고자 다짐했다.


그러다 교육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나의 고집으로 모교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 한 달은 정말로 내 삶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즐겁고 또 즐거웠다. 단순히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거기에서 보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학교에 남아 진로와 진학이 고민인 고등학교 2학년인 친구들을 상담을 해주었다. 아직도 그 친구들과 연락을 할 정도로 끈끈하게 지냈고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내가 임용고시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임용고시에 붙고 직접 현장에 나와보니 교사의 책임감은 무궁무진했다. 특히 담임을 할 때에 더욱 그랬다. 중학교 3학년을 맡아 고등학교 입시를 담당했는데, 나의 판단과 조언이 이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뿌듯했고 동시에 두려웠다. 나 역시 너무나도 부족한 인간인데 과연 이 아이의 인생을 잘 이끌어 줄 수 있을지, 서른 명 남짓의 아이들의 1년을 내가 책임질 수 있을지 무서웠다. 그러기에 교사로서의 나는 성장하고 또 성장해야 한다. 좀 더 아이들을 잘 지도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나 자신의 끊임없는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종종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관련 영화가 있다면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다.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 개인의 무력함과 또 동시에 한 개인의 중요성을, 이 양가적인 감정이었다. 한 개인이 그 수많은 학생들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하지만 동시에 한 개인이 몇 명의 학생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그것이 교사의 책임이라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며칠 전 세월호 7주기였다. 그때 그 학생들이 살아있었다면 대학생 혹은 취준생이었을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과 희생당한 이들의 가족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없겠지만, 그래도 노력한다. 잊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고 나의 직업에 또 하나의 책임감을 더한다. 나의 학생들을 구한다. 이것이 내가 교사가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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