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흰 Apr 26. 2021

100일 글쓰기

005 우리집 막내

요 며칠간 청첩장 모임이다, 결혼식이다 하며 집에 돌아오면 지쳐 결국 100일 연속 글쓰기에 초장부터 실패했다. 그래도 100일 동안 글을 쓴다는 것이 힘든 일이니, 글 자체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오늘 우리 막내가 아파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우리집에 온 지 100일밖에 되지 않은 아깽이인데, 복막염에 걸려 하루 이틀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두부를 떠나보낸 지 두 달 반,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또다시 하나의 생명을 보내주기에 난 준비가 되지 않았다.


우리의 첫째 두부는 급작스럽게 떠났다. 항상 건강하고 우리가 뚱냥이라고 놀렸던 두부였는데 이래저래 작은 병치레를 앓다가 치사율이 90%인 범백을 진단받은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고양이 별로 떠났다. 범백을 진단받았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런 일은 다른 고양이한테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인스타그램으로만 보는 줄 알았는데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닥치다니, 믿을 수 없었다. 두부는 참 착한 아이였다. 항상 자신의 집사인 오빠가 우선이었고 동생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다 받아주었다. 아침이면 아빠가 보고 싶다고, 문을 열어달라고 그렇게 울었다. 그랬던 두부가 갑자기 우릴 떠났다.


다른 고양이가 두부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오빠를 너무나도 따르고 사랑했던 두부와 그 두부를 너무나도 아끼고 예뻐했던 오빠의 관계가 단절 난 것이 아쉽고 슬펐다. 그렇게 우린 또리를 데려왔다.


또리는 두부랑은 달랐다. 착하기보다는 장난꾸러기였고 언제나 형, 누나에게 먼저 장난을 걸다 본인이 더 혼나곤 했다. 활발하고 뒤를 보지 않는 적극적인 아깽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너무 좋아했다. TV를 볼 때면 항상 우리 무릎 위에 앉아 함께 있었고 잘 때는 몸 위로 올라와 우리와 함께 잠들곤 했다. 사람을 아직 무서워하는 롤스와 로이와는 달리 또리는 처음 왔던 며칠 이후로 언제나 우리 옆에 붙어있었다. 그런 또리가 아프다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의 막내가 아프다니 나는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두 마리의 고양이가 연달아 아프니, 이제 나는 이 모든 것이 나의 탓 같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무언가 잘못을 해서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 병원에 입원해 혼자 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또리를 생각하니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내일 아침 동물병원에서 또리가 많이 괜찮아졌다고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나는, 오늘 기도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00일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