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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Apr 22. 2021

100일 글쓰기

004 정신과 진료

생각보다 100일 동안 연이어 글을 쓰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4일째 밤이다. 아침에는 아들러의 책을 읽으면서 독서기록을 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저녁에 또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따라서 오늘은 평소 나의 일과 중 하나인 정신과 진료에 대해 간단히 글을 써보려고 한다.


오늘도 역시 일주일 만에 정신과에 다녀왔다. 입원했던 대학병원은 나 말고도 환자가 너무 많은 것 같고 아직 경험이 너무나도 적은 레지던트가 날 담당해 보다 전문적인 상담 치료를 받고 싶어 계속 다니던 병원으로 내원하고 있다. 지금 다니는 병원은 처음 방문하고 나서 지금까지 약 1년 정도가 흘렀다.


잠실 쪽에 원래 다니던 병원이 있었는데, 의정부에서 자취를 하면서 너무 멀기도 했고 의사 선생님께서 지나치게 긍정적이셔서 안 맞아 병원을 옮겼다. 그분께서는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즉 힘들고 슬픈 이야기를 하면 항상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셨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동생만 좋아하셨어요"라고 말하면 "다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지금 OO 씨는 잘 자랐잖아요?" 이런 식이었다. 나는 우울감이 너무 심한데 말할 때마다 저런 소리를 하니 화도 나고 짜증도 나서 어느샌가부터 내 마음대로 가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약을 끊어버리니 공황장애 증세가 와서 지금 다니는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지금 다니는 병원 전에 잠깐 한 번 내원한 정신과도 있었다. 개인병원이었는데, 이래저래 해서 병원을 옮기고자 한다, 나의 우울증 정도는 이렇다 라고 말씀드리니 이렇게 심각한 환자는 처음이라면서 자신의 증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여기서 나는 또 화가 났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내가 나를 못 고치니까 병원에 온 건데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자꾸 묻는 의사에 화가 나 나오게 되었다. 우울증의 증상 중에는 내가 나를 어찌할지 모를 정도로 심한 무기력함이 있는데, 그 의사 선생님은 의지가 없는 나에게 자꾸 무언가를 물으니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금 다니는 병원에 오게 되었다.


첫날 본 의사 선생님의 모습은 따듯했다. 어디선가 본 사람 같았고 왠지 내 이야기를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이 병원에서의 진료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책이나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니 여러 책과 영화들을 추천해주셨다. 나도 나름 영화광인데, 추천해주시는 영화를 보면 나도 모르는 영화들이 많아서 놀랐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의사 선생님을 보며 반갑기도 했고 동시에 '나보다 더 많이 알다니!'라며 경쟁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흔한 할리우드 영화부터 프랑스의 오래된 영화까지, 선생님의 추천으로 나는 다양한 영화를 접했고 여러 관점에서 내 인생을 바라볼 수 있었다.


최근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OO님 안에는 또 다른 자아가 있는 것 같아요" 남들 시선에 맞추기 위해 살고 있는 나 자신과 그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나 자신을 정확히 설명해주셨다. 그러면서 그것에 대해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의 모든 우울과 공황의 원인이 학교에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올 때마다 치솟는 나의 아드레날린에 대해 설명하니, 선생님께서 이렇게 답하셨다. "아무래도 아이들과 분리불안이 있는 것 같네요" 아이들과 분리불안이라니, 나의 고양이도, 나의 남편도, 나의 엄마도 아닌 나의 학생들과 분리불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 수 차례 학교로 돌아가는 꿈을 꾸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교사가 내 천직이구나.


그렇게 나는 내년에 복직을 결정했다. 하지만 또 학교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괴로웠다. 나는 내가 맡은 과목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 과목을 대학교 때 전공으로 하면서도 교직 수업과 복수전공 수업을 훨씬 더 열심히 들었고 정작 내 전공은 등한시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선생님께서는 "그 과목이 싫은 게 아니라 너무 잘하려고 해서 문제다"라고 말씀하셨다. '명쾌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선생님과 나는 안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그 분과 공유하고 있다. 부모님이나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 이야기들을 선생님께 들려드렸고 선생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차분차분 설명해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긍정적인 피드백만 주었던 예전 선생님과는 달리, 이 분은 필요할 땐 함께 원망도 해주셨다. 그 점이 참 고마웠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자살시도를 한 후 꽤나 속상하셨다고 한다. 자신의 치료가 효과가 없었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내원하는 나를 보면서 '적어도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무언가 도움을 받으시는구나'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하셨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아, 선생님께서도 인간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모든 문제를 초월하여 해결해줄 수 있는 마법사 혹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선생님 역시 나와 같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더욱더 그 선생님께 신뢰를 갖게 되었다.


자살시도 이후 일주일마다 내원하던 나는 드디어 오늘부터 2주마다 내원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재차 "괜찮냐"라고 물으셨고 나는 "괜찮다"라고 답했다. 앞으로 2주 동안은 내 삶이 별 일 없기를, 따듯하기를, 그리고 선생님의 삶도 따듯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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