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저 퇴직하겠습니다

by 이상훈

이 시기 나는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의 기간제교사로는 이미 합격했고, 개학 전에 이 학교의 여러 선생님들에게 인사도 했으며, 부서 회식에도 참석했다. 내 업무도 알게 되었고, 교과서와 학습 자료도 모두 받았다. B 지역의 천주교 재단의 정교사 합격 결과는 아직 안 나와서 그냥 떨어졌나 보다 생각하고, 3월 2일에 서울에 있는 불교 재단의 사립고등학교 기간제교사로 첫 출근을 했다. 양복을 차려입고, 인생에서 첫 취업이라 약간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3월 2일, 그 학교에서 신임교사로 교직원 회의에 소개된 나는 이 학교에서 잘해서 정교사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인생 첫 교직원 회의를 마치고, 내 자리에 앉았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가끔 나는 핸드폰의 진동도 빛깔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지 안에서 느껴지는 이 진동은 뭔가 나에게 새로운 소식을 줄 것 같았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빠르게 복도로 나갔다. B 지역에 있는 내가 정교사 시험을 보았던 사립학교의 교무부장의 전화였다. 나에게 최종 합격했다며 지금 오실 수 있냐고 했다. 나는 바로 답변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갖지 않았다.


“네. 바로 출근하겠습니다.”

나는 약간 눈물이 나려 했다.

그렇게 서럽다던 기간제교사 생활을 시작도 안 했는데, 바로 정교사가 되다니, 이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수많은 나의 동기들이 임용고시를 떨어지고, 기간제교원으로 간 걸 잘 알기에 나에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서울 집에 놓아둔 옷이며 짐을 챙겨 다시 아내가 있는 그리고 나의 첫아이가 태어나는 곳으로 갈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바로 서울 사립학교 교무부장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정교사가 되어 퇴직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교무부장은 축하한다며 세련되게 인사해 주었다.

서울의 사립학교 입사 첫날 나는 퇴직을 한 것이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엄마는 살짝 우셨던 것 같다. 그날의 내 기쁨에 찬 목소리는 버스를 쩌렁쩌렁하게 울렸을 것 같다. 친한 친구들한테도 버스 안에서 엄청 전화를 돌렸다.

형, 누나도 덩달아 너무 기뻐해 주었다. 취업도 안 한 내가 결혼이라는 걸 했고, 아이까지 태어날 때 다행히 취업을 그것도 정교사로 취업을 했다고 하니 누가 들어도 드라마틱한 이야기일 것이다.


2004년은 IMF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고, 사립 정교사는 돈을 먹여야만 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나는 돈 1원 한 푼 (아니 차비는 들었다) 들이지 않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너무 기뻤고, 시골집으로 가는 고속버스에서 춤을 추고 싶을 정도였다.

끝없이 끝없이 나는 기쁨의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가 내 교직 생활 끝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었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어두운 터널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그때는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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