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미친놈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 느낌입니다. 현재 기온 영하 8.6도.
한기(寒氣)가 송곳처럼 피부를 파고듭니다.
이런 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엄청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따뜻한 이불속. 차가운 바깥공기.
이불을 붙잡고 웅크렸다 엎드렸다 걷어찼다 다시 덮었다가 별의별 행동을 다합니다.
"5분만 더."
"오늘은 너무 추워."
"몸도 좀 쉬어야지."
속삭입니다. 마음속 그놈이 아주 달콤하게 속삽입니다.
하지만 일단 다행스럽게도 이불과의 첫 전투는 제가 승리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 큰 전투가 남아있습니다. 바로 새벽 러닝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나면 저는 운동을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또 마음이 요동칩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영하 8도인데 무슨 러닝?"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오늘 하루쯤은 괜찮아."
"내일 하면 되지."
"이렇게 추운데 나가는 건 무리야."
어떻게든 저를 막아보겠다는 제 마음속의 그놈이 또 집요하게 달려듭니다.
어떻게든 안 하게 만들겠다는 듯 엄청난 기세로 몰아칩니다.
거의 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외치며 다짐합니다.
"이 구역의 미친놈이 누군지 보여주겠어."
"난 러너다. 날씨와 상관없이 달리는 사람이 진짜 러너다."
마음속의 그놈은 참 집요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입으로 중얼거리고 나니 조금씩 힘이 생깁니다.
그래도 아직 안심하면 안 됩니다.
그놈이 조금 약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다 말고 냅다 운동복부터 갈아입었습니다.
저의 강한 의지를 그놈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생각만 하면 집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운동복을 입는 순간, 그놈이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겠죠.
"진짜 하려나 보다. 오늘은 안 되겠는데......"
계속 그놈의 힘을 빼고, 그놈의 의지가 꺾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생각이 많아지면 집니다. 그놈을 이기는 건 진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계속 움직이고 행동해야 합니다. 틈을 주면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그놈이 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면, 바로 다음 액션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또 스멀스멀 힘이 강해지고, 또 살아 올라와서 저에게 싸움을 걸어옵니다.
잡초보다도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더 징하게 올라옵니다.
정말 대단한 놈입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운동복까지 다 차려입고 글을 쓰다 보니, 그놈도 깜짝 놀랐나 봅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그놈이 사라지는 게 느껴집니다.
두 번째 전투도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벽 4시부터 이어진 이불 전투와 러닝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개선장군처럼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이 구역의 미친놈이 저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그놈 목소리가 들리지 않네요.
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그 목소리. 나를 걱정해 주는 듯 하지만 결국 나를 방해하는 그놈 목소리
"오늘은 힘들어."
"내일 하면 되지."
"이 정도면 충분해."
그놈은 참 집요합니다. 끈질깁니다. 포기를 모릅니다.
그래서 질 때도 있지만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말고 행동합니다. 틈을 주면 안 됩니다.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운동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신발 끈을 묶습니다.
한 걸음 내딛습니다. 그럼 신기하게도 그러면 그놈은 힘을 잃습니다.
진짜 춥습니다. 하지만 그놈을 거의 제압했기 때문에 이제 기쁜 마음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영하 8.6도의 새벽으로.
이 구역의 미친놈은 그놈이 아니라 저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날씨와 상관없이 달리는 사람. 그게 진짜 러너입니다.
오늘도 증명하겠습니다.